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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바하이 신앙
RevSuh  2020-09-04 14:19:23 hit: 23

제2장 바하이 신앙
The Baha'i Faith

  바하이교는 19세기에 세워졌으며 이슬람에서 분리된 독립적인 종파 운동이다. 바하이교의 목표는 그들의 신앙으로 세계의 모든 다른 신앙을 통합하는 것이다. 따라서 바하이교는 어떤 면에서 세계 종교의 에큐메니칼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모든 종교가 하나이며, 참된 과학과 종교는 일치하고, 모든 사람이 하나의 통일체임을 주장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바하이교는 남녀의 평등, 보편적 언어 그리고 모든 형태의 편견 의 폐지 등을 주장한다. 따라서 바하이 신앙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
  톨스토이는 형제애의 정신을 소개했고, 우드로우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의 딸은 개종했다. 락(Rock) 음악의 수퍼스타 실즈(Seals)와 크로츠(Crofts)는 바하이교의 상징을 그들의 노래에 도입하며 청중들에게 그 신앙을 소개했다.
  크로스비(Crosby)의 멤버들, 스틸즈(Stills), 내쉬(Nash) 그리고 영(Young) 역시 바하이 신앙을 장려했다. 오늘날 세계에는 바하이 신앙의 영적 모임들이 전부 17,148개가 있고, 미국에만 4,515개가 있다. 바하이 신앙은 235개국에 퍼져 있고, 그들의 문서들은 7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또 바하이 신앙의 세계 신자의 수는 500만 명이나 된다. 그러면 바하이란 무엇인가?
  압둘 바하(Abdul Baha, 바하이의 리더)는 “바하이가 된다는 것은 온 세상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고 섬기려고 하여 우주적인 평화와 보편적인 형제애를 위해 일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1. 역사
  바하이교의 예언자 바하울라(Baha'u'llah)의 이름은 “하나님의 영광”이란 뜻의 아랍어이다. 바하울라와 그 추종자들은 대부분이 시아파 회교도들이었다.
  이 시아파 회교도들이 모하메드의 합법적 후계자들로 인정하고 있는 12명 중에서 마지막 후계자는 이맘맛디(Imam Mahdi)였다. 그는 은둔자였는데 대변인 밥스(Babs)를 통해 그의 추종자들과 접촉했으며, 942년 그와의 접촉이 끊어지면서 시아파 교도들은 그가 메시아로 재림할 것을 기대했다.
  1844년 24세의 페르샤의 양털 상인 밥(Bob)은 새로운 종교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는 모하메드보다 더 위대한 예언자로 모하메드의 종교와 율법을 대신하도록 하나님이 자신을 보냈다고 주장했다. 그의 원래 이름은 미즈라 알리 무하마드(Mizra Ali Muhamard)였는데 바하이 신자들 중에서 밥(Bob, the Gate)으로 알려졌다. 그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지혜로 그의 스승과 어른들을 놀라게 했다. 마침내 밥은 자기는 모하메드보다 더 위대하며 세상의 다양한 종교의 예언들을 성취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밥의 사역 기간은 겨우 6년이 채 못 되었다. 이슬람 안에서 일어난 운동인데다 모하메드보다 더 위대하다며 급진적인 사회 및 정치적 변화를 모색했기 때문에 배교자로 지목되어 반대에 부딪치고 말았다. 결국 그는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하며 무시와 경멸을 받는 생을 살아야 했다.
타임 지(Time)는 "이란에서 바하이 신자들은 그 곳에서 바하이교가 시작되었지만 테러의 고통을 당했다. 많은 사람들이 처형되었으며 감옥에 갇혔고 수천 명이 그들의 집과 재산을 잃었다"고 했다.
  밥은 1850년 타브리즈(Tabriz)에서 처형되었으나 메시아를 위한 세례 요한의 역할을 했다. 그는 이 위대한 인물의 도래를 위해 전령의 역할을 한 것이다.
  밥이 죽자 그의 추종자 바비들(Babis)은 밥이 그의 후계자로 지명했던 20세의 수비에젤(Subhi: Ezel)을 지도자로 추대했다. 그러나 그는 통솔력의 부족으로 그의 이복형 바하울라가 실제적인 지도자가 되었다.
  1863년 바하울라는 자신이 바로 나타날 그 예언자라고 주장했고, 그를 추종하는 자들은 바하이들로 불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수비에젤을 따르는 자들은 바하이들과 마찰이 잦았고, 서로 상대방 신자들을 살해했다. 그 결과 당국의 개입으로 수비에젤을 키프러스에 있는 감옥에 감금되었고, 바하울라는 이스라엘에 있는 아카(Akka)의 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수비에젤파는 수비에젤의 감금으로 그 세력이 끝났으나, 바하울라의 감금은 바하이들의 열심을 더 강화시켰다. 그는 100여 권의 책과 소책자에 해당되는 말을 받아쓰게 했으며, 그의 율법책 키타비 아크다스(Kitab-i Aqdas, 가장 거룩한 책)는 가장 신성한 책으로 간주된다. 그는 1892년 열병으로 죽어 아카의 교외 바히(Bahji)에 묻혔는데 생전에 바하이들에게 그의 무덤을 향해 기도하도록 명령했다. 바하울라의 율법은 기도, 결혼, 이혼, 금식, 상속 그리고 다른 다양한 주제들과 연관이 있다.
  바하울라는 그의 장자 압둘바하를 그의 후계자로 임명했다. 압둘바하는 바하울라의 가르침을 해석할 유일한 권위자로 인정되었다. 따라서 그는 교인들의 의견 제시나 특별한 신앙 표현도 할 수 없게 했다.
  그는 1921년 옥스퍼드 대학 출신의 손자 쇼기 에펜디(Shoghi Effendi)를 바하이교의 수호자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에펜디는 바하이교를 중동 밖으로 보급시켰으며 1957년에 죽었다. 그는 상속자가 없었고 후계자를 지명하지도 않았다.
그의 사후 6년이 지나고 나서 바하이교는 최초의 바하이교 세계 사법회의(Baha'i Universal House of Justice)를 구성했다. 이 회의는 9명으로 구성되었으며, 바하이 교도들에 의해 무오한 것으로 간주되고 이스라엘의 하이파에 있는 본부에서 바하이교를 다스리고 있다.  
바하이교의 가르침
4.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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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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