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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구원의 확신
  본문 : 요 10:28-29
RevSuh  2012-06-19 21:55:34, 조회 : 1,240, 추천 :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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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확신(요 10:28-29)

누구나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 그러니까 우리 믿는 자는 다 구원받았다. 물론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내 구주로 영접했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런데 신자 중에 구원에 확신이 있는 이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이도 있다. 이것은 모순이다. 구원을 받았다면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매우 중요하다. 왠가? 확신없이 구원없나? 아니다. 그러면 왜 중요한가?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이 하나님 말씀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대로 아들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말씀하셨다 믿을 때 받는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 구원에 확신이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못 믿는 것,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인데 하나님을 못 믿는다고 하면 그런 모순이 어디 있겠나?.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신자다운 삶을 살아 갈수 없다.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죽음 앞에서 소망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할 때 분명히 깨달아야 할 진리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구원이 시작되었다는 것이지 완성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마치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은혜로 애굽에서 구원받고 출애굽한 것과도 같다. 저들은 해방받았다. 그렇다고 약속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홍해까지도 건넜으나 힘든 광야의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광야를 통과해야 한다. 먹을 것이 없고 마실 물이 없는 곳, 사나운 짐승과 독사와 전갈이 있으며 때로는 사막의 거친 땅에 사는 사나운 족속들의 공격이 있는 곳, 그 외롭고 황량한 빈들에서 사단의 유혹과 시험을 통과해야 젖과 꿀이 흐르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구원받은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예수 믿고 천국을 기대한 신자들은 낙심하고 세상으로 되돌아 가고 만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예수님은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란을 당한다 하셨고 바울은 사도행전 14장 22절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였다.
그렇다! 우리 앞에는 재난과 전쟁, 범죄, 사고, 질병, 가난, 핍박, 죽음도 있다. 불의한 세상에서 의롭게 살려면 고난이 더 많다. 게다가 생존경쟁이 광야처럼 심한 삶 속에서 신자답게 살아야 한다. 이 세상은 영적으로 광야다. 예수님께서 시험을 광야에서 받으셨듯이 육신적인 어려움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시험과 유혹이 많은 곳이다. 사단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보세요. 오늘 세상은 절대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다. 종교다원주의 시대를 산다. 모든 종교는 다 구원이 있다. 이 사람들의 주장은 하나님은 위대하고 크시다. 그리고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사랑하시니 구원의 방법도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석가, 마호멧, 등등 다양한 종교를 통해서 구원하신다고 한다. 예수님만 구원이 있다고 하면 그런 독선이 어디 있느냐고 따돌림 당한다. 전도가 안된다. 아니 하나님은 선하시고 사랑이시니 선한 하나님이 지옥을 만드셨을리 없다고 한다. 오늘은 우리 가정의 토대도 흔들리고 있다. 결혼은 이성간에가 동성간에로 가고 있는 것이 대세이다. 동성결혼을 대통령이 지지하고 나섯다. 레이스비언들이 마련한 선거기금 파티에 자주 참석한다. 샌프란시스코의 주하원(민주당) 의원은 성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10대들에게 종교적 상담, 심리학, 의학적인 도움을 주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그리고 부모가 그런 상담을 하도록 자녀들을 보내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상정시켰다. 지난해 미국 장로교회에서 동성애자도 목사로 안수를 받을 수 있다고 가결되었다. 연합감리교회는 금년에 이 문제를 투표해 60%로 부결됐다. 그러나 장로교도 부결했었다. 우리는 관용이 덕이고 진리를 대신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옳고 그름을 관용으로 판단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오늘은 우리 자신도 모르게 이런 사상에 물들어 가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교회다. 동성애자 목사가 목회하고 레스비언이 감독이 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영적 전쟁터와도 같은 유혹과 시험의 광야를 승리롭게 통과할 수 있는가? 우리를 세상에서 구원하시고 천국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구원받고 천국 순례자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를 향하신 뜻이 있다. 그 하나님의 뜻을 알고 따라가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이다. 먼저 항상 기뻐하라고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실패한 원인이 무엇인가? 출애굽하고 감격하며 기뻐했다. 그러나 광야의 여정에 들어서자마자 원망하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사단이 역사한다.무어라고 하나? 가나안은 없다고 한다. 애굽이 더 좋다고 한다. 시험에 빠지니까 하나님을 배반하고 애굽으로 돌아갈려고 했다. 광야를 통과할 수 있는 길은 기쁨이다. 어떻게 우리가 기쁨을 가질 수 있는가?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놓으시고 할수만 있으면 십자가를 피할려고 하셨다. 세 번 기도하실 때에 땀방울에 피가 섞어 나올 정도였다. 어떻게 예수님이 그 십자가를 통과하셨나? 십자가 후에 많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십자가 후에 부활이 있고 승천이 있고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것을 내다 보시고 기쁨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지셨다. 오늘 우리도 광야에 큰 어려움이 아무리 클지라도 우리가 천국을 바라보면 더 이상 수고가 없고 아픔이 없고 슬픔도 없고 눈물 흘릴 일도 없는 평안과 기쁨의 천국을 바라보면 우리의 기쁨이 있을수 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살 곳이 아니다. 지나가는 곳이다. 우리의 도착지는 천국이니까 천국을 바라볼 때 기쁨이 생기고 그 기쁨으로 승리할 줄을 믿는다.
다음으로 쉬지않고 기도하라고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이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것이다. 여러분, 광야는 길이 없다. 우리가 가는 광야 길을 우리는 가 본 일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불안하고 두렵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그 길이 뭡니까? 기도하는 것이다. 여러분 기도가 무엇인가? 내 소원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지 기도하면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대면한다.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보면 우선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자신을 보고 회개하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워진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서먹한 관계가 회복이 된다. 그러고나면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앞에 기도할수 있게 된다. 어떤 기도를 하는가? 저는 자주 천국을 보여 달라는 기도를 한다. 이룸을 받았겠는가? 못 받았다. 한국에 어느 목사님은 일주일 동안 천국을 보여 주시고 일주일동안 지옥을 보내 주셔서 책까지 만들어 내시고 그의 삶을 달라졌다고 하는데 하나님 저도 천국을 보여 주십시요. 그러나 안 보여 주신다.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인가?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더 복되다. 그러나 기도하고 나면 내가 바라보고 있는 천국이 성경적인 천국이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힘을 얻는다. 우리의 기도가 내 소원대로 다 이루어지지 않아도 기도하고 나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의 확신을 갖게 되어서 우리는 광야의 순례길도 넉넉히 이길 수 있다고 믿는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다. 광야에서 나올수 있는 것은 불만과 불평이다. 감사할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불평하기 시작하면 사탄이 역사한다. 실패하게 된다. 어떻게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가? 아무리 이 광야가 힘들고 어려워도 구원받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우리는 구원받았지만 광야 같은 이 세상을 통과하는데는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로마서 8장 29-30절에 우리를 사랑하시어 미리 정하셨고 정하신 우리를 부르시고 부르신 우리를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우리를 또한 영화롭게 하신다. 그러니까 우리의 구원을 시작하신 하나님이 끝까지 완성해 주신다. 빌립보 1장 6절, 너희 앞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한다. 이런 구원의 확신을 가지면 어느 형편속에서나 감사할 수 있다. 불경기에 내 사업이, 직장이 힘들어도 우리는 구원받았다. 내 몸이 아프고 힘들어도 우리는 구원받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다. 무슨 말인가? 우리의 소원대로 가난에서, 우리의 소원대로 질병에서 구원에 주시고 우리의 소원대로 박해때에 순교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신을 보장해 주시지는 않으신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영적으로 우리를 지켜 주셔서 천국 순례길을 승리케 해 주신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믿을 때에 감사할 수 있고 감사로 천국을 향해 전진해 갈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 구원의 확신은 말씀과 성령이다. 라미라다에 가면 로스앤젤스 성경학교로 시작된 Biola 대학과 탈벗 신학대학교가 있다. 보수적이고 정통적인 대학이다. 그런데 이런 학교에서 바이올라 퀴어언더그라운드라는 레이스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한자의 모임이 있음을 알리는 전단지가 살포되면서 충격에 빠졌다. 기자가 찾아가 학생들을 만났다. 많은 학생들이 이 모임을 반대했다. 어떻게요? 성경을 믿었다. 판단 기준이 있다. 반성경적이라고 반대했다. 그러나 자신이 크리스챤이라면서도, 성경에 굳게 서지 못한 학생들은 그 그룹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성경을 떠나면 옳고 그름이 없다. 성경을 떠나면 구원이 없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옳고 그름을 알수 있는 것도 성경을 믿기 때문이다. 성경이 내가 죄인임을 말씀한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고 히브리 9장 26절에 보면 단번에 제물로 드려 우리 죄를 없이하러 오셨다. 십자가에서 죄가 없으시나 우리 죄값으로 죽으시고 다시 사시었다. 따라서 믿는 자는 구원받고 영생을 얻는다. 그런데 어떻게 믿나? 성령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을 진리로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 말씀으로 믿게 하신다. 예수님을 내 구주로 고백할수 있게 하신다. 성경대로 예수를 믿으면 구원의 확신이 있다. 성령께서 더 이상으로 증거해 주시니 확신할 수 있다. 에베소서 4장 30절,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신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수 있게 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치신다. 이사야 43장 1절에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란 뜻이다. 여러분, 인은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란 뜻이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께 소중한 존재다. 사랑하시는 아들 딸이다. 그렇다면 구원은 안전하다. 확실하다. 하나님께서 이 광야에서도 천국에 이르는 순간까지 지켜시고 보호해 주신다. 요한복음 10장 28절에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수 없다. 하나님은 만물보다 크시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손안에서 보호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광야의 시험과 환란 중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 로마서 8장 35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넉넉히 이긴다. 물론 세상의 광야의 환란으로 우리 육신의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순교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적 싸움에서 이기게 하신다.
구원의 확신은 우리 안에 삶의 변화에 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면 감사와 기쁨이 있고 두 가지 결과가 나타나는데 하나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고 세상을 향해 영혼구원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여러분! 주일이 기다려지고 기쁨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면, 주일 예배 드리지 않으면 불안하고 기쁨이 없고 죄를 짓는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다면 구원의 확신을 가져도 된다. 그러나 무슨 일만 생기면 잘 됐다 주일 예배 드리지 않는 핑계가 된다면 구원은 의심스럽다. 믿는데 구원받지 못한다면 바울의 말씀처럼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다. 헛되게 교회에 다니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전도하는 것이다.
전도는 직접 간접으로 할 수 있다. 선교를 후원하는 것도 전도다.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전도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으로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것도 전도하는 것이다. 복음에 귀기울이게 하는 것도 전도다. 어찌 되었던 믿지 않는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구원을 확신하셔도 좋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나 혼자 믿는 것으로 만족한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죽음과 그 후의 삶이란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불신자의 말이다. 내 친척 대부분이 예수를 믿는다. 그런데 아무도 우리를 집으로 초대하는 이는 없다. 생일 카드를 보내는 이도 없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찾아온 이는 없었다. 내 사촌(조카)은 우리가 신자가 아니라고 우리와는 아무 것도 함께 하지 않는다. 요즘 말로 하면 안 믿는 자들로 왕따시킨다는 말이다. 디모데전서 5장 8절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을 돌보지 않으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하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섯을 때 내 친족가운데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부끄러울 것이다. 멀리 가서 영혼구원하지 못해도 사랑하는 내 가족은 반드시 구원시켜야 한다. 그래야 주님앞에 바로 서게 될 것이다. 대학생선교회 창설자 빌 브라이트와 그의 아내는 잘나가는 젊은 사업가였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영혼구원사역에 평생을 헌신했다. 지금은 대학생 선교회 전임 사역자가 26,000명이고 190여개국에 훈련받은 55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복음을 전하고 있다. 그런데 빌 브라이트 박사가 70세가 넘어서 큰 병에 걸렸다. 치료가 안 되는 폐가 굳어지는 병에 걸렸다. 그래서 그는 산소통을 달고 살다 죽기 2주 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주님 앞에 섯을 때 구원할 수 있는 사람 한 사람도 구원하지 못했다고 주님께 고백하지 않기를 소원했다고 하였다. 그는 자기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구원받아야 하고 그 모든 사람은 내가 구원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평생을 살았다. 다 빌 브라이트겠나? 그러나 오늘 크게 세상을 떠나 적게 우리 교회만 보아도 전도해야하지 않겠나? 전도로 구원의 확신(증거)지니고 살자!
여러분!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 갤럭조사에 의하면 미국의 개신교 신자중에 24%만 천국에 간다는 확신이 있었고 76%는 없었다. 이것이 오늘 교회의 침체의 원인이다.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기쁨과 활력이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구원받았으나 천국의 여정인 광야를 지나가는 중에 있다. 힘들고 긴 여정이다. 영적으로 건강해야 끝까지 목적지인 천국에 이룰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잘 먹어야 한다. 건강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도들이 주일날 한 번 교회에 나와 목사님 설교 듣는 것으로 끝난다. 그건 무엇인가? 주는 것을 받아 먹는 것이다. 남의 것 얻어 먹고 배부를수 있나? 이 말은 목사님의 설교가 부족하다는 말이 아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충분하다. 그것만 가지고는 안된다는 말이다. 왜 그런가? 대부분의 신자들이 목사님이 설교하면 그것은 누구를 위해 주는 말씀이지 나를 위해서 해당된 말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냥 귀로 듣고 지나친다. 먹지 않는다. 천국순례는, 믿음의 경주는 누가 대신 해 줄수 없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 날마다 말씀을 보고 묵상하고 내 삶에 적용하는 말씀을 먹는 삶만이 천국순례를 광야의 힘든 여정을 감당할 수 있다. 이런 건강한 믿음으로 저와 여러분이 모두 광야의 세상 대신 목적지 천국을 바라보는 기쁨,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도 그리고 천국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구원의 확신의 감사로 주님만나는 그 순간까지 승리의 천국순례자들로 살아가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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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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