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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RevSuh  2010-05-19 13:05:40 hit: 5,298

느헤미야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동시대인이었다(느 8:2,9). 두 사람이 다 하나님의 사람이었으나 서로 다른 직업의 배경을 가졌다. 에스라는 제사장이었으나 느헤미야는 평신도로 페루시야의 아닥사스다왕의 술맡은 관원장이었다. 따라서 에스라의 주된 의무는 종교적이었고 느헤미야의 직업은 시민적이며 국가적인 것이었다. 제사장과 하나님의 서기관으로서 에스라는 백성들을 하나님의 율법과 그의 성전 중심의 영적 부흥으로 이끄는 것이었다. 이에 비해 느헤미야의 왕의 궁정에서 전문인으로 남은 자들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정치적이고 물질적인 재건을 위해 자격을 갖춘 자였다.

그러므로 느헤미야의 책무는 그들의 이웃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백성들이 참여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영적 사회적인 지도자의 한 팀이 되어 포로후기 남은 자들에게 영속적인 영향력를 펼쳤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종종 이들처럼 모세와 아론, 히스기야와 엘리야 그리고 스룹바벨과 스가리야를 한 팀이 되어 효과적으로 사역하게 하셨다.
온 마음을 다해서 효과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한 느헤미야는 평신도를 위한 모범으로 몇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1. 느헤미야는 그의 일에 그의 마음도 있었다. 예루살렘이 무너져 폐허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주저앉아 울었다(1:4)
2.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하늘의 하나님앞에서 금식하며 기도했다(1:4). 성경에서 에스라와 함께 죄의 고백과 중보의 위대한 기도자였다(9장).
3. 느헤미야는 도움이 필요한 처지를 직접 보려고 했다. 그는 누구를 통해 알기보다 직접 가서 보고 어려운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다(2:11).
4. 느헤미야는 자기를 부인하는 노동을 하였다. 평안한 궁정관리의 삶을 포기하고 파괴된 도시에서 어려운 희생적인 삶을 자처했다(1:3과 2:5).
5. 느헤미야는 다른 사람들로 일을 하도록 영감을 주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함께 일어나 세우자고 하였다(2:17, 18).
6. 느헤미야는 그의 일에서 쉽게 피하지 않았다. 그는 어려움에서도 그의 일을 쉬지 않았다(6:3).
7. 느헤미야는 반대에 대해 의연하였고 평온하였다. 내외의 반대에 의연히 대처하므로 그 일을 중단하지 않았다(4:6, 9, 그리고 25:6, 7).
8. 느헤미야는 기쁘게 모든 공로를 하나님께 돌렸다. 예루살렘 중건의 일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심어 주신 일이며 하나님의 도움으로 그 일을 마쳤다(7:5)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민족의 성전과 그 민족의 수도를 재건하였다.

느헤미야의 명칭

히브리어의 느헤미야는 ‘여호와의 위로’이다. 느헤미야서는 책의 저자를 따라서 부른 것이다. 서두에 그의 이름이 나온다. 에스라 느헤미야를 합한 책은 히브리 구약성경에서 제3세기에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에서 헬라어로 Esdras Deuteron, 즉 두 번째 에스드라스로 번역하였다. 느헤미야의 라틴 명칭은 Liber Secundus Esdras ‘에스라의 두 번째 책이다.

저작연대와 장소

느헤미야서의 저작 시기는 페루시야의 아닥사스다 I세의 통치때가 적합하다(주전 464-423). 에스더는 아닥사스다의 서모였으며 이는 그녀가 왕의 술맡은 관원장으로 느헤미야의 지명에 어떤 역할을 했을 것이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왕의 20년에 페루시야를 떠나(2:1) 아닥사스다왕 32년에 페루시야로 돌아왔다(13:6). 그리고 다시 예루살렘을 위해 떠났는데 아마도 주전 425년이었을 것이다(13:6). 느헤미아서는 그가 예루살렘을 두 번째 방문한 후까지 완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본서에 대한 역사적 신빙성은 엘레판틴파피리(Elephantine Papyri)에 의해 지원받는다.
이 고대 문서는 산발랏(2:19)과 여호하난(6:18)을 언급하며 빅바이(Bigvai)가 주전 410년에 유다의 총독으로 느헤미야를 대치하였음을 가리켜 준다.

주제와 목적

느헤미야는 유다의 정치적이며 지리적인 회복에 관한 기록이다. 첫 7장은 예루살렘의 성벽 건축에 관해 기록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예루살렘이 유다의 영적이며 정치적인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성벽이 없는 한 전혀 성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총독으로 느헤미야 역시 시의 권위를 세웠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합심하여 백성들의 영적인 면과 도덕적인 면을 함께 세움으로 회복을 완성할 수 있었다. 따라서 느헤미야의 기능은 에스라서에 자연스런 속편이다. 이는 두 책이 수세기간 한 책으로 간주되어 온 이유이기도 하다.
느헤미야는 역시 포로후에 고국에서 그의 백성을 회복시키는데 하나님의 분명한 도움을 보여주기 위해 기록하였다. 느헤미야의 지도하에 이스라엘은 스룹바벨의 지도로 첫 귀환한 이래 94년 동안 하지 못한 일을 단 52일만에 완성하였다. 순종하는 신앙으로 그들은 극복할 수 없는 반대를 극복할 수 있었다.

느헤미야의 중요단어, 요절 그리고 핵심 장

낱말 : 예루살렘 성벽
요절 : 6:15-16; 8:8
『성 역사가 오십이일 만에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6:15-16)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8:8)
핵심 장 : 9장

구약성경의 열쇄는 언약이다. 이는 구약성경의 주제이며 요인들을 통일한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조건적 언약에서 그 민족의 순종 혹은 불순종에 따라 나눌수 있다. 순종에서는 축복이 왔고 불순종은 파멸을 낳았다. 느헤미야는 9장에서 예루살렘 성벽의 완성은 그 민족이 언약에 대한 충성심을 다시 시인한 것이다.

느헤미야의 그리스도

느헤미야는 그리스도의 사역이 회복의 사역임을 말씀해 주고 있다. 느헤미야는 그리스도를 그 백성의 곤경과 하나가 되기 위해 지극히 높은 지위를 포기하신 분으로 설명한다. 그는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오시며 그 사명을 이루신다. 그리고 그의 삶은 하나님께 의존한 기도가 충만한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본서에서는 왕을 제외한 모든 것이 회복되었다. 성전이 다시 지어졌다. 예루살렘은 재건되었고 언약이 새로워졌으며 백성들이 개혁되었다. 메시야의 계통이 완전해졌으나 왕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의 17년에 아닥사스다의 칙령(2:1)은 70주(단 9:25-27)의 예언의 시발점이 되었다(단 9:25). 그 메시야는 69주의 말에 오실 것이며 이는 주후 33년에 성취되었다.

느헤미야의 개요

1. 느헤미야의 귀환(1:1-2:11)
2. 성벽이 재건됨(2:12-7:4)
3. 민족이 개혁됨(7:5-13:31)

A. 느헤미야의 돌아옴(1:1-2:11)
이야기는 페루시야에 있는 느헤미야로 시작되는데 거기서 그는 왕에게 술을 따르는 자였다(1:11). 그는 예루살렘의 파괴된 상황의 소식을 듣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몇 달간 그는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였다. 그리고 어느 날 대담하게 그의 예루살렘에 대한 느낌을 말하고 왕으로 하여금 그 성을 재건하기 위해 그가 돌아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청구한다. 그리고 그는 왕의 허락을 받았다.

B. 성벽들이 중건됨(2:12-7:4).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느헤미야는 그 성벽재건의 일을 하도록 백성들을 모았다(2:18). 그러나 다 내외적으로 반대가 일어났다(2:19; 4:1-23; 6:1-14, 17-19). 부자의 문제는 가난한 자로부터 돈을 갈취함으로 그 과업은 더 힘들어졌다(5장).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는 앞으로 나아갔으며 성벽은 52일만에 완성되었다(6:15).

C. 그 민족이 개혁됨(7:5-13:31)
그 도시의 성벽이 완성되자 그 성내에 거주할 더 많은 백성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 일을 하기 전 그들은 에스라가 율법을 읽고 백성들은 장막절을 지킨(8-10장) 거룩한 총회가 이어졌다. 그리고 백성들은 지방에서 예루살렘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였다(11장). 마침내 그 성안에 백성들이 차게 되면서 그 시의 성벽을 재헌정하는 의식을 거행하였다(12장). 중요한 과업이 완성되면서 느헤미야는 페루시아로 돌아간다(13:6). 그는 귀환 전 어느 기간에 이방인과 유대인의 관계를 개혁했으며 성전과 안식일 그리고 결혼을 위한 제도를 예비하였다(13장). 이 사건과 더불어 구약시대는 끝이 나게 된다. 그 후에 400년이 지나 신약이 시작되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메시지
두 책은 분명하게 그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좌절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시해 준다. 비록 그들이 나라가 없으며 성전과 힘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그 땅에서 그들을 다시 세워 주셨으며 당신의 지속적 프로그램을 지속하셨다. 오늘날 믿음의 사람들은 일들이 어려워질 때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럼에도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그때처럼 오늘날도 그의 계획들을 이루실 것이다.

          글/서춘웅 목사
에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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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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