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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일용할 양식(주기도문 강해)
  본문 : 마 6:9-13
RevSuh  2009-12-02 14:11:56, 조회 : 4,270, 추천 : 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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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할 양식(마태복음 6:9-13)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가 이제부터는 하나님에게서 우리에게로 옮겨진다.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한 후에 우리에 대한 첫 간구가 시작된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이 간구와 나머지 두 간구를 포함한다면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는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 어느 분은(헬무트 릴리케) 큰 것, 작은 것, 영적인 것, 물질적인 것, 내적인 것, 외적인 것, 어느 것 하나 주기도문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 우리를 위한 첫 번째 간구,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에서 일용할 양식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 간구의 참 뜻이 무엇인가? 일용할 양식은 누구에게나 설명이 따로 필요없다. 누구나 잘 안다. 그러나 여기서 일용할 이란 말은 원문인 헬라어 문헌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여기서만 사용되었다. 다만 일용 잡화의 목록이 포함된 비문헌 자료인 파피루스 조각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고 해요. 거기서 이 말은 한 주에 필요한 것들이란 의미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일용할 양식은 오늘의 빵 또는 내일의 빵 즉 내일을 위한 빵을 의미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만일 이 기도를 아침에 드렸다면 그것은 고난의 필요를 구하는 것이다. 만약 저녁에 이 기도를 했다면 그것은 그 다음날의 필요를 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날마다 살아가는데 꼭 있어야 할 물질적 필요를 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의 기도가 하나님의 영광에서 갑자기 물질적 필요로 내려오는 것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초대교회 교부들 중에는 일용할 양식을 물질적인 떡으로 보려 하지 않고 영적으로 보았다.

Jerome, 그가 번역한 라틴어 성경에서 우리의 초자연적인 떡이라고 번역하였다. 하나님을 위한 세간구에 이어 우리의 물질적(축복을) 안녕을 구하는 기도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으로 보다 하나님의 말씀의 보이지 않는 떡이나 성찬의 떡으로 보았다. 이런 전통을 따라 로마 카토릭에서는 여기 양식을 성찬의 떡, 곧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 말씀은 문자적으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질적인 떡이요 빵을 가리킨다. 오늘의 양식이다.

그러면 왜 일용할 양식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누구신가? 창조주시다. 우주와 만물을 다 지으시고 먹이시고 입히시는 조물주이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다. 시편 100:3절 여호와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지으신 자 자신이요 우리는 그의 백성이며 그의 기르시는 양이라 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버지처럼, 목자처럼, 그의 백성, 양된 신자들의 양식을 예비하신다. 104:15,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심을 주셨다고 하였고 이사야 55:10에서는 비를 내려 토지를 적시며 싹이 나 열매를 맺게 하심으로 파종자에게 종자를 주고 먹는 자에게 양식을 주신다고 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셔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때 그 백성이 하나님께 순종치 않으므로 40년간 훈련을 시키실때에도 그들이 당신의 백성이었으므로 사랑하셨다. 그래 광야에서 농토가 없고 밭을 갈거나 파종하지 못했음에도 기적적으로 일용할 양식을 주셨다. 우리가 다 잘 아는 만나다. 갓씨같이 둥글고 단맛의 일용할 양식은 40년간 매일 먹여 주셨다. 따라서 우리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창조주시오 모든 피조물들에게 양식을 주시는 예비자이신데 특별히 우리에게는 자녀를 돌보시는 아버지이시기에 기도할 수 있다. 기도해야 한다. 오늘날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기도하면 자녀를 위해 예비하시는 아버지 되신 하나님은 우리의 이 기도를 기쁘게 들어 주신다.

일용할 양식에서 우리는 무엇을 구해야 하나?
일용할 양식은 한 날의 양식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단지 Bread 떡이나 빵만 구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하루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 전부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입을 옷도, 마실 음료도, 잠을 잘 집도 포함된다. 우리는 미국에 사니까 발이라 할 수 있는 교통수단의 자동차가 있어야 산다. 이런 모든 것을 구할 수 있다.

우리 교회에서 오래 전 두 번이나 부흥회로 은혜를 끼치신 정목사님이 뉴욕에 오셔서 교회 맡으시고 목회를 시작하셔서 차를 없으니 심방도 할 수 없고 해서 하나님께 헌차라도 좋습니다. 차를 주십시오 라고 기도했는데 한달이 채 안되어서 유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공부하다 한국에 들어가는 학생이 목사님! 괜찮으시다면 제가 쓰던 헌차지만 쓰십시오. 기도한대로구나, 새차 달라고 할 것을! 차도 주신다. 일용할 양식 얻는데 필수 아닌가?
  Martin Luther 종교개혁목사는 음식만 아니라 건강한 몸, 좋은 날씨, 아내, 자녀, 좋은 정부의 평화도 포함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필요한 수단이지 지나친 사치나 부의 상징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컨트휴즈는 아바 아버지에서 멋진 카타로그에 나와 있는 것들을 마음대로 구할 수 있는 백지 수표같은 것이 결코 아니라고 하였다. 그가 한번도 여러 목사님들과 함께 모임을 가진 적이 있었단다. 그래 한 목사가 이렇게 말을 했단다. 만약 우리가 캐딜락이나 커다란 옷장을 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시편 37:4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는 말씀에 부합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캐딜락과 구찌 구두와 티파니 가구를 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반드시 하나님이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성경 어디에도 양식을 구하란 말씀으로 그렇게 가르친 곳은 없다. 그 분을 결국 사기혐의로 기소당했다고 한다.

우리는 이 기도에서 우리 가정의 생명과 건강과 안녕에 꼭 필요한 것을 구해야 한다. 그렇다! 평범한 일용할 양식이지 기름지고 값비싸고 사치하고 최고급 양식을 구하란 말씀이 아니다. 이 기도는 구약의 성동의 기도처럼 부자도 가난하게도 말게 해 달라고 한 기도처럼 하나님께 구해야 할 것이다.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주신다는 말은 무엇인가?
우리 하나님은 필요하다면 기적을 통해서도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실 수 있으시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을 향해 가는 도중 광야 40년을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시지 않았나? 40년을 안식일을 빼고는 날마다 내게 주셨다.
어디 그 뿐인가? 마가복음 6:41, 아니 사복음서가 모두 기록하듯이 배고픈 청중 5,000명 아니 족히 10,000명이상일 청중을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덩이로 먹이시고도 12광주리가 남게도 하셨다. 아합왕의 흉년때 선지자 엘리아를 시냇가에 두시고 까마귀를 통해 떡과 물고기를 물어다 먹이셨고 그 시내도 물이 마르자 사르밧의 한 과부를 통해 먹이시었다(왕상 17:10-16). 그것도 기적으로 가루통과 기름병에 밀가루와 기름을 기적으로 예비해 주셨다. 그러나 이 기도는 그런 기적을 바라고 기도하란 말씀이 아니다.

마태복음 6:31에서 예수께서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어서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다.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하셨다. 그러나 34절, 결론적으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하였다. 내일을 염려말라신다. 그러나 오늘 한날에는 괴로움이 있다. 왠가? 염려로 괴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과 노동의 괴로움은 피할 수 없다는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한 날을 괴롭게 일하는 사람, 땀흘려 일하는 사람은 일용할 양식으로 걱정하지 않게 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는 말씀이다. 내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기도는 결코 요행수를 바라라는 것은 아니다. 바울사도는 선교사였지만 밤낮을 일하며 살았다. 그리고 데살로니가후서 3:10에 일하기 싫어하거든 그가 누구든지 먹지도 말게 하라 하셨다. 주님의 오늘 오신다고 해도 그렇다.

그러면 일해서 먹는데 무슨 기도가 필요해, 그것이 무슨 하나님이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것인가? 그런가? 일하려면 건강이 있어야 한다. 건강이 어디 내 맘대로 지켜지나? 또 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가 있어야 한다. 직장이나 사업이 있어야 한다. 그것들이 어디 우연인가? 내 뜻대로 되나? 아니다! 창조주 하나님, 우리의 하늘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축복으로 일하게 하시고 일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일로 일용할 양식을 주심을 기대하며 땀흘려 일하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주신 양식을 인해서 공급자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한 주에 6일을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며 땀흘려 일하는 성도가 이 기도를 할 수 있고 기도는 풍성한 일용할 양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이 기도를 하면서 믿고 땀흘려 일해야 한다. 그리고 주께 주신 일용할 양식을 놓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마땅하다. 그때 자녀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예비하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감옥선교 회장인 Chack Colson이 어느 날 저녁 한 친구와 함께 커피삽에 앉아 두 개의 치즈 오므렛을 시켰다. 그리고는 음식이 나오기 전에 친구 Fred와 함께 감사 기도하였다. 그가 친구와 머리를 숙였다. 꽤 길게 기도했다. 그리고 나서 숙였던 머리를 들었을 때 웨이트레스가 오므렛 접시를 들고 옆에 서 있었다. Hey! 당신들 기도하고 있었군요. 그녀는 놀라는 기색을 하며 그 작은  방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들릴 정도로 크게 말하는 바람에 모두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렇소! 우리는 기도하고 있었소! 정말 아주 멋지네요. 나는 전에 어느 누구도 기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당신들 목사요? 아니요. 그들은 감옥선교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대화의 결과 음식앞에서 감사한 그 웨이트레스가 방황하던 신앙에서 새롭게 하나님을 추구하는 크리스챤이 되었다.

여러분! 식사 일용할 음식 앞에 놓고 집에서만 기도하시나? 식당에서나 음식점에서 사람들 앞에서 기도하는 것이 부끄러운가? 사람 앞에서 내 신앙을 부끄러워하면 하나님앞에 설 때 부끄럽게 될 것이다.
이용도 목사라는 분이 있었다. 감리교 목사로 부흥사다. 그러나 짧게 30을 산 분이다. 그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국수집에 들어가 국수를 먹으며 감사할 생각은 조금 들긴 했어도 부끄러워 기도를 못하고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며 속으로 기도의 뜻만 표했다. 이것이 마음에 걸려 그 다음 국수집에 들어갈때는 들어가면서 오늘 국수 먹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국수를 먹었다. 그러나 집에 와서 성경을 보며 기도하다가 하나님께 감사할 생각이 자꾸 나서 감사하다가 만물 주신 감사!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나님! 예수님 나 위해 죽으신 것 생각 감격했다. 나는 너 위해 죽었는데 너는 국수집에 들어가 국수 먹으며 기도하기가 부끄럽단 말이냐? 예수쟁이라고 할까봐! 그 후에 그는 국수집에 들어가 사람들이 보던 말든 큰 소리로 기도하고 국수를 먹으니 국수맛이 꿀맛이 되더란다. 어디서나 음식놓고 감사기도하면 음식맛이 꿀맛이요 그 음식이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다. 음식점에서 기도 못하던 다른 신자들 용기내어 기도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6일을 땀흘려 일하면 하나님은 꼭 일용할 양식만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더 풍성하게 주신다. 왤까요? 나누는 자로 더 복되게 하시려고요. 고린도후서 9:7,8에 하나님께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신다.  8절,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에 넘치게 하심이라!

9절에 기록한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그렇다! 우리가 이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를 바로 한다면 우리는 특별히 가난한 성도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나누게 된다. 하루에 세 번씩 주님이 가르쳐 주신 이 기도를 했던 초대교회는 성도들이 내 것을 내 것이라 고집하지 않았다. 밭팔고 재산  팔아 사도들의 발앞에 가져왔다. 사도들이 가난한 성도들에게 분배했다. 그때 교회에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노예된 이들이 많이 모였다. 그러나 특별히 가난한 성도가 없었다. 하나님이 주신 양식을 함께 먹었다. 배고픈 성도가 없었다. 그러므로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를 실천적으로 행하니 하나님이 축복하셨다. 사랑이 풍성한 교회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는 자를 날마다 더하시는 교회가 되었다.

잠언 22:9에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하였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나? 세상의 부자처럼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재물을 일용할 양식이상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달아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헌금을 통해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가난한 목회자, 선교사를 도우며 교우중 힘든 이를 도와주며 북한에 굶주린 동포들! 멀리 아프리카등지에 굶어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과도 함께 나눔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 줄 수 있어야 하겠다.
이번 부흥회 강사였던 홍목사님, 북한을 여러 번 다녀왔다. 물론 북한을 믿을 수 없다. 예배당 세워놓고 신앙의 자유가 있다하나 사실은 선전용이다. 그러나 가서 보니 안 도울 수가 없다. 나눔, 식사 기도때마다 북한동포에게도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기도한다. 무슨 뜻인가? 그들에게 먹을 것(나눔선교회 대표는 부지런히)을 가져다 주면서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고 기도하는 신자는 결코 이기적이 될 수 없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사람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께 드리나? 얼마나 가난한 사람, 일용할 양식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돕는 일에 참여하고 있나? 거의 매일 월드비젼를 통해 편지를 받지 않는가? TV나 라디오를 통해 듣고 있지 않나? 귀를 여는가? 막는가? 막고 지냈다면 ... 부족했다면 없었다면 노력하자, 시작하자.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해서 우리 교회를 통해서 먹지 못해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선하신 분이심을 증거하는 삶을 사시기 바란다.

여러분! 일용할 양식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창조주시오 구원자시오 우리의 아버지가 아니신가? 내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고 기도하라고 하시지 않았나? 주실 것을 믿고 기대하며 땀흘려 일하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부족하지 않은 풍성한 양식을 주실 것이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나? 풍성한가? 하나님께서 주셨다. 낭비하지 말고 함께 나누자. 참 신앙과 경건은 탐욕의 풍조에 물들지 않고 고아와 과부같은 가난한 이를 돕는 것이다. 참 신앙은 하나님 사랑이요 이웃 사랑임을 잊지 말자. 하나님이 주시는 일용할 양식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누리면서 가난한 이웃과도 함께 나누심으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세상에 힘있게 증거하며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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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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