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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신실하신 하나님
  본문 : 롬 3:1-8
RevSuh  2009-08-17 20:55:10, 조회 : 3,062, 추천 : 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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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하신 하나님(롬 3:1-8)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행복한 사람보다 불행한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왜 불행한가?
많은 사람들이 심장, 혈관질환, 호흡기질환, 당뇨로 고생한다. 병 때문일 수 있다. 그런데 근래에는 암이 제일 두려운 존재다. 암은 우리 몸의 어느 기관이나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 게다가 늦게 발견하면 생명까지 잃게 된다. 먹을 것이 없고 살 곳이 없는 가난이나 그밖에 범죄, 전쟁 또 홍수, 태풍, 지진같은 재난도 있다. 불행의 원인을 들자면 한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은 나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라며 불평한다.

요즈음 한국이나 미국이 모두 대통령 선거를 앞에 두고 있다. 국민들이 행복하지 못한 것이 정치를 못해서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경제를 살리겠다, 미국에서는 전쟁을 그치게 하겠다며 대선후보들이 공약한다. 내가 국민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 말에 국민들이 솔깃해 한다. 그러나 그 공약이 정말 실천될 수 있을까? 경제가 좀 나아지면, 이라크에선 미군을 철수시키면 행복할 수 있을까?  

앞서 바울은 유대인들이 스스로를 신뢰하는 것은 무익하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저들을 선민으로 택하신 하나님! 저들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신가?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신가? 도대체 유대인의 유익은 있기나 한 것인가?

오늘 본문은 그 질문에 대해 대답한다.
여기서 바울은 분명 유대인의 나음이 있다고 한다. 그것도 범사에 많다고 말씀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 언약 할례의 유익이나 잇점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그들을 보호하고 지킬 수 없었다면 유대인의 무엇이 이익이요 나음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럼에도 다른 가치가 있다고 말씀한다. 그리고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계명이나 약속만이 아니다 구약성경 전체다.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맡기셨다. 이것은 어느 민족에게도 허락하지 않은 특권이었다. 신명기 4:8에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나라가 어디 있느냐? 또 시편 147:19-20에 저가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아무 나라에게도 이같이 행치 아니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할렐루야 하십니다. 정말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인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유익이 무엇인가? 그 규례와 법도가 이스라엘을 행복하게 했는가?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부름으로 시작된다. 이스라엘이 민족을 이루게 된 것은 야곱때 그의 아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 갔으나 애굽의 총리가 되면서 흉년때 아버지와 형들을 애굽으로 청하면서 시작되었다. 저들은 한 시 동안은 요셉의 후광 덕분에 특권층 행세를 하며 잘 살았다. 그러나 요셉이 죽고나서 요셉을 모르는 왕이 나타나면서 핍박이 시작되었다. 아들을 낳으면 애굽의 산파를 통해 죽이게 했다. 그것이 효력이 없자 남자아이는 강물에 빠뜨려 죽이게 했다. 애굽의 바로왕은 이스라엘 민족을 말살시키려 했다. 또 저들은 노예처럼 부렸다. 저들은 400년간을 종살이했다. 모세를 통해 애굽을 탈출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되지만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면서 그 1세대는 다 죽고 말았다. 2세대만이 가나안에 들어갔으나 강한 족속들을 다 내어쫒지 못하므로 그들을 가시처럼 괴롭힌다. 그리고는 그 약속의 땅에서 장구하게 행복을 누리지 못했다. 겨우 3대가 지나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졌고 북쪽은 앗수르에 멸망하여 포로로 잡혀갔고 남쪽 유다는 바벨론에 망해 포로되어 가고 말았다. 그 후에 돌아온 백성과 남은 사람들은 헬라에 정복되었다가 마침내 로마에 속국이 되고 말았다. 주후 70년 로마와 싸움에서는 100만 명이 살해되고 10만 명이 포로가 되고 말았다. 이것이 유대인의 역사라면 운명이었다면 유대인의 선민의 나음이 무엇인가? 아니 하나님의 말씀을 위탁받은 민족의 유익이 어디 있는가? 하나님은 과연 신실하신가? 믿을 수 있는 분이신가? 하나님은 공의하신가? 오늘 본문은 그렇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에서 신실하셨다. 말씀에 약속하신대로 메시야를 보내셨다. 그런데 그 백성들이 그들이 지닌 하나님의 말씀대로 오신 메시야를 믿지 않았다. 오히려 메시야 구주를 죄인으로 몰아 정죄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그렇다면 그들의 불신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는가? 그 불신 때문에 메시야를 죽인 죄 때문에 더 나아가 그 죄에 대한 심판 때문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공의가 무너지는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불신과 죄가 심판을 받으므로 하나님의 공의가 더 확연히 드러난 것뿐이다.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저들의 선민됨과 말씀의 오해에 있었다. 이 말씀이 기록될 제1세기로부터 지금까지도 유대인들은 축복의 약속이 있는 모든 말씀은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라 하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언약에 성실하시고 진실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모든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에는 조건이 있었다. 신실하심은 이스라엘에게 하신 축복의 약속보다 훨씬 더 크시다. 신명기 7:9절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면 천대까지 인애를 베푸신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미워하면 당장 보응하여 멸하시겠다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말씀에 신실하시다. 축복에만 신실하지 않으시고 심판에서도 신실하시다.

따라서 바울은 시편 51:4을 인용할 수 있었다. 시편 51편은 다윗 왕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후에 나단 선지를 통해서 책망하시고 그 죄로 인해 받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다윗의 반응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책망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여러분! 여기서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 죄 때문에 그의 남은 생은 불행한 심판을 받았다.
1) 칼이 영영히 그의 집을 떠나지 않았다. 아들끼리 칼로 서로 죽였다. 아들이 칼로 아버지를 대적했다.
2) 재난이 있고 한낮에 그의 아내들이 타인과 동침한 것이다.  
3) 간음으로 잉태하여 낳은 아들을 하나님께서 죽이셨다. 그때 다윗은 그렇습니다. 내 악을 하나님이 보셨으니 하나님의 책망도 하나님의 심판도 공의로우시고 순전하시다고 고백하였다.

창세기 18:25에는 아브라함이 소돔성을 멸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았을 때 그 심판이 공의롭지 못하시다고 항변했다.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 중재자로 나서면서 그 성에 의인 50인이 있으면 그 성을 멸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멸하지 않겠다 하시나 아브라함은 확신이 없었다. 그래 45인이 있으면 어찌하시겠읍니까? 자신이 없었다. 30인, 20인, 마침내 더는 하나님께 말씀을 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은 노하지 마십시요. 의인 10인이 있으면 어찌하시겠습니까? 내가 그들로 인해 멸하지 않겠다. 아브라함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항변에도 불구하고 그 성에는 의인 10명이 없었고 결국은 멸망하고 말았다. 그때 아브라함의 항변은 하나님! 의인은 악인과 함께 죽이는 것은 불가합니다. 그것은 의가 아닙니다.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취급하시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성에는 아브라함의 생각의 마지막 의인 10인이 없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의로웠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살리셨고 악인은 멸하셨다. 하나님께는 그 심판 중에서도 오히려 죄와 불의를 심판하시므로 온전히 의로우시었다. 의로우심을 확연히 드러내시었다. 4절 말씀처럼 사람은 거짓되되 하나님은 참되시다. 시편 33:4에 하나님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 행사는 진실하다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맡은 선민 유대인이 심판받아 불행해졌으나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의로우시고 신실하심을 증거했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오늘 우리는 과거에 이스라엘보다 더 많은 유익과 특권을 지녔다. 예수안에서 택하심을 받고 부름받고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구원받았다. 그런데 그 복음을 믿지 못했다. 성령님께서 감화 감동을 하시어 은혜로 믿었다. 그래서 은혜구원이다. 그런데 한번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신다. 요한복음 10:28을 보면 예수님을 내 구주로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신다. 그는 영원히 멸망치 않는다.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 하였다. 저희는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며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 게다가 우리는 이스라엘보다 더 분명한 약속만 아니라 성취의 말씀 구약만 아니라 약속의 성취인 신약을 받았다. 정말 특권이다. 정말 유익과 축복을 받았다. 그런데 축복과 유익은 과거 이스라엘이 선민이 된 것과 같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있지 않다.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의 사랑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예수 안에서 택함받고 성령님의 역사로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은 자였다. 그런데 이스라엘보다 더 큰 은혜와 사랑을 받았다면 겸손하자. 감사하자. 하나님의 은혜만 신뢰하자. 섯다고 생각하면 이스라엘처럼 넘어진다. 본문을 기록한 바울사도처럼 나의 나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다. 그런데 오늘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에게도 무엇보다 유익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임을 잊지 말자. 그렇다면 그 말씀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해야 한다. 말씀을 주신 목적은 그 말씀을 생명의 말씀이기에 그 말씀대로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 우리 모두 구원받았다. 그런데 말씀을 주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씀이 신자된 우리에게 경건의 악세사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신앙생활의 규범이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처럼 옷깃에 주렁주렁 써 붙이고 이마에 붙이고 그러나 마음은 아니었던 저들이 되지 말아야 한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늘 다니는 아는 길이 아닌 곳을 가려면 필요한 것이 있다. 지도다. 지도만큼 정확하게 목적지를 잘 안내해 주는 것은 없다. 구원받은 신자에게 성경은 지도와 같아야  한다. 천국 순례의 길에는 수많은 곁길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지도가 있어야 한다. 지도는 성경이다. 우리는 성경을 늘 지니고 다녀야 한다. 성경이 가라는 곳으로 가야 한다.  

성경이 옳다 하면 옳고 아니라면 아니다. 옳은 것은 행하고 아닌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성경은 교통의 신호나 안내표지판과 같다는 말이다. 따라서 주일 하나님의 말씀의 설교는 한주 동안 내 삶에 지도가 되어야 한다. 들은 말씀을 잊으면 지도없이 목적지를 가는 여행자와 같다. 길 잃은 양처럼 세상을 살 수밖에 없다. 여러분! 지난 한 주간 어찌 살았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 실천하며 살았나? 그렇지 못했다면 이 시간 오늘 본문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도록 내 마음 밭을 살피자. 길바닥, 돌짝밭, 가시덤불은 아닌가? 옥토의 마음밭이 될 때만 삶 속에서 결실의 열매가 맺는다.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려면 유혹과 시험을 물리치는 능력이 되어야 한다. 마귀와 사단이 하는 일은 속이는 일이요 유혹하고 시험하는 것이다.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게 한다.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부추겨서 범죄하게 만든다. 마귀는 예수님도 시험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라. 내게 절하라. 그때 예수님은 모두 말씀, 하나님의 말씀, 아버지의 말씀으로 물리치셨다. 이기고 승리하셨다. 에베소서 6:10 이하에 마귀의 궤계를 파하고 승리하기 위해서 전신갑주를 취하라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패를 붙이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그리고 공격 무기를 지녀야 한다. 마귀는 공격해야 이긴다. 대적해야 이긴다. 그 무기가 무엇인가? 성령의 검이요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와 시험을 대적해야 한다. 예수님의 산상 수훈 마태복음 5:27 이하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네 백체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 네 오른 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이 말씀 바로 전에 간음하지 말라 하시고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하셨다. 이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이들 중에 스스로 자신을 거세한 이들이 있다. 이는 말씀을 바로 본 것이 아니다. 죄, 음욕은 다 먼저 마음에서 시작된다. 우리의 지체는 마음의 도구일 뿐이다. 손을 칼로 찍는다고 노름을 그치지 않는다. 거세는 그 방법이 잘못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문자적으로 순종하려는, 지켜 가려는 신앙과 열정은 본받을 만 하다. 그것이 무엇인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 말씀이 나를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며 의로 교육하게 하므로 마귀의 유혹과 시험을 이길 수 있게 되어야 한다.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려면 히브리서 12:4말씀을 마음에 두고 묵상해야 한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않았다. 죄와 싸워야 한다. 이 말씀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다. 문자적으로 죄와 싸워라, 싸운다. 운동선수 특별히 권투선수를 보라. 서로 상대방의 얼굴을 가격한다. 상대방의 펀치로 눈 주위에 맞으면 살갗이 찢어진다. 피가 흐른다. 기권하나? 아니다. 그래도 싸운다. Ko가 될 때까지 싸운다. 상처가 난다. 몸을 다친다. 심하게 머리를 잘못 맞으면 의식을 잃는다. 죽기까지 한다. 그렇게 죄와 싸워라. 뭐 그 까짓것, 그건 죄도 아니다. 죄 뒤에 사단이 있다. 죄는 멀리해야 한다. 피해야 한다. 싸워야 한다. 제압해야 한다.

또 다른 뜻이 있다. 외적인 박해다. 개인의 죄와의 투쟁이기 보다는 신앙의 원수에게서 오는 환란이다. 저들은 폭력으로 신앙을 떠나게 한다.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한다. 예수만 믿지 않으면 살려주겠다. 그를 부인하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자의 밥이 되게 하겠다. 화형시키겠다고 위협한다. 안디옥의 감독 이나리우스는 신앙 때문에 Trajon 황제때 체포되어 10여명의 군사에 이끌려 로마로 간다. 마침내 그는 황제의 재판자리에 섰다. 그때 그는 내가 오직 그리스도를 알게 된다면 화형이나 십자가나 사나운 짐승의 공격이나 또는 내 뼈가 꺾이고 사지를 부러뜨려지며 온 몸에 멍이 들도록 매를 맞는 등, 어떤 마귀의 괴롭힘도 참고 견디겠노라. 황제가 빌라도에게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그가 네게 그렇게도 중요한 존재인가? 그렇습니다. 그 분은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화형을 당하게 될 때 이렇게 감사하였다. 주님께서는 나를 이와같이 영화롭게 되는 것을 허락해 주셨읍니다. 피 흘리기까지 죽기까지 잘 싸워 이겼다. 어떻게요? 그 현재의 화형의 고난은 장차 천국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영광에 비교할 수 없다는 말씀을 붙들고 믿었다. 승리했다. 이런 신앙 말씀이 역사하는 신앙을 본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감동을 받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이 신앙이 로마를, 핍박의 제국을 정복하여 기독교의 왕국을 만들었다. 말씀의 능력이다.

여러분!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감사하자. 하나님을 찬양하자. 무엇보다도 성경말씀을 주셨으니 성경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복음의 향기를 드러내자. 이를 위해 요한계시록 1:3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 지키는 자가 되시기 바란다.  
말씀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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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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