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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하나님께 영광
  본문 : 눅 2:11-14
RevSuh  2009-12-25 22:26:35, 조회 : 3,217, 추천 : 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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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영광(눅 2:11-14)

성탄절의 의의는 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는지를 바로 알고  맞이하고 축하하는데 있다. 작자 미상의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우리의 가장 절실한 필요가 정보였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육자를 보내주셨을 것이다. 우리에게 절실한 필요가 기술이었다면 하나님께서는 과학자를 보내셨을 것이다. 우리에게 절실한 필요가 돈이었다면 우리에게 경제 전문가를 보내 주셨을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쾌락이고 즐거움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연예인을 보내 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죄용서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구주를 보내 주셨다. 올바른 통찰이다.

성탄절은 기쁨의 절기이다. 무엇 때문에 기뻐하나? 연휴여서, 선물을 받아서! 가족이 모여서, 보너스를 받아서, 영화보고 연극을 보아서, 그 어느 때보다도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어서... 가 아니라 기쁘다 구주 오셨네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성탄절은 구주를 보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성탄의 의의가 무엇인가?
먼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함으로 구원받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목적은 단 하나다. 우리가 모두 죄인이기 때문이다. 죄가 무엇인가? 쉽게 생각하면 법을 어기는 것이다. 법이라는 것 자체가 사람들이 죄를 짓기 때문에 만든 것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법을 어긴 적이 없다. 따라서 경찰에 체포된 적이 없고 감옥에 간 적이 없으며 법정에 선 적이 없다. 그러니까 나는 죄인이 아니다. 정말인가? 여러분! freeway 최고 속도가 얼마인가? 65마일이다. 65마일을 지킬 수 있겠나? 70-75마일로 또 때로는 80마일로 가게 되지.... 좋습니다. 그러나 경찰이 나타나면 왜 65마일 이하로 되는가? 그것이 무엇을 가리키는가? 스스로 법을 어긴 것을 자인하는 것이 아닌가? 법을 어겼다면 죄인이 아닌가? 그거야 뭐, 남에게 지장을 주지 않으면 되지! 그까짓것 가지고 죄 운운하나? 우리 옛말에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을 부인할 사람이 있는가?
어른들이야 그렇다 치고 어린아이들이야 무슨 죄가 있어? 구주가 왜 필요해? 그런가? 어린아이에게서 무엇을 보는가? 어린아이에게 잘 한다. 잘 한다. 칭찬해 보라! 잘한다. 그런데 우쭐대요. 교만해져요. 제가 제일 잘하고 제일 예쁜 줄 안다. 큰 손녀가 벌써 공주병이 낫다. Target에 가서 작은 면사포샀다. 어디에나 쓰고 다닌다. Princes래요. 곧 결혼한대요. 내가 공주래요. 먹을 것을 줘보라. 엄마가 다른 아이 안아 줘 보자. 지독한 욕심과 시기심이 도사리고 있다. 어른의 축소판이 아이들이다. 어린아이도 죄인이다.

죄가 무엇인가? 그저 쉽게 법을 어기는 것만 아니다.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것만이 죄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법을 초월하는 하나님이 주신 양심이 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품고 있거나 행동을 하려고 할 때 사람의 법에 저촉되지 않는 것이지만 이건 안 되지, 잘못이지, 하나님과 함께 아는 양심의 소지가 있다. 그것을 무시하고 말하고 행동하면 그것이 죄다. 양심의 마음으로 누구를 미워하면 음욕을 품으면 죄라고 깨우쳐 준다. 누가 이 양심의 법에서 참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또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서로 사랑하라고 한다. 아니 원수도 사랑하라고 한다. 그런데 형제도 사랑하지 못한다. 먼저 남을 대접하라고 한다. 그런데 먼저 대접받는다. 성경은 사람이 선을 알고도 행치 않으면 그것이 곧 죄라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런 죄 때문에 외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래 예수님은 친히 마가복음 10:45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라!
이를 위해 예수님은 하늘 보좌의 영광을 버리시고 죄많고 불행한 이 땅 유대의 베들레헴 그것도 말구유간에 가난하고 천하게 오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하나님이신데 창조주이신데 피조물 인간이 되셨다. 과연 종의 형체를 취하셨다. 왜요? 죄인된 우리를 대속하시기 위해서다.
대속이란 속전이란 뜻이다. 풀어 주는 대가란 말이다. 노예를 해방시키기 위해 지불되는 돈이 바로 속전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죄인된 우리가 그 죄값으로 죽어야 할 자리에서 대신 죽으셨다. 그것이 십자가에 죽으심이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셨다. 죄값을 치루셨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아니다. 그 예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이 택하신 자의 속전이 되셨다.

그러므로 성탄의 의의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대속의 구주 예수님을 내가 믿고 영접함으로 내 죄가 사해지고 죄에서 구원받는데 있다. 내가 의롭다 하심을 받고 죄에서 자유케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므로 천국을 상속케 되는데 있다. 그래서 성탄이 나에게 기쁘고 즐거운 구원의 축복이 되어야 한다.
오래전 어느 남부 작은 도시에서 빌리그레엄 목사님이 10마일을 더 과속으로 차를 몰다가 경찰에게 잡혔다. 빌리 목사는 속도위반을 시인했다. 그러나 경찰은 법정에 출두하라고 했다. 법원에 판사 앞에 섰다. 판사가 교통위반을 시인하나? 그렇습니다. 그러면 간단합니다. 1마일당 1불씩 10마일 과속이니 10불 벌금입니다. 그리고 판사가 앞에 서 있는 사람을 자세히 보니 그 유명한 빌리그래함 목사였다. 판사가 다시 말했다. 교통위반했으니 벌금을 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벌금은 내가 대신 내 드리겠습니다. 판사가 지갑에서 10불을 꺼내 법원 서기에게 주었다. 그리고 빌리그래함 목사를 데리고 좋은 음식점에 가서 고급 스테이크로 저녁을 대접해 드렸다. 빌리그래함 목사님이 나중에 그 판사가 행한 것은 하나님께서 회개한 죄인들에게 행하신 일과 꼭 같은 것이라고 회고했다. 그렇다! 성탄의 의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대속의 제물로 오시어 십자가에서 대신 우리 죄값을 치르신 예수를 내 구주로 믿는 것이다. 영접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죄에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의 축복을 누리는 것이다.
여러분 중에 아직도 예수를 구주로 믿지 않거나 영접하지 않은 분이 계시나? 이 시간 믿으시고 마음 문을 여시고 내 구주로 영접하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주시는 용서와 구원의 평안과 기쁨을 누리시기 바란다. 오늘 성탄이 구원의 기회가 되시어 하나님을 기쁘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기 바란다.

성탄의 의의가 무엇인가?
예수님은 죄인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사람이 되게 하시고 대신 십자가에 희생시키셨다.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 하나님이 아니신가? 하나님이 못하실 일이 있으신가? 그런데 왜 외아들 예수를 그것도 십자가에 죽게 하셨나? 왠가?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거룩은 죄를 용납할 수 없다. 보세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다. 먼저 아담을 만드셨다. 외로워하는 것을 보시고 함께 할 여자 하와를 만들어 가정을 이루고 살게 하셨다. 살 곳으로 모든 것을 갖춘 에덴동산을 친히 만들어 주셨다. 그런데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하자 하나님께서 그 동산에서 그 사랑하셨던 아담과 하와를 내어 쫓으셨다. 죄인은 사랑하신다. 그러나 죄는 아니다. 하나 뿐인 아들 예수께서 우리의 죄 대신 지신 죄인이 되실 때 그 아들도 심판하셨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께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며 울부짖으셨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장벽을 만든다. 불화케 한다. 원수의 관계가 되게 한다. 교제의 단절이요 축복의 단절이요 접근의 단절이다. 죽음이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를 성탄절에 이 땅에 보내신 이유는 그 단절된 관계의 회복이요 끊어진 교제의 회복을 위함이다. 불화와 단절과 원수된 관계를 청산하시고 화해와 화목을 위해서 보내셨다.
따라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우리 대신 죄값의 형벌을 받으시고 죽으신 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았던 죄의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과 불화의 관계, 원수의 관계를 청산하시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해케 하시고 화목케 하시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예수의 십자가에 죽으심은 이중 목적이 있었다. 대속과 화목이다.
그래 요한일서 2:2에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오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하였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화목제물이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과 화목케 된다. 더 이상 하나님과 원수가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다.
성탄의 의의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으니 하나님과 화목된 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고린도후서 5:18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고 하였다.

성탄의 의의는 이제부터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자로 사는 것이다. peace maker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과 화목했으니 세상과 사람과도 화목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5:9에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하였다.
내가 누구와 불화하다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 갈 수 없다. 그것은 곧 아직도 내가 예수의 십자가를 화목제물로 믿고 받아들이지 못한 증거다.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물론 불화의 책임이 내게 있지 않고 상대방에게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이유가 되지 못한다. 왜요? 화평케 하는 자, 화목을 만들어 가는 자가 아니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평케 하신 예수님! 보라! 하나님과 불화가 예수 때문인가? 아니다. 우리 잘못, 죄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우리 대신 화목케 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셨다.

그러므로 불화의 관계를 청산하고 화평을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십자가를 져야 한다. 십자가을 지는 것이다. 그것이 성탄의 의의를 알고 사는 삶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성탄의 의의는 내 고집, 내 자존심, 내 콧대, 내 우월감을 꺾고 포기하고 죽이고 겸손히 내가 잘못했소. 상대방의 잘못을 내 잘못으로 짊어지는 것이다. 고백하고 화해하는 것이다. 내가 부끄럽게 되는 것이다. 내가 그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 이렇게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지면 그 고통은 평화로 부끄러움은 기쁨으로 변한다. 내 죄가 사해진 확신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켜 주시니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된다. 불화하면 바른 신앙이 불가능해진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두 가지 면에서 그렇다. 우선 하나님께서 예배에 문제가 생긴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5:24-25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로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그리고 다음 구절에 급히 사화하라고 하신다. 왜요? 하나님께서는 불화자의 그 예배를(제사) 안 받으신다. 그 예배는 가인의 제사가 될 뿐이다. 예배가 곧 불행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예물도 안 받으신다. 또 있어요. 그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어 주시는 신자된 자의 축복을 상실하는 거예요. 하나님께 기도로 우리는 우리의 부족을 채우고 도움을 얻으므로 승리의 삶을 살게 된다. 그런데 형제와 아니 누구와 불화한 중에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응답하실 수 없으시다. 왜요? 기도의 소원이 무엇인지 분명한 뜻으로 하나님께 상달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3:1절이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기도가 아니겠나?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의미없는 소리, 중언부언의 기도가 되고 만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으니 은혜가 없다. 메마르다. 축복이 없고 감사가 없다. 그것이 어찌 신앙생활이겠나?

성탄의 의의는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고 사람과 화평함으로 이 땅에서 평화가 이루어지게 하는데 있다. 하나님의 자녀로 알게 되는데 있다. 우리의 예배와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풍성한 은혜의 삶을 사는데 있다.

여러분! 지금까지 내가 용서 못하는 사람이 있나? 지금까지 서로 서먹서먹한 관계로 지내는 분이 있는가? 주안에서 형제로 자매로 지내지 않고 있는 분이 있는가? 오늘 화목하세요. 오늘도 안 되면 가장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오늘 내가 십자가를 지세요. 화목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본받으세요. 그리고 참으로 화평케 하는 자 하나님의 아들이 되세요. 그리하여 아벨 같은 예배 자, 엘리야 같은 기도자로 능력있는 삶을 사시기 바란다. 이것이 성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셋째로, 성탄의 의의가 무엇인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은 이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갖추고 사는 것이다.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시어 하늘로 올라 가셨다. 그때 하신 말씀이다. 요한복음 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누구든지 내가 죄인임을 알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내 죄를 대속하신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 그 마음에 예수님이 살아 계신다. 그 마음을 다스리시니 그 마음이 천국이 된다. 그러나 항상 천국인가? 아니지요. 왜요? 죄악 세상에 사는 한 누구도 완전한 천국의 축복을 누리지는 못한다. 이 세상에는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이 없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구원받았으나 완성에 이르지는 못했음을 보여준다. 이미 구원받았으나 아직 천국에 이르지는 못했다. 언제 누리게 되나? 예수님이 다시 오셔야 한다. 그러므로 성탄의 의의는 이미 구원받았으나 구원의 완성을 하러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대망하며 사는데 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에서 기쁘다 주님 다시 오시네의 삶을 사는데 있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어린아이가 아니다. 오셔서 섬기시다 십자가에 죽으시는 분이 아니시다. 모든 사람을 그 발앞에 모으시고 심판하실 주로 오신다. 그때 모든 죽은 자도 무덤이 열리고 다시 살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죽은 자는 생명의 부활로 살 것이다. 그렇지 못한 이는 심판의 부활로 살아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복음을 들을 기회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이 성탄이 심판 받을 이들에게 기쁨의 소식이 되어야 한다. 그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오늘 이 자리에서 주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경배하며 찬양하는 우리는 모두 목소리를 높여 외쳐야 한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오늘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이심을 온 땅에 증거해야 한다. 심판 주로 오시는 예수님을 증거함으로 저들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내 구주로 믿고 영접케 해야 한다. 저들도 이제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어떻게요? 하나님께 큰 사랑받은 자로 성탄절 사랑의 실천으로 해야 한다.

어느 분이 13년 동안 미국에서 공부했고 보스턴 오페라단 가수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군입대를 위해 한국에 들어갔다. 그런데 군에서 뇌의 하머가 손상을 입어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치명적인 사고를 당했다. 절망이었다. 노래가 생명인데 노래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큐티 모임에서 목사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신바라!! 그는 그동안 윗사람의 권위를(계급 상급자)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하나님이 정하신 권세에 순복하지 않은 죄를 범했다. 불치병 판정을 받는 날, 군법회의가 있었다. 그의 삶을 짓밟아 놓은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위에 순복하기로 했다. 군법회의에서 그에게 해를 입힌 사람들을 용서하겠다고 증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배때 너무 찬양을 하고 싶었다.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그의 찬양은 예배자들에게 듣기 불안할 정도의 쇳소리로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트이더니 찬양이 우렁차게 터져 나왔다. 기적이 일어났다. 그는 불행에 빠뜨린 죽이고 싶은 원수 같은 사람들을 용서했다. 사랑했다. 그 사랑이 그를 가해한 사람들에게 예수의 사랑을 증거한 것이 아니겠나? 그리고 나니 하나님께서 그의 불행을 행복으로 바꿔 주셨다. 우리 교회가 매주 양로원을 방문하고 제자 성경 공부반에서 노숙자들을 새벽에 찾아가 식사를 대접하는 사랑이야말로 성탄의 의의를 바로 깨닫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로 확신하며 하나님의 기적의 축복이 사랑을 베풀 여러분과 받은 모든 분들에게 있기를 기도한다. 이 성탄절에 여러분의 사랑의 실천으로 문제가 해결되고 복음이 증거됨으로 죽은 영혼이 구원받고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 이 성탄절에 구원받은 자, 화목을 만드는 자, 그리고 사랑의 실천자가 되시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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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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