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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술은 마셔도 되는가?
RevSuh  2008-08-16 16:51:48 hit: 2,057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나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딤전 5:23)


술 마시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한국 교회의 교인들에게 위의 본문은 적지 않는 혼란을 야기시킨다. 더구나 이 본문은 금주를 반대하는 신자들이 술을 마시는 것이 합법적이라는 그들의 주장을 세우는데 이용되고 있다. 술은 원래가 취하게 되어 있고 취하고 나면 이성을 잃어 여러 가지 비난받을 일을 저지르게 된다. 그렇다면 신자는 마땅히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에 대해 술은 마셔도 된다는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 잔치에서 그의 첫 이적으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지 않았는가(요 2:1-11)고 반문한다. 이에 대해 술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에서는 거기서 예수님은 그 술을 마시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러면 어느 입장이 옳은가?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적이나 바울의 디모데에게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한 본문 말씀을 볼 때 어떤 경우에도 술은 절대로 마실 수 없다는 주장은 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디모데는 젊은 목사로서 매우 양심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장로의 자격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 기준 특별히 술을 즐기지 말며(딤전 3:3), 술에 인박이지 말라(딤전 3:8; 딛 1:7; 2:3)는 말씀에 충실하였다. 그는 오로지 물만 마셨다. 그런데 그가 살았던 근동 지방에는 사실상 물이 귀했고 수질이 좋지가 않았다. 물은 끓여 마셔야지 그냥 마실 경우 배탈이 나기 일쑤였다. 그래서 술이나 포도주를 음료 대신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본문이 밝힌 대로 디모데는 위가 좋지 않았으며 그 때문에 자주 병이 났었다. 그래서 바울은 네 자주 나는 병과 소화를 위해서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여기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조언은 음료수 대신에 포도주를 쓰라는 말씀이 아니었다. 바울은 디모데의 건강을 염려했고 그의 건강을 위해 구체적으로 처방을 해 준 셈이다. 포도주는 디모데를 건강하게 해 줄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포도주를 약으로서 권한 것이지 음료수로서 쓰라고 한 것이 아니다.1)
  
바크레이(Barclay)도 여기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의약적으로 도움이 되는 한에서만 포도주 쓰는 것을 허가했을 뿐이라 하였다.2)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로 본문은 디모데에게 포도주를 쓰라 하지 않고 조금 쓰라(a little)고 단서를 붙였다. 그리고 여기 조금은 강조적으로 쓰였다.3)  뿐만 아니라 물만 마시지 말라는 말씀은 물도 마시되 그것만 마시지 말고 포도주도 조금씩 겸해서 마시란 말씀이다. 위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또 다른 강력한 증거로 바울에게는 그의 사랑하는 의사 동역자 마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의 처방은 아마도 의사 마가가 한 처방일 것이다. 고대 세계에서 포도주는 다양하게 약으로 쓰였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터이다.4)  예컨대 아덴의 멘시테우스(Mensitheus)는 약으로 쓸 때 포도주를 술과 섞거나 약과 섞어 썼으며 상처의 치료에 쓰였다고 하였다.5)
  
이 사실에서 우리는 귀한 진리를 하나 배운다. 그것은 그렇게 능력이 많은 기도의 사도 바울, 그가 기도할 때 귀신이 나가고 모든 병든 자가 고침을 받았으나 바로 그가 당시 약으로 쓰였던 포도주를 쓰라고 권한 사실이다. 신자가 병이 나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기도로 병이 나을 수 있다.  그러나 의사를 찾아가서 진찰을 받고 약을 쓰는 것도 하나님께서 병을 다루시는 방법의 하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왜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는가?
최근에 와서 우리는 알코올이 건강과 경제 문제 및 각종 질병과 범죄 등으로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음을 본다. 이런 차제에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금주 운동에 앞장을 서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모범적인 사회인, 훌륭한 시민도 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술은 습관성이 강할 뿐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게 되기가 쉬우므로 마시지 말아야 한다. 에베소서 5:18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하였다. 신자는 경건한 삶을 살아가야지 방탕한 삶을 살아선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술에 지배받아서는 안 되며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술에 지배받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술을 마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원리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고전 6:12)에 저촉된다. 이 원리에 따라 바울은 로마서 14:13-21에서 그의 신앙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먹을 수 있는 식물도 그것이 약한 형제에게 근심이 되게 한다면 먹지 않겠다고 하였다.  또 고린도전서 8:13에서도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하였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도 덕을 위해서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서 성경에 나오는 포도주와 오늘 우리가 상품화해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포도주와 같은 것인지를 밝히는 것도 위의 본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먼저 성경에 나오는 포도주는 오늘날 포도 쥬스 정도로 알콜성이 없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에베소서 5:18에 포도주로 취하지 말라 하였고 그 밖에도 포도주에 대한 경고가 많이 나온다(레 10:9; 잠 20:1;  21:17;  23:29-35).
  
그러면 성경 시대의 헬라인들이나 유대인들 그리고 초대 교회 때의 포도주는 오늘의 것과 차이가 있었는가?  그 대답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헬라에서는 포도주를 마시기 전에 그것을 물과 혼합시켰다(호머의 Odyssey, 9, 208-9) 프리니(Pliny)도 1/8의 비율로 포도주 하나에 물 여덟을 언급하고 있다(Natural History 14, 6, 54). 그 밖에 다양한 언급들을 보면 3:1의 비율이거나 2:1의 비율로 물을 탄 포도주를 말하고 있다. 그래서 프르다크(Plutarch)도 포도주는 많은 양의 물을  섞은 포도주를 가리켰다(Symposiacs 3, 9).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탈무드(B.C. 200–A.D. 200)등 그들의 전통에 의하면 물 2에 포도주 1의 비율로 섞은 것이 포도주였고 유월절에는 물 3에 포도주 1을 섞은 포도주를 사용했다.
  
역시 초대 교회의 교부들의 글에 보면 포도주는 언제나 섞은 포도주였다. A.D. 150년경에 순교자 져스틴(Justin, Martyr)은 주의 성찬을 이런 방법으로 설명하였다. 떡과 포도주와 술을 가져왔다(Apology, 1, 67. 5). A.D. 250년경에 싸이프리안(Cyprian)은 주의 성찬에 포도주는 포도주와 물을 섞은 것이 규범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에 기록된 포도주는 오늘의 술과는 차이가 있다. 그것은 독한 술이 아니라 물을 섞은 보다 순한 음료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
   1. William Hendriksen, Timothy and Titus. pp.185-186
   2. J. Glenn Gould, I and II Timothy, Titus(B.B.C. Vol. 9),  p.611
   3. A.T. Robertson, Word Pictures in the New Testament. p.590
   4. M.T. Brauch, Hard Sayings of Paul,  p.272
   5. R. H. Stein, Difficult Passages in the Epistles, pp.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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