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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십자가에서 하신 일
  본문 : 요한복음 19:25-30
RevSuh  2022-03-20 21:09:07, 조회 : 204, 추천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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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서 하신 일(요 19:25-30)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오신 목적은 모든 사람을 섬기고 내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하셨다. 그리고 그 생명을 위해 사셨고 죽으셨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사명과 죽음은 분리할 수가 없다. 따라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하신 일곱 마디 말씀도 그가 세상에 오신 목적과 사명에 일치하는 것이었다.
오늘 본문은 그 중에 세 마디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그 첫째가 제자 요한에게 모친 마리아를 부탁하신 말씀이요 두 번째가 내가 목마르다고 하신 말씀으로 그의 낮아지심과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신 일이요 그 마지막이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다.
오늘 이 시간은 이 중에서 첫 번째와 마지막 말씀을 함께 묵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첫 번째 말씀
1. 모친 마리아를 위해서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이 죽으시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비참하고 초라했다. 부끄럽게도 옷이 벗기우신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멍투성이었다. 그 자리에는 한 사람의 제자와 네 사람의 여인만이 서서 예수님의 마지막 운명을 지켜보고 있었다. 제자는 사도 요한이요 여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 동생 살로메 즉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 그리고 글로바의 아내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였다.
그 중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고통은 컸다. 일찍이 남편 요셉은 죽었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산 마리아였다. 그 아들 예수님이 왕이 될 것으로까지 기대했었는데 그가 한 말은 하나도 거짓이 없는데 그가 한 일은 모두 선하기만 했는데 죄는 알지도 못하는데 죄도 없는 아들을 종교지도자들이 시기하여 빌라도 총독에게 거짓 고소했다. 압력을 가해 죄인으로 정죄케 했다. 그리고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에 못 박았다. 어떻게 온전한 정신으로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겠나?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고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니 거기 선지자 시므온이 아기 예수님께 대한 예언을 하면서 마리아에게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고 하였다.  
죄없이 죽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던 마리아! 정말 그 마음을 칼로 찌르는 듯이 아팠을 것이다. 슬픔에 젖은 그 마리아에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셨다. 그러니 마리아의 심정이 어떠했겠나? 할 수만 있다면 대신이라도 죽어 아들을 구하고 싶지 않았겠나?

그런데 예수님은 가슴 아파하는 어머니를 불러놓고 더 이상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그 어머니에게 무슨 말씀이 위로가 될 수 있겠나? 얼굴을 돌려 요한을 보셨다. 그리고 그에게 보라 네 어머니다. 영어성경에서는 Here is your mother! 하셨다. 여기 네 어머니가 있다. 무슨 말인가? 네 어머니로 모셔라! 그때부터 요한이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에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인 만인을 위해 대속의 역사를 이루고 계시다. 적은 일이 아니다. 크고도 큰일이다. 온 세계 만민을 위한 일이다. 그것이 그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이고 사명이었다. 그것은 육적인 일이 아니라 영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그때에 사사로운 일, 적은 일처럼 보이는 어머니의 장래에 대한 책임을 무시하지 않으셨다.
큰일을 이루신다고, 죽음 앞이라고, 고통 중에 있다고, 부당하게 죽으신다고 어머님을 도외시하지 않으셨다. 마리아와 예수님의 관계가 무엇인가?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가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어 나았다. 예수님은 우리와 다르게 영원부터 계셨고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마리아의 몸을 통해 낳으심으로 사람이 되셨다. 그러니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았음에도 사람일 뿐이었다. 그가 12살 때쯤 명절에 요셉과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다가 홀로 남았을 때 순례자 틈에 끼어 고향으로 돌아오던 요셉과 마리아가 뒤늦게 아들이 안 보인다고 부랴부랴 예루살렘으로 다시 달려갔다. 아들을 찾다보니 예수님은 성전에서 성경학자들과 성경토론을 하고 있었다. 나무람 반, 염려 반으로 왜 여기 있느냐? 우리가 얼마나 너를 염려하고 찾은 줄 아느냐? 그때 예수님께서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십니까? 라고 대답하셨다. 그때 마리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아니 아들 하나님이시오 마리아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마리아를 어머니로 잊은 적이 없다. 그리고 마지막 죽는 순간에 어머니의 장래를 염려하시고 대책을 세우시고 운명하셨다.
무엇을 가리키나? 예수 믿는 신자는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따르고 살아야 하는 우리는 반드시 육신의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부모공경을 하셨나?
1. 부모님을 결코 잊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기쁠 때, 바쁘실 때, 슬플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뒤따르며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며 왕을 삼으려 할 때도 어머니를 잊지 않았다. 날마다 식사하실 겨를이 없이 바쁜 일정속에서도 어머니를 잊지 않았다. 유대 지도자들의 시기로 죄없이 거짓증거로 정죄되고 자리를 탐했던 빌라도가 저들 고소자들을 기쁘게 하려고 그를 십자가에 못박게 한 때도 어머니를 잊지 않았다. 죽음의 순간, 견딜 수 없는 십자가의 고통이 그를 사로잡는 순간에도 어머니를 잊지 않았다. 부모공경도 어느 형편에서나 어디서나 부모를 잊지 않는 것이다. 나를 있게 하시고 기르시고 가르치시기 위해 희생하신 부모님! 그 부모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이민자로 미국에 와서 살고 있다. 부모님이 함께 이민을 오신 경우도 있지만 한국에 계신 분들도 있다. 부모님이 한국에 계셔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미국에 온지가 얼마되지 않아서 정착의 어려운 나날이 지속되더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민 온지가 30년이 되었더라도, 평안하게 살더라도 부모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혹시 병저 눕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예수님은 죽음 앞에서도 어머니를 잊지 않고 기억하셨으니 우리도 잊지 말아야 한다. 부모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효도다.
미국의 속담에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게 멀리 계신 부모님! 잊지 말아야 한다. 마음속에서 부모님의 모습을 지워지지 않게 해야 한다. 어떻게요? 전화를 드리는 것이다. 편지하는 것이다. 부모님의 생신을 기억하고 선물을 하는 것이다.
가까운데 사시나?  찾아가 인사하는 것이다. 음식대접을 해 드리는 것이다. 부모님을 잊지 않고 그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 효도다.

효도가 무엇인가? 부모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갚는 것이다. 그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은 어머니를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셨다. 마리아가 그 자리에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 이전에 벌써 예수님은 목수의 일로 어머니와 동생들을 부양했다. 공생애 3년 기간에도 어머니와 동생들을 보살폈다. 그리고 마지막 죽음 직전에 요한에게 내 어머니! 네 어머니다! 내가 없는 동안 네가 공궤하라.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참다운 부모공경은 부모님을 내 집에 모시고 공궤하는 것이다. 부모님이 일손을 놓으셨으니 일하는 내가 공궤해 드려야 한다. 미국에 이민을 와서 사는 우리는 이것이 잘 안 된다. 노인 아파트가 있다. 나라에서 생활보조비를 준다. 그러니 부모님의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된다. 그래서 모른척한다.

우리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모른척 하셨다면 우리는 모두 굶어 죽었을 것이다. 당신들이 먹고 싶으신 것 다 안 잡수시고 사고 싶은 것 다 안 사시고 가 보고 싶은 곳 다 안 가시고 아끼고 아끼셔서 먹이시고 입히시고 가르치셨다. 그러니 우리도 그리해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이 마지막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보여주신 자식의 도리다.

두 번째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을 생각할 차례다.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 하시고 운명하셨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일곱 말씀 중에서 여섯 번째로 하신 말씀이다. 본문에서 요한은 세 번째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 다 이루었다. 무슨 말씀인가? 이 땅에 오신 목적 사명을 다하셨다는 말씀이다. 이 말의 뜻은 다 지불했다. paid in full이란 말이다. 다 이루었다. 끝냈다는 뜻이다. 무엇을요? 구속의 역사를 완성하셨다. 완료했다는 말씀이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죄의 값을 다 치루셨다. 그래서 더 이상 정죄가 없고 죄에 대한 심판이 없게 되었다는 말씀이다. 무슨 죄인가?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셨다. 그리하여 저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죄값의 형벌로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우리의 죄가 사해졌고 의로워졌다. 그러니 정죄가 없고 심판이 없게 된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다. 이것이 복음이다. 기쁜 소식이다.

오늘 우리는 다원화 시대를 산다. 그러면서도 단일화를 추구하는 세상을 살아간다. 세계화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가 관용하며 이해하며 서로를 양보해 가며 화합과 일치를 이루어 가자고 한다. 이것이 인류의 공동목표가 되어야 하며 그래야 이 세상에 평화와 안전이 오고 행복한 삶을 살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생각이다. 그러나 여기에 문제가 있다. 신앙과 종교에 있어서도 통일이 가능하다는 생각인데 이것은 성경이 하나님이 용납하지 않으신다. 모든 종교가 같고 차이는 사소한 것이다. 그 차이는 서로가 양보하면 된다. 모든 종교가 믿는 신은 다 하나님이다. 무슨 종교, 무엇을 누구를 믿던 구원을 받는다. 천국에 간다. 지옥은 없다. 참으로 그럴듯한 말이다. 아니 그리만 된다면 누군들 안 좋아하겠나? 누가 마다하겠나? 그러나 여러분 참 구원이 무엇인가? 죄의 결과인 죽음과 심판 그에 따르는 모든 불행에서 자유케 되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죄를 가지고 있는 한 구원은 없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고 죄를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느 종교든지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구원을 약속하는 것은 거짓이요 진리가 아니다. 누구나 죄인이기 때문이다. 참 구원은 죄인 대신 누군가 죄없는 이가 그 죄를 대신 담당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사람이 되신 죄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정죄되어 심판을 받아 죽으심으로 죄인이 된 우리의 죄를 사하셨다. 다 이루었다가 그 말씀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죄값을 대신 담당하셨으므로 우리 죄에서 구원하실 수 있으신 유일한 우리의 구주가 되셨다. 예수를 믿으면 죄가 사해진다. 정죄와 심판이 없다.
그러나 세상의 어느 종교의 교주도 죽으면서 다 이루었다. 죄를 대속했다고 한 사람이 없다. 아니 내 생명을 대속물로 주기 위해 왔다고 말한 이도 없다. 그들도 죄인으로 낳았을 뿐이니 남의 죄를 대신 할 수도 없었다. 그가 죽었다면 그것은 그의 죄 때문이지 남의 죄 때문은 아니다.

그러므로 어느 종교를 믿어도 구원받는다는 말은 잘못이다. 하나님께서 천하 인간에 구원받을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 모든 종교의 교주가 죽어 무덤에 묻혔다. 저들은 그들의 무덤을 장식하고 자랑한다. 누구도 다시 살지 못했다. 구원이 죄와 그 심판이 사망에서의 구원이라면 죽어도 다시 살아야 한다. 그래야 영생이 아닌가? 그러나 어느 종교의 교주도 다시 살지 못했으니 그를 믿는 자가 어찌 살겠나?

하지만 예수님을 장사한 무덤은 비어 있다. 그가 다시 사신 것을 본 사람은 500명이 넘는다.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이 너희(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였으나 하나님이 살리사 주와 그리스도 구원의 주로 삼으셨다고 외칠 때 저들은 아니라고 못했다. 그때에 예수의 부활을 본 사람들이 죽은 이도 있었지만 다수가 살아 있었다. 그래 전도하는 사도들, 신자들은 예수가 살았다고 전하지 못하도록 잡고 가두고 때리고 위협했지만 그 복음이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 거짓말이라고 반박하지 못했다. 그저 말을 못하도록 핍박하며 입을 막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예수 밖에는 구주가 없다. 예수를 내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죄가 사해진다. 정죄가 없다. 심판이 없다. 죄에서 구원받는다. 죽어도 다시 살고 영원히 산다. 영생한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다.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된다. 여기 더할게 없다. 다 예수님이 이루셨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댓가를 지불하셨다. 그러니 이 은혜의 복음, 구원의 축복,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한다면 어찌 구원을 받겠나?

그러므로 모든 종교가 같은 것도 아니고 누구를 믿어도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다른 종교를 믿는 신앙자를 우리가 싫어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당신의 종교 신앙이 옳다고 해선 안 된다. 당신도 구원받는다고 해선 안 된다.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따라서 구원의 길이 오직 예수라면 예수를 전해야 한다. 정보를 통해 많은 것을 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구원의 진리를 모른다. 구주 예수를 모른다. 그러니 저들이 모르고 있으니 예수를 하나님의 사랑, 구원의 길을 저들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 전도해야 한다. 이것이 십자가 지시고 모진 고초 다 당하시고 죽으시면서 보여 주신 진리요 우리의 사명이다.

배우 Cary Grant가 한번 이런 말을 했다. 거리를 따라 걷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그를 뒤따라오면서 그에게 그를 보면서 흥분해 했다. 저 사람이 누구더라? 잠간 가만 있자 당신은 당신은 내가 아는데 말하지 마세요. 내가 맞출게. 저 Rack Hudson! 아니지, 당신은.. Grant는 그를 도우려고 했다. 그 사람의 말끝에 Cary Grant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 하는 말이 아니오! 틀렸소. 당신은... Cary Grant는 그 자신의 이름과 자신이 같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뒤따라오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그가 세상에 있었고 세상은 그를 통해서 만들어졌으나 세상은 그를 알지 못했다고 하였다(요 1:10).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을 통해 가르치시는 진리는 균형이다. 균형이룬 신앙이다. 예수님은 인류 구원의 구속의 큰 역사도 이루셨고 육신의 어머니도 공경하셨다. 우리 구원받은 신자는 생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어야 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해야 한다. 그러나 육신의 부모님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한다.
바울 사도는 가정도 없이 살았다. 그는 정말 천국을 위해 스스로 고자가 되었다. 전에 중요하게 여겼던 세상 지식, 가문, 장래의 출세, 성공은 다 포기했다. 오직 예수, 오직 복음, 구원의 길이 예수밖에 없음을 깨달은 그는 그의 남은 생을 오로지 복음증거를 위해 3차 세계전도로 마쳤다. 말로 못한 고난, 핍박을 참고 견딘 것은, 그의 가장 큰 소망은 재림의 예수였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 중에 재림 재림하면서 일 을 하지 않는 자가 일하는 다른 신자 집에서 붙어먹고 사는 신자들을 호되게 꾸짖었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밥도 주지 말라. 재림의 주님 기다린다면서 놀고 앉아서 예수 언제 오실까가 아니다. 세상에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잘 하는 것이 주님을 잘 맞이하는 길이라 일러 주었다.

목회서신에서 교회의 직분자, 목사, 장로, 집사의 그 자격이 가정의 의무를 다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아내 사랑, 자녀 사랑, 나그네 사랑, 빗나가는 자녀가 없어야 한다. 그래 사람들에게 칭찬듣는 자여야 한다.
목사라도 교회를 위한다고 가정을 안 돌아본다면 목회할 수 없다는,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5장 8절에서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않는 자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어찌 이런 자가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겠는가? 하나님의 일을 하겠는가? 여러분! 균형이룬 신앙생활하자.

오늘 예배당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드리시니 잘 하셨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마세요. 오늘 부모님께도 전화를 하세요. 한국에 계신가? 편지를 쓰세요. 언제 식사 대접 해 드렸나? 오늘 저녁에 하세요. 부모님이 예수를 모르시나? 제일 큰 효도는 전도임을 잊지 마세요.

중부에서 목회를 잘하고 있는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다. 그 분이 대학 4년 때 예수 영접하였다. 그런데 예수를 영접하기 전 왜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풀리지 않아 자살 충동,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다. 그리고 경제학 대학원을 했다. 그가 예수를 믿기 전 고등학교때부터 술, 담배, 마약, 히피족 친구들과 사귀고 타락했다. 그런데 동생의 권유로(강원) 어느 부흥회에 가서 강사 목사님의 말이 병아리가 병들어 시름시름 앓더니 죽게 됐다. 수의사의 진단! 암탉을 한 마리 잡아 삶아 먹이면 낫는다고 한다. 병아리를 살리려고 암탉을 죽이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수의사! 병아리 살리려 송아지 잡아먹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벌레만도 못한 우리 죄인을 살리기 위해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그 말을 들은 그는 그만 고꾸라지고 말았다. 주님을 영접하고 나니 큰일났다.  부모님께서 예수를 안 믿으니 지옥에 떨어진다. 그래 동생과 함께 기도를 열심히 하고 한국 계신 부모님께 편지로 전도를 했다. 그러나 절간에 다니시는 독실한 불교 신자 어머님은 처음에는 편지를 보내면 열어 보시지도 않는다. 동생과 그는 어머니를 살려야 한다고 금식기도원에 간다. 기도원 들어가 어머니 영혼 구원해 달라고 7일 금식기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우편물을 뒤적이니 거기 어머님이 보낸 편지가 있어 뜯어보고 깜짝 놀랐다. 편지 서두에 할렐루야로 시작하셨다. 그들이 순복음교회 금식기도원에서 금식중에 어머니께서 편지를 쓰셨다. 금식 전부터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 그러나 기도마치니 할렐루야 편지 감격스러웠다.  

여러분 오늘 내 신앙생활 바른 평가하기 원하나?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라 거기서 하신 말씀을 잊지 마시라. 잊지 말고 균형이룬 신앙생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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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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