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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네 부모를 공경하라
  본문 : 골로새서 3:20
RevSuh  2010-05-19 23:10:12, 조회 : 3,403, 추천 : 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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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부모를 공경하라(1)(골 3:20)

며칠 전 한국 TV 뉴스에서 어느 할머니가 그동안 저축했던 1억 5천만원으로 암수술을 받아야 하는 남편을 위해 쓰려했는데 그것을 안 며느리가 자신의 계좌로 다 빼돌렸단다. 그래 시아버지는 병원 치료도 못 받고 집에 누워있게 되고 상심한 시어머니 역시 머리를 싸매고 누웠다는 것이다.
돈이 뭐길래! 이런 일이 있을까? 생각을 하니 그 며느리를 탓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의 황금만능의 분위기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며느리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청교도신학자였던 Thomas Watson은 부모가 그들의 자녀를 가르치지 않으면 그들이 축복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하나님께서는 자주 부모의 무관심으로 인한 자녀들의 불효를 심판하신다고 하였다. 자녀의 효도도 부모에게 달렸다는 말이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이다. 참으로 어버이 주일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 날이 없었다면 너무도 분주하게 살면서 내가 하는 일 외에는 너무 쉽게 잊고 사는 우리가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어찌 기억할 수 있겠는가? 그러고 보면 상업적이긴 하지만 Mother's day와 Father's day를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미국에서 살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감사의 조건이 된다.

그러면 어버이주일에 우리는 어떻게 부모님을 공경할 것인가? 어버이주일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먼저 우리가 공경해야 할 부모는 누구인가?
부모하면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분이시다. 그러나 죄가 더해지면서 우리 사회가 더 복잡해지면서 자녀학대나 이혼, 재난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서 고아가 되는 자녀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자녀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기른다. 재혼으로 의붓아버지, 어머니가 기른다. 또는 입양을 한 부모가 키운다. 또 고아원에서 원장님이 어머니가 되는 아이들도 있다. 따라서 오늘날 부모님은 나를 낳아 주신 분만이 아니다.

여기에 우리 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없는 영적인 부모가 있다. 내게 신앙을 깨닫게 하고 심어 준 분들이 계신다. 따라서 본문이 의도한 첫 번째 부모는 나를 낳으시고 기르신 생물학적인 부모님을 가리켰다. 그러나 여기에 나를 길러주신 부모님 그리고 영적으로 새 신앙으로 양육해 주신 부모님이 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우리는 이렇게 넓혀서 알아 들어야 할 것이다.  자녀된 우리는 나를 나으신 부모, 기르신 부모, 영적인 부모, 그들의 부모, 이 모든 분들의 은혜를 잊지 말고 기억하며 감사해야 한다.

그러면 왜 우리는 부모님을 공경해야 하나?
저는 동물에 대해서 특히 조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나 동물들은 어미 사랑을 극진히 받고 자라지만 다 자라면 그것으로 관계가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동물이니까요. 그런데 청교도 신학자 Thomas Watson은 새 중에서 황새는 어미가 늙어서 날지 못하고 스스로 먹이를 잡아 먹을 수 없게 되면 장성한 새끼들이 먹이를 물어다 준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런 경우는 드문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달라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은 이성이 있고 양심이 있고 도덕적이다.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고 자란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니 감사해야 한다. 보답해야 한다. 그래서 에베소서에서는 부모 공경을 옳다고 하였다. 그것은 인격적으로도 옳고 도덕적으로도 옳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 그리고 두 사람을 짝지어 가정을 이루게 하셨다. 그리고 축복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셨다. 그러므로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의 결합은 결혼이 아니다. 가정이 아니다. 성경은 그것을 축복이 아니라고 한다. 하나님께 가증한 일이라고 하였다. 자녀의 출산이 결혼의 첫째되는 목적이다. 그리고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고 축복이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과 훈계로 바로 양육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주신 책임이면서 권위이다. 그러므로 부모밑에서 자라고 있는 자녀는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주신 권위에 순종하는 것이 옳다!

또 하나 부모 공경의 이유로 우리 신자들이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부모 공경은 구원받은 신자가 지켜 살아야 할 계명 중에 사람에 대한 계명에 첫 번째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십계명을 첫째돌이며 5개와 둘째 돌판에 다섯 가지 계명으로 가른다. 다시 말하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사람에게 속한 계명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계명으로 본 것이다.
그렇게 부모 공경은 하나님 신앙과 밀접하게 붙어 있다. 사실이다. 우리가 눈에 보이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부모님을 보면서도 공경하지 못한다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공경하겠는가? 그러므로 부모공경 없는 하나님 신앙은 잘못된 것이다. 오늘 본문을 보라.

부모 공경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 하였다.
불신자들이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을 낳아 주시고 길러 주셨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이고 윤리적이다. 그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우리 신자에게 부모공경은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주신 권위때문이요 또 신자가 지켜 받아야 할 계명으로 하나님의 공경과 부모 공경이 하나로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불신자가 부모 공경을 못한다고 하더라도 신자는 해야 한다. 우리의 신앙이 부모 공경을 강제한다. 우리는 더 많은 부모 공경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지 않으시는 부모님을 모신 신자는 부모님 공경의 책임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남다른 부모님 공경으로 반드시 부모님을 예수님께로 인도해야 한다. 아직은 내 부모님이 예수를 모르신다면 그 원인이 혹시 내가 부모님 공경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신자들이 부모 공경을 해야 하는 이유가 불신자보다 더 많음에도 오히려 그 신앙 때문에 부모 공경은 잘못하는 핑계가 되기도 한다. 옛날부터 그래왔다. 우리는 그것을 핑계하고 또 그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마가복음 7:10이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이라 하고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지 아니하므로 사람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다고 하셨다.

저들의 부모 공경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시고 책망하신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은 자녀는 부모님이 살아 계시는 한 공경할 의무가 있음을 분명히 한다. 그런데 저들은 고르반으로 부모 공경을 하는 척 했으나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고르반이란 말은 하나님께 드림, 하나님께 바치는 물건을 말한다. 그런데 장로들은 자식이 부모에게 드려야 하는 의무를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면 더 이상 부모를 공궤할 의무가 없어진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부모 공경을 원치 않는 자녀들이 핑계로 이용을 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나는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치니까 나는 선교비를 내고 있으니까 나는 교회에 건축헌금을 했으니까 교회봉사로 바쁘니까 부모님 공궤는 excuse를 할 수 있다, 해도 된다. 하나님만 섬기면 된다. 그러면 부모님 공경은 된 것이지! 우리는 이런 함정에 빠지기 쉽다. 특별히 믿음이 좋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신자가 그렇게 하기 쉽다. 신앙을 앞세워 육신의 부모 공궤를 외면하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니다. 우리 하나님은 제사보다 제물보다 헌물보다 순종을 말씀과 계명지킴을 더 원하신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계명을 지켜야 한다. 신앙 때문에 부모 공경이 소홀해져서는 안 된다. 참 바른 신앙은 부모 공경으로 지원을 받고 증명이 되어야 한다. 디모데전서 5:8에 누구든지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하니라!

어떻게 부모님을 공경해야 하나?
선교사가 된 어느 목사님의 어머님이 계셨는데 소원이 내 집을 가지는 것이었단다. 목사가 되기 전에 사업을 해서 돈이 벌리자 우선 어머님 소원을 들어 드렸다. 아담한 집을 한 채 사 드렸다. 그런데 목회자가 되고나서 동부에서 목회하면서 교회를 지어야 하겠다. 그러니 땅을 사야 한다. 그런데 돈이 없다. 보다 못하신 어머니께서 그 집을 팔아 건축헌금하셨다. 여하튼 어머님 소원대로 집을 사드렸으니 부모님을 공경한 것이다. 제 집사람이나 저는 스스로 옷을 사서 입는 경우는 드물다. 생일때마다 mother's day나 father's day에 아이들이 옷을 사다 줘서 입는다. 사위까지 생기니까 그 재미도 괜찮다. 물론 아이들이 곁에서 살고 있으니까 아이들 생일도 챙겨준다. 부모님에게 옷을 사드리는 것도 공경이다.

70이 넘으신 부모님들은 잡수시는 것이 옛날 같지가 않으시다. 입맛이 좀 까다로우시다. 잡수시는 음식에 관심이 많으시다. 노인 아파트에 계신 어른들은 맛있다는 음식점을 모르시는데가 없을 정도다. 우리 교회가 매해 한 번씩 하고 있는 경로관광도 구경을 위해 많이 걷고 오랜 시간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맛있는 음식을 잡수시고 쉬시는 것을 더 좋아하신다. 부모님이 잡수시고 싶어하시는 음식을 사서 대접하는 것도 효도다. LA에는 한식도, 중식도, 일식도 mexico, 타이음식, 물론 미국식도 많다.  웰페어로 사시는 부모님들! 그 돈도 다 안 쓰시고 손자, 손녀, 먹을 것 사 주시고 장난감, 과자 사주시느라 빈손이 되신다.  용돈을 드리는 것도 효도다. 지혜로운 자녀는 용돈을 넉넉히 드린다. 그게 어디로 가나? 다 내 자녀에게로 돌아온다. 게다가 자동차가 있으신 경우는 손자손녀 픽업하기에 바쁘시니 대기조로 사신다. 그런데 손자손녀가 할아버지 차타고 오다가 할아버지! 나 배고파 그러면 최소한 10불은 있어야 한다. 손자손녀가 어디 하나인가? 그러니 용돈을 드리는 것은 효도가 된다. 부모님 위신 세워 드리는 것이고 내 자녀들이 덕을 보니 3중 축복이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런데 성경에서 제일 강조하는 것은 집을 사드리는 것도 옷을 사드리는 것도 저녁을 대접해 드리는 것도 용돈을 드리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것들이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고 효도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도 이것이 없이는 참 부모 공경이 안 된다. 그래서 그것을 성경은 강조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순종이다. 본문을 보라!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참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부모의 말씀을 경청해서 듣고 부모님의 가르침을 실행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자녀는 장성한 자녀는 아니다. 어느 주석에 보니까 20살난 자녀는 아니다. 10대까지 부모님 밑에서 살고 있는 자녀뿐이라고 하였다. 물론 주로 이 본문에 가르치는 것은 그럴 것이다. 그러면 장성한 자녀, 대학생 이상 결혼한 자녀와는 이 말씀이 상관이 없는가?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80세가 되신 어머니가 60살난 아들이 출근인사를 드리면 차 조심하라고 당부하신다. 그 어머니에게 60난 아들은 아직도 아이다. 부모님이 살아 계신 한 자녀는 자녀이다. 자녀로서 부모에게 순종할 책임은 있다.

그러면 순종일 경우 어떤 순종인가?
여기 순종하라는 말씀은 범사에 순종해야 한다. 물론 이 말씀은 주안에서요 신앙안에서다. 그러나 힘들어요. 그래도 그렇게 해야 한다. 18절에는 아내와 남편에 대한 권면이다. 거기서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한다. 그 말은 너무 강한 말처럼 들린다. 거기에 비해 자녀들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은 너무 약한 것같다. 그러나 실은 반대이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은 자발적인 것이다. 왜요? 남편과 아내는 동등하다. 그러나 자녀의 부모에 대한 순종은 예수님께 순종이나 복음에 대한 순종, 사도적 교훈에 순종하라는 말과 같다. 절대적이다. 왜요? 그 순종은 하나님께 순종함의 한 부분이다.

그러면 어떻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부모님 공경인가? 여기 순종하라는 말은 현재시제다(헬라어에). 그 뜻은 순종이 습관이 되는 것을 말씀한다. 계속하란 말이다. 누구나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 하라면 기쁘게 잘 한다. 누구나 한두 번 순종은 잘 한다. 그러나 무슨 일에나 항상 순종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렇게 하라고 한다. 부모님께 순종이 습관이 된 자녀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부모공경자다.

Archibald Ruttege의 순종하는 개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사랑하는 개가 불에 타죽어 안타까워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집밖에서 일할 때는 자주 개를 데리고 나갔다. 그 날도 산림속으로 들어가면서 개에게는 점심 box를 지키고 있으라고 단단히 일렀다. 산림속에서 일을 하다보니 저만치에 있는 나무에 불이 붙어 있었다.  점심 box를 지키고 있는 개가 있는 곳이었다. 그의 말을 항상 듣는 개가 걱정이 되었다. 달려가 보니 개는 주인의 말대로 점심 box를 지키기 위해 자리를 지키다가 불에 타 죽어 있었다. 개가 주인에게 충성한다는 것은 개를 기르는 사람은 누구나 다 안다. 위험에서 주인을 구해준 개들이 많다. 그러나 주인의 명령을 순종하기 위해 불에 타 죽은 개는 드물다. 이처럼 부모공경도 부모님을 위해 무엇을 해 드리는 것 중요하다. 그러나 순종은 더 부모님을 기쁘시게 한다.

부모님꼐 순종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어찌 되나? 하나님이 축복하신다. 어떤 축복인가?
출애굽기 20:12에 십계명에서는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하였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주시는 가나안 땅에서 장수한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다. 가나안에 들어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풍성해지자 하나님을 떠났다. 오히려 하나님 대신 그 땅의 우상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기에 바빴다. 남은 가나안 족속과 주변 강대국에 침입이 잦았다. 단명했다. 나라도 남과 북으로 갈라졌다가 모두 앗수르와 바벨론에 포로되어 가고 말았다. 계명대로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았고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았다. 그리고 개인도 나라도 빨리 죽고 말았다.

여러분! 누구나 오래 살기 바라지요. 어떻게 오래 사나? 건강관리 잘해야 한다. 운동을 해야 한다. 병원에 가서 check up  받아야 한다. 물론 다 필요하다. 그러나 오래 사는 것은 생명의 기한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신앙으로 부모님공경 잘하는 자녀에게 장수의 복을 주셨다. 성경은 보약 먹는 것보다 부모님 공경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가르친다.

에베소서 6:3에서도 같은 약속을 한다.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한다. 부모를 공경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게 하신다. 특별히 우리 자녀들을 통해서 우리를 공경하므로 하게 하신다. 왜요? 보고 배웠으니까요. 말세가 아닌가? 디모데후서 3:2대로 자녀들이 부모를 거역한다. 감사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내가 부모를 잘 공경하면 하나님께서 내 자녀들로 내 노년의 때를 축복하신다. 내 자녀들에게 효도받으며 부족하지 않게 건강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 공경과 부모효도가 하나이듯이 실천하며 사는 신자는 천국에서 영생하는 복도 누리게 될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 공경과 부모님 공경은 하나다. 어느 하나만 잘한다고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둘 다 잘해야 한다. 하나님 신앙은 부모공경으로 지원받고 증명되어야 한다. 나를 낳으시고 기르시고 가르치시고 지금도 걱정하시며 내가 잘 되기를 원하셔서 마음 졸이시며 기도해 주시는 부모님! 정말 공경했나? 기쁘시게 해 드렸나? 그렇지 못했다면 회개합시다.

엊그제가 5월 5일 어린이날이었다. 그래 오후 늦게 가까이 있는 손녀를 mall로 불러 인형이라도 하나 사 주려 했다. 집사람이 사위에게 전화해서 오늘이 어린이 날이니 이사벨라에게 뭔가 해 줘야지? 어머니! 매일 이사벨라 날이예요. 어린이날이 왜 필요하냐는 농담이다. 그러나 사실이다. 여러분 어머니날, 아버지날은 얼마만인가? 내 날, 내 자식의 날로만 살아왔다면 회개하자. 거기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의 날, 어머님 날, 아버님 날도 끼여 넣자. 오늘부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며 육신의 부모님을 공경하기를 힘쓰자. 멀리 한국에 계시면 전화드리고 가까운데 계시면 찾아가자. 무엇이라도 감사하는 마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으로 하자. 그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잘되고 장수하는 복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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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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