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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이

 

 

 

 



  제목 : 제자도
  본문 : 요 12:20-26
RevSuh  2017-02-01 14:38:46, 조회 : 3,299, 추천 : 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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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도(요 12:20-26)(093001)

지난 9월 11일 오전 8시45분 무역센터(WTC) 북쪽 빌딩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9시50분경 42층 에리베터 앞에서는 발을 동동 구르던 사람들이 비상계단으로 대피중이었다. 바로 그때 쿵소리와 함께 건물이 심하게 흔들렸다. 비상계단은 순식간에 울부짖는 사람들! 계단을 뛰어내리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됐다.
그때 경비대장(릭) 레스콜라씨는 확성기를 들고 비상계단 중앙에 버티고 서서 힘주어 말했다. 여러분, 침착합시다. 절대 뛰지 마세요. 노약자는 먼저 대피시키세요. 울지 마세요. 그리고 우리 다 함께 God bless America를 부릅시다. 그리고 선창을 했다. 그리고 나니 사람들이 침착해졌다. 그리고 질서있게 대피할 수 있었다. 탈출해서 산 그의 직장 동료들! 그것이 그들이 본 레스콜라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조금 뒤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경비대장 레스콜라씨의 희생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
오늘 본문도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생명을 버리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에 대한 말씀이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살아가야 할 제자라면 이 말씀 속에서 무엇을 배우고 실천해야 하는가?
그러면 제자란 무엇인가?
우리가 미국에 와서 사니까 오래 살다보면 시민권을 가지게 되고 그때에 우리의 이름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온다. 어떻게 할까? 내 이름에 맘이 안 들었던 사람들! 성은 바꿀 수 없지만 이름은 다시 지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저는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다가 제 이름이 일제말에 지어진 이름이어서만이 아니다. 부르기가 편치를 못하다. 저는 집사람과 교제할 때도 이름으로 불려 본적이 없다. 그때가 신학교 다닐 때요 전도사 때니까 전도사로만 불렸다. 저의 집사람은 총각 아무개가 아니라 전도사와 결혼했다. 여하튼 이름이 마음이 안 들어 바꿨으면 했는데 그래도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 아닌가? 그래 앞에다 쉽게 부르는 흔한 영어 이름을 덧붙이기로 했다. 생각 중에 이왕이면 왕의 이름이 어떨까?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영적으로 왕 같은 제사장이 아닌가? 그렇다면 누구로 할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최선의 이스라엘 백성의 왕 David이다. 물론 그렇게 부르지는 않는다. 그래도 다윗이라고 했다.
이렇게 우리는 대부분이 한국 이름에 영어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성경에는 예수를 믿는 신자들에 대한 이름이 하나가 아니다. Christian이다. 성도다. 하나님의 자녀다. 형제다. 그런데 이 모든 이름보다도 신자에게는 구원받은 자로서 그 사명까지를 포함한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이름이 있다. 제자란 말이다.
제자란 말 근대까지는 잘 쓰지 않던 말로 70년대 중반부터 자주 들을 수 있게  된 말이다. 그것은 그때 비로소 한국 교회는 소그룹 제자훈련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제자란 말은 크리스천이란 말이 생기기 전에 최초로 쓰여진 신자의 별명이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제자로 불렀다. 그리스도인이란 말은 예루살렘 교회에 박해의 바람이 불어 사도 이외에 신자들은 다 지방으로 흩어져 지방에도 복음이 전파되면서 생긴 말이다. 그때 최초로 세워진 교회가 안디옥 교회요 이 교회가 세계 선교의 전초지가 되었다.
사도행전 11장 26절에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데리고 안디옥에 와서 두 사람이 안디옥교회를 목회하면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란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러니까 신자는 원래는 제자였다.
그러면 제자란 무슨 뜻인가? 제자란 말 그대로 스승에게 배우는 사람이다. 스승을 따르는 사람이요 스승을 닮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 신자를 제자라고 할 때 그 말은 그리스도를 스승으로 한 배우는 학생이란 뜻이요 그리스도를 따르고 닮아가는 사람이란 뜻이다. 저와 여러분은 물론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불러내신 거룩한 무리요 성도이지만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다. 저도 제자요 여러분도 제자다. 신자는 모두 제자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우리가 따라야 할 제자도는 무엇인가? 제자는 십자가의 고난의 때를 영광의 때로 보고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오늘 본문 20절을 보라.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왔던 헬라 사람들이 있었다. 헬라 사람으로 유대교를 믿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 헬라 사람들이 갈릴리 벳세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뵙고자 한다고 알렸다. 빌립이란 이름은 유대적이기보다 헬라 이름이다. 또 그가 고향이 갈릴리 벳세다라면 갈릴리는 이방인의 도시라 할 만큼 유대 나라의 최북단에 위치해 있어서 이방인과 교접이 많았다.
헬라인들의 예수님 면접 요청을 받은 빌립은 안드레에게 가서 알리고 두 제자가 함께 예수님께 헬라인들이 주님을 뵙고자 합니다. 어찌 할까요 물었다.
그때 예수님의 답변이다.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때가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만나볼 때가 아니다.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다. 예수님은 동문서답을 하셨다. 그러면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는 무엇인가? 예수님의 생애는 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세상에 오실 때, 나실 때도 때가 차매 오셨다. 그렇다면 지금의 때는 어느 때인가? 예수님이 죽으실 때다. 지금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체포되시고 십자가에 죽으실 시간이 임박해 있었다. 그러니까 내 죽을 때가 됐다는 말씀이다. 십자가에 죽을 때가 왔다. 물론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때 중에 죽을 때는 기쁠 때가 아니고 슬플 때다. 영광의 때가 아니라 경멸의 때가 아닌가? 십자가는 가장 잔인한 처형 방법이었다. 그래 전쟁포로나 노예 같은 천한 사람에게만 지우는 형벌이었다. 살인죄나 반란죄 같은 크고 간악한 죄인들을 죽이는 극형이었다. 부끄러움이요 고통이요 저주받은 죽음이었다.
예수님! 그 십자가 앞에 놓으시고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 들어가셨을 때 이렇게 그 심정을 토로하셨다.
마가복음 14장 33절, 심히 놀라시고 슬퍼하사 34절,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 예수님이 제자에게 부탁하셨다. 그리고 기도하실 때 땀방울이 피가 섞여 있을 정도였다. 겟세마네가 기름을 짠다는 뜻인데 정말 예수님은 당신의 몸을 영혼을 짜서 기름을 내듯이 기도하셨다.
육신적인 아픔 이상이었다.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십자가가 잔으로 표현되었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었다. 그래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는 기도까지 하셨다. 그 천하고 부끄럽고 고통스럽고 저주스런 십자가의 죽음. 그런데 그 십자가를 지실 때는 내가 영광을 얻을 때라 하셨다. 어떻게요? 예수님 그 십자가 후에 영광을 내다보셨다. 죽으시나 3일후에 다시 부활하신다. 하늘로 승천하신다.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앉으신다. 그래 영광의 때가 왔다고 하셨다.
여러분! 제자입니까? 주님을 따라야 하는 제자에게는 십자가가 있다. 개인의 십자가도 있고 가정의 십자가도 있고 교회의 십자가도 있다. 따라서 영광만 기대하는 신자는 제자가 될 수 없다. 그 십자가 앞에서 불평하고 원망하고 좌절하고 피해 가고 도망친다면 제자가 될 수 없다. 예수님처럼 그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게 될 유익과 축복!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내다보고 영광을 얻을 때라! 시련과 환란 앞에서 기뻐할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 십자가를 지고 갈수 있어야 한다. 부부싸움하고 교회에 안 나오는 신자가 있다. 왜요? 내가 져야 할 십자가를 아내에게 미루기 때문이다. 함께 져야 할 십자가, 누구도 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도 제자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면 부부싸움은 끝날 것이다. 교회에 십자가가 없다. 이상하다. 그러나 사실이다. 교회는 죄인들이 모인 곳이다. 교회는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내가 바라고 기대하는 그런 성숙한 신자들만 모인 곳이 아니다. 내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무시를 당하는 느낌을 받을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이해 못할 성격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피할 것인가? 불평할 것인가? 참 제자가 될 수 있는 기회다. 기쁨으로 여기라.
신앙생활, 교회생활 생각처럼 그렇게 쉽고 간단하지만은 않다. 짐을 져야 할 때도 있다. 점심 식사한다고 봉사하란다. 반찬도 가져오란다. 바자회한다고 나오라고 한다. 테러 희생자들을 위해 헌금도 하란다. 짐, 짐, 짐! 이거 어디 예수 믿겠나? 십자가다. 그러나 내가 그 집을 짐으로 200명 이상의 성도들이 배부르게 먹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한 가족의 유대를 강하게 하며 좋은 소문나는 교회를 만든다. 그것을 내다보고 하는 밥 당번이 될 때 영광을 얻을 때라 생각하고 기뻐하라. 나 한 사람이 김 치를 시작하면 바자회에 김치를 상품으로 내 놓게 된다. 점심 식사에 반찬 걱정 사라진다. 나 한 사람이 청소하면 주일날 200명 이상의 성도들이 기분 좋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다. 나 한 사람이 전도를 시작하면 누군가가 구원을 받게 된다. 또 다른 성도가 전도대원에 참여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내가 제자가 되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면 영광에 이른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가정이, 교회가, 직장이 된다. 따라서 제자는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죽는 사람이다.
2001년 9월 11일, 네 대의 비행기를 납치한 테러범들! 비행기를 강탈한 후 스스로 조종을 해서 W. T. Center를 향해 돌진해서 죽었다. 그러나 이것은  본문이 말씀하는 제자의 죽음이 아니다. 제자로 죽는 것은 내가 죽는 것이요 다른 많은 사람을 살리는 죽음이다. 테러범의 죽음은 물론 자신도 죽었지만 자신과 함께 많은 사람을 살리는 대신 죽이는 죽음이었다. 불행하게 하는 죽음이다.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가 되었다.
그러면 여기서 죽는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1)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것이다.
25절, 참 생명을 얻기 위해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것이다. 생명을 미워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창세기 27장에 보면 이삭이 죽기 전에 아들을 축복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삭은 큰 아들, 에서를 사랑했고 그 아내 리브가는 둘째 아들인 야곱을 사랑했다고 한다. 또 말라기 1장 2절, 하나님께서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 3절, 에서는 미워하였다고 하셨다.
부모가 자식 중 누구를 사랑한다 무슨 말인가? 누구는 미워한다는 말인가? 아니지요. 그 중에서 더 사랑하는 자식이 있다. 우선이고 차선인 아들이 있다는 말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정말 야곱을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셨나? 둘 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가? 하나님은 사랑이 아니신가? 무슨 말인가? 사랑의 대상이 먼저 야곱이었고 다음이 에서였다는 말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본문 말씀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 자신을 사랑하라기보다 먼저 우리 생명이 주인이신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해 우리 대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사랑하라! 사랑의 우선순위에 예수님을 두고 하나님을 두란 말씀이다. 예수님을 나보다 하나님을 나보다 더 사랑해라. 그것이 제자다.
그래서 마태복음 10장 37절에서는 아비나 어미를 나 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않다고 하셨다. 아들딸, 부모 사랑하지 말라! 가족을 사랑하지 말라가 아니다. 디모데전서 5장 8절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가족을 사랑하고 잘 돌보아야 한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하나님 보다 앞에 두지는 말라. 그 정도에서 하나님보다 지나치지 말라. 그러니까 하나님께 바치고 드리는 것이 내 자녀나 부모를 위해 쓰는 것보다 아깝다면 제자가 될 수 없다. 테러의 희생자를 위해 헌금하는 것이 내가 돈을 쓸 때 보다 아깝다면 제자가 되기 힘들다. 그걸 넘어가야 한다. 내 자녀 때문에 주일을 범하고 예배드리지 않는다. 자녀가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이다. 자녀우상이 되고 만다. 그러면 제자가 될 수 없다.
손님이 오셨다. 주일예배 드리러 나오지 않는다. 손님이 하나님 대신이 된 거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제자가 될 수 없다.
나보다 자녀보다 부모보다 친구보다 하나님이 우선이 되어야 제자란 말씀이다.
제자는 죽어야 한다, 무슨 말인가?
정말 죽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자살한다는 말은 아니다. 예수의 참 제자가 되기 위해 예수를 정말 따르기 위해 내 육신의 정욕, 죄의 욕망, 시기, 이기심, 교만의 pride, 죄를 십자가에 못박는다는 말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점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고 하였다. 육신의 욕망이 살아있는 한 결코 예수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따를 수가 없다. 순종할 수가 없다.
우리의 육신의 욕망이 죄가 죽어야 영혼이 산다. 그래야 여혼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 예수를 섬길 수 있고 따를 수 있고 정말 필요하다면 죽을 수도 있다. 예수의 제자들 중에 돈에 대한 욕심을 죽이지 못했던 가룟 유다는 제자에서 탈락되고 말았다. 그러나 육신의 욕망을 십자가에 못박은 제자들은 예수님과 그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죽었다. 그리고 수많은 생명을 죄에서 구원했다. 세계를 정복한 로마를 복음으로 정복할 수 있었다. 그렇다! 한 알의 밀알이 한 알 그대로 살아 있으면 한 알 일뿐이다.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이 있으려면 죽어야 한다. 희생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100년 전, 어느 가을 저녁에 일본의 어느 해안에 있는 작은 마을에 지진이 일어났다. 지진을 자주 경험한 이들 곧바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갔다. 그 마을 뒤편 고지에 사는 한 노인이 바다를 바라보니 바닷물이 검게 변하더니 이상하게 움직이며 바람을 향해 돌진해 가더니 사라져 버렸다. 노인은 그게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빨리 경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손자를 불러 횃불을 가져오게 했다. 그의 뒤에는 큰 밭이 있었다.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쌓아 올린 그의 곡식단이 있었다. 큰 돈이었다. 그런데 노인은 횃불을 들고 급히 달려 나가 그의 곡식단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나서는 공회당으로 뛰어가 종을 울렸다. 불이요!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부자 이웃의 곡식을 건져 볼 양으로 불을 끄기 위해 씩씩거리며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한마디씩 했다. 늙은이가 미쳤군 미쳤어! 쌓아 놓은 곡식단에 불을 지르다니!
그들이 고지의 노인의 밭에 이르자 노인이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보시오! 저 지평선 끝에 길고 가늘고 흐릿한 선이 그들이 보는데서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그 선은 바다였다. 그 바닷물이 높은 벽처럼 올라가더니 연이 나는 것보다 더 빨리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는 천둥소리보다 더 무서운 소리를 내면서 땅을 뒤흔들었다. 이어서 언덕을 통해서 큰 벽같은 바닷물이 다시 마을을 덮치면서 그들의 집을 성냥개비처럼 찢어놨다. 다시 뒤로 물러갔던 바다는 큰 소리를 내면서 또 마을을 강타해 버렸다. 그리고 한 번 더 큰 소리로 마을을 덮치고는 썰물이 됐다. 바닷물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고지의 노인의 밭에서 그 광경을 본 마을사람들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그 노인이 입을 열었다. 이래서 내가 내 곡식단에 불을 질렀소! 그 노인은 그들 중에 가장 가난한 자로 서 있었다. 그 해의 농사 진 재산을 다 날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희생으로 400명의 생명을 구했다.
제자가 누군가? 십자가를 지므로 이 노인처럼 나도 살고 다른 많은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다. 내가 십자가를 지므로 가정을 교회를 내 직장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영광스러운 천국을 만 들어가는 사람이다.
여러분 모두 이런 참제자가 되시어 하나님께서 존귀히 여기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한다.
십자가에서 영광을 보고 영광을 경험하는 사람이다.
여러분! 천국의 영광에 이르는 길은 십자가다. 다른 길이 없다. 십자가후에 영광이다. 십자가가 보이나 기뻐하세요. 하나님, 예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라. 십자가를 지는 겸손과 희생으로 섬기시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참제자가 되라. 그리하여 십자가의 영광을 경험하시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나님께서 존귀케 해 주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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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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