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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신도(神道)
RevSuh  2022-08-27 15:28:00 hit: 18

제4장  신도(神道)


  신도는 일본 고유의 국가 종교다. 여기서 신도를 다루는 것은 신도가 한국 교회의 신사참배 반대 운동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아시아 제패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섬나라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한국을 택했다. 이를 위해 한국민을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고, 그 목적 달성을 위해 신사참배를 강요하게 되었다.
  일본은 1918년부터 신사를 들여왔으며, 1925년 서울 남산에 신궁을 세웠다. 처음에는 일본인만 신사참배를 하였으나 1930년 이후 한국인에게 강요하였다. 먼저 기독교 학교와 교회에 압력을 가했는데 처음에는 교회와 학교 모두에서 강한 반발을 샀으나, 점차 설득과 강압에 의해 반대하는 학교는 문을 닫았고, 교회는 변절자들의 수가 더해지고 반대자들이 투옥됨으로써 마침내 신사참배에 굴복하고 말았다.
  일제는 신사참배는 종교 의식이 아니라 국민의례이며, 예배 행위가 아니라 조상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하는 것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 교회는 먼저 가톨릭 교회가 신사참배를 수용하였는데, 1936년 교황 비오(Pius XII)가 포교성을 통해 신사참배는 종교적 행사가 아니고 애국적 행사이므로 이를 허용한다고 하였다. 같은 해에 안식교가 신사참배를 가결했으며, 이어서 성결교, 구세군, 감리교회가 뒤를 이었다.
  조선예수교장로교회도 반대하며 대항하다가 마침내 1938년 9월 9일 오후 8시 제27차 총회(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신사참배를 가결하고 말았다. 그리고 끝까지 신사참배를 반대하며 투쟁하던 목사와 신자 2,000여 명이 옥에 갇혔고, 50여 명은 감옥에서 순교하였으며, 200여 곳의 교회가 폐쇄되었다.
  그러나 일제가 한국의 기독교 계통의 학교와 교회를 설득하기 위해 신사참배는 종교가 아니고 국가 의식이라고 한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이런 주장에는 자신들이 지배하는 민족들을 모두 법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표준화된 인본 제국의 신민들로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도구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신도가 일본의 국교이기 때문에 신사참배는 국가 의식이라는 주장에는 일리가 없지 않으나, 그것이 종교임은 ‘종교적으로 본 신사’라는 제목의 1937년 6월 15, 16일자 요미우리신문에서 밝힌바 있다. 거기서 기독교나 불교는 불완전한 종교요 신사야말로 완전한 총괄적 종교라고 하였다.
그러면 신사는 어떤 종교인가?

1. 교세

  신도의 신자 수가 얼마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1970년 인구 조사에서 일본의 인구가 1억이었는데 신도의 신자 수는 1억 7천 7백만 명이 넘는다고 하였다. 이런 발표는 크게 부풀려진 것으로 아마도 일본 문화의 영향일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실제로 신도의 신앙을 실천하는 사람은 일본 인구의 3-4% 정도로 여겨진다. 따라서 실제 신도 수는 280만에서 4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2. 역사
  일본인들은 그들의 땅을 사랑하며 일본 영토는 신의 첫 창조라고 믿는다. 이런 그들의 나라 사랑의 민족적인 이상 때문에 신도는 일본에 국한된 종교가 되었다.
  일본은 그들의 황제들은 태양 여신인 아마테라수의 후손들이며 그 여신이 황제가에 통치권을 수여했다고 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천황 히로히토는 1946년 일본 국민에게 보내는 라디오 방송에서 통치를 위한 그의 신적 권위를 부인했다.

3. 초기 발전
  신도의 역사는 세 단계로 분류할 수 있다.
  
1) 초창기
  첫 번째 시기는 역사 이전에서 주후 552년까지다. 이 시기는 신도가 일본에서 유일한 일본인의 신앙이었다. 552년 불교가 일본 사람들 중에서 인기를 얻게 되었으며, 645년 황제 코토쿠(Kotoku)는 불교를 포용하고 신도를 배척했다. 800-1700년은 신도가 불교와 유교 및 다른 종교들과 혼합된 시기로 료부(Ryobu) 신도로 불렀다.

2) 부흥기
  1700년경에 신도는 고전 연구의 부흥을 경험하면서 다시 재건되었다. 히라타(Hirata)에 의하면 신도의 근본적인 교리 두 가지는 일본은 하나님의 나라이며 그 백성은 하나님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하늘의 참 아들 미카도(Mikado)는 네 바다와 만 개의 나라를 다스릴 권리가 있으며, 일본 백성은 다른 나라에 비해 용기와 지혜가 훨씬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 땅과 일본 백성이 모두 신의 기원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상 때문에 일본 백성 중에서 신도가 부흥하게 되었다.

3) 국가 종교의 시기
  일본의 메이지(Meiji) 황제가 신도를 불교 대신에 일본의 공식 종교로 세웠다. 그러나 백성들은 두 종교를 모두 믿었으며, 불교는 2년 후에 얻게 된 완전한 종교의 자유와 더불어 백성들에게 허용되었다. 1882년 신도는 국가의 종교로서 황제에게 복종하는 예로 확립되었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의 승리로 황제의 신성에 대한 사상이 더 확고해지다가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국가종교의 신도는 폐지되었다. 따라서 신도의 보급은 더 이상 정부의 통제 아래 있지 않고 사적인 방편을 통해 유지되고 있다.

4) 믿음과 관행
  신도는 고대 일본인의 가미(神)에 대한 신앙과 이에 대한 제사 의식에서 비롯되었으며 신 혹은 신들로 번역할 수 있는 가미는 신격 혹은 영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것으로 자연 현상이나 경이로운 자연물에 사용한다.

신도의 신앙은 아래 네 가지를 선언한다.
① 가정에 대한 헌신: 고대의 기억과 가족 일원의 정체성을 보존한다.
② 자연의 사랑: 자연은 사람을 신들에게 이끌어 주는 수단이다. 자연을 거룩하게 생각한다.
③ 개인적인 정결(자주 씻는 정결의식): 신도의 치료사들은 지속적으로 목욕을 하며 위생법에 관심이 크다. 이 목욕을 위한 이상적 장소는 가미를 예배하는 신전에 가까운 강이다.
④ 가미의 경배: 일반적으로 축제를 통해서인데 마츠리(Matsuri)로 부른다.

1) 신관
  신도는 다신론적인 종교로, 신자들은 많은 신들을 믿는다. 그러나 이 신들은 인격이 아니며, 일반적으로 그저 지켜보고 도움을 주는 존재다. 신도에서는 진노에 대한 개념이 없으며, 신들의 전능이나 혹은 죄로 돌릴 신들로부터의 분리도 없다. 신도의 신들은 다신론이면서 그 수가 엄청나게 많아서 800만이 넘는다.
  신도의 신들은 기원이 불확실하지만 가장 인기 있는 세 신은 이나리(Inari), 하치만(Hachiman) 그리고 텐진(TenJin)이다.
(1) 이나리는 번영과 풍작의 신으로 농부들, 점원들 그리고 자녀가 없는 여인들이 좋아하는 신이다. 이나리의 문자적 의미는 '쌀 지는 자'(짐꾼)로 일본 사람들에게 첫 쌀 농사를 가르친 것으로 생각되는 우가타마-노-미코토(Ugatama no Mikoto)로 불린 신화의 공주였다.
(2) 하치만은 신화적 황제의 조상인 히코호호 데미(Hikohoho-demi)다. 이 신은 처음에는 어부들의 수호자였으며 역시 대장간의 수호자로 창과 화살을 만들어 전사를 도우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지금은 평화주의자로 바뀌었으며, 수산업과 농사의 신의 역할을 하며 비둘기가 그의 사자다.
(3) 세 번째 신도의 신은 특별히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텐진(TenJin)인데, 그는 역사적 인물로 궁정에서 한 장관이었던 시가와라 미키자니(Sygawara Michizane, A.D. 845-903)로 시작되었다. 그는 중상모략으로 귀향을 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생전에 시인이자 문학가였으며, 사후에는 천상의 신 혹은 텐진이 되었다. 황소가 그의 사자다.

신도 교도들이 예배하는 신은 아래 넷이다
(1) 아마테라수 오미가미: 태양의 여신으로 신도에서 최고의 신이다.
(2) 일곱 신들: 운과 행운의 신으로 원래는 불교의 신이었다.
(3) 다이고구: 부의 신이며 농부의 수호자다.
(4) 에비수: 다이고구의 아들이며 정직한 노동의 신이다.

2) 세계관
  신도의 세계관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도덕을 주장한다. 따라서 신도는 올바르게 행하며 민감성과 우주 그리고 거룩의 개념적 이해를 넘어서는 자세를 강조한다(N. Alica Yamada).

3) 사후의 삶
  신도에서는 죽음 이후의 삶을 강조하지 않는다.

4) 경전
  신도에는 기독교의 성경이나 회교의 코란 같은 영감서가 없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와 고대 신화에 빛을 주는 소수의 고서(古書)들이 있다.
   ․ 고지키(Kojiki): 약 A.D 712년경(고대사의 기록)
   ․ 니혼기. 혹은 니혼쇼기: 약 A.D 720년경(일본의 역대기)
   ․ 엔기스키 혹은 옌기스기: 약 A.D 925년경(신궁의 의식, 예배, 기도의 규례 및 종교적인 지도자들을 위한 교수의 지침서)

5) 예배
  신도에는 주간 모임들이 정해져 있지 않다. 많은 신자들은 매월 1일과 15일에 신궁을 찾아온다. 신도의 신궁은 아름다운 자연에 위치해 있다. 신궁의 주변에는 바위와 나무들 그리고 연못들이 있다. 이런 평화로운 환경에 신 가미가 산다고 믿는다. 많은 신도의 가정 제단은 작으며 가미다나로 불린다(신들의 선반). 각 신전은 거룩한 입구에 토리(Torii)로 불리는 표시가 되어 있다. 토리는 인간의 유한한 세상과 신들의 무한한 세계 사이에 대문과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토리에 들어가기 전에 신도 신자들은 손을 씻고 세정식 대야에서 입을 헹군다. 이 육체적인 행위는 정신과 도덕적인 부정을 없애는 것을 상징한다. 신전 안에서 예배자는 기도문을 외우며(처음에는 존경을 보이는 절을 하고, 다음에 박수를 치는데 아마도 신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일 것이다) 가미에게 선물, 돈, 꽃, 작은 과자를 드린다.

6) 신도의 분파들
  신도와 관계된 분파들은 모두 13개이며 그 중에 12개가 1876년과 1908년 사이에 세워졌고 다소 연관이 있는 것들이다.
(1) 신도 다이교(설립자 없음. 1886년에 인식됨)
(2) 구로주미교(1814년 Kurozumi Munetadar에 의해 설림됨)
(3) 신도 수세이하(1873년 Nitta Kuniteru에 의해 설립됨)
(4) 이주모 오야쉬리교(1873년 Senge takatomi에 의해 설립됨)
(5) 후소교(1875년 Shishino Nakab에 의해 설립됨)
(6) 직고교(1882년 Shibata Hanamori에 의해 설립됨)
(7) 신샤교(1880년 Yoshimora Masamochi에 의해 설립됨)
(8) 몬타케교(1894년 Sano Tsunehiko에 의해 설립됨)
(9) 미소기교(1859년 Kawate Bunijiro에 의해 설립됨)
(10) 텐리교(1838년 Nayakoma Miki(여성)에 의해 설립됨).
  1945년에 많은 분파가 나타났는데 1971년 그들 중에 47개가 파악되었다. 일본의 샤만은 전통적으로 여인이며, 남성 우월 사상이 강하나 최고의 여신으로 여성신 아마데라수 오미가미를 섬기고 있다.

7) 중요한 축일
(1) 새해 혹은 쇼갓수: 봄의 축제, 2월 3일
(2) 퍼펫의 잔치: 하나맛수리, 4월 8일
(3) 소년의 날: 탄고노세쿠, 5월 5일
(4) 술가미 축제: 수이진 맛수리, 6월 15일
(5) 별의 축제: 타나바라, 7월 7일
(6) 죽은 자의 축제: 7월 13-16일
(7) 가을 축제: 아퀴노히건
  이상의 축제들은 가족, 이웃과 더불어 즐기며 항상 정결 의식, 기도, 헌금, 다채로운 색깔의 의상, 성가 그리고 기쁨의 춤, 설교나 연설, 경우에 따라서는 수모 경기나 잔치가 뒤따른다. 의식적인 기도는 중요한데 A.D 927년의 신도에 관한 문서Engi-Shiki)에 포함되어 있다. 이런 기도들은 종종 마술적 주문과 요술과 유사한 것으로 파멸과 불운을 피하는 동시에 풍년과 사회적 유대나 영토에 대한 축복을 구하는 것이었다. 이 의식적 기도는 그 해의 중간과 끝에 있었는데 특별히 축사와 정결 의식은 모든 부정과 오염을 몰아내기 위함이었다.

8) 신도와 기독교
  신도와 기독교는 한국에서 기독교의 신사참배 문제로 악연을 갖게 되었으나, 신도는 사실 일본의 경우에서처럼 다른 종파에 대해 적대적인 종교는 아니다. 한국에서 신도의 목적은 세 가지였다.
(1) 모든 한국 사람을 일본인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며, 이 경우에 신도는 종교적이기보다는 민족주의와 정치적인 체계였다.
(2) 기독교를 신도로 교체하는 것이었다.
(3) 일본 황제를 숭배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점에서 신도는 한국의 기독교에 적이었고 투쟁의 대상일 수밖 에 없었다.
  신도는 기독교 신앙과 비교하거나 비판할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신도가 기독교와 연관이 없을 뿐 아니라 기독교라고 주장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신앙과 무엇이 다른지는 분명하다. 우선 신론에서 우리 기독교는 한분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데 비해 신도에는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신들이 있다. 그들은 일본만이 신이 창조한 땅이며 그들만이 신의 후예라고 하며 자랑한다. 이는 마치 유대인들이 자기들만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하며 다른 민족들은 이방인으로 생각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만인이 죄인이며 의인은 없다(롬 3:10). 따라서 성경은 우리만이 신의 후손이라고 하며 자만한 것은 죄이며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말씀한다.
  인간의 유일한 소망은 죄에서 용서받고 의롭게 됨으로써 구원받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고후 5:17, 19-20).

   신도의 특징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개신교가톨릭
신앙신도
성서 고지기, 나혼기, 혹은 나혼쇼기, 엔기수기 혹은 앤기시키
하나님의 본성많은 신들(가미), 한 분 인격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많은 비인격적인 신들
예수 그리스도강조되거나 인식되지 않음
인간의 본성기미의 자녀들로서 인간은 거룩하며 근본적인 선하다(비록 신도는 정결 의식이 필요하긴 하지만
인간의 필요가미를 이해하고 평화와 존경 그리고 친절의 순수한 삶을 사는 것이다
구원인간의 노력으로 얻는다. 신자들은 존귀하게 살고 정결 의식을 따름으로 가미의 은혜를 즐긴다
사후 생명강조되지 않는다.


요약과 평가

신도와 기독교는 관계가 없다. 신도는 일본 토종의 종교로 정령 숭배에 불교와 유교 그리고 신화와 애국심 등등으로 섞여진 혼합 종교다. 신도는 시대에 따라 필요에 의해서 변신을 거듭해 온 일본의 국가종교이다. 한때 신도는 일본의 야망을 위해 신사참배라는 경배 의식을 통해 한국민을 일본인으로 만들려는 한민족 말살 정책에 일환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신도의 신사참배는 황제숭배였으므로 기독교의 신앙에서는 우상 숭배임이 분명했으나, 일제의 권력 앞에서 굴복하고 신앙의 순수성을 포기한 신앙의 변절자들과 출세욕에 눈이 어두웠던 일부 종교인들 때문에 한국 교회는 신사참배를 하기로 결의하는 큰 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 결과 신사참배를 반대한 많은 신자들이 투옥되고 순교했으며 기독교 학교가 폐교되고 예배당이 폐쇄되는 큰 손실을 겪었다. 그 후 해방이 되면서 신사참배는 사라졌으나 실패를 철저하게 회개하지 못한 한국 교회는 이로 인한 분열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신도는 한국 교회와 신자들에게 신앙의 신실성에 대한 사탄의 시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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