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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본문 : 유다서 1:1-2
RevSuh  2010-05-26 17:01:13, 조회 : 3,473, 추천 : 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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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정체성(유다서 1:1-3)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목초지가 넉넉지 못할 때 아브라함보다 먼저 강가의 좋은 땅을 택했다. 에서의 동생 야곱은 눈이 어두운 아버지 이삭을 속여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다. 예수님의 제자 가룟유다는 예수를 은 30에 팔았고 수제자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다.
무엇이 문제였나? 롯은 자신이 아브라함의 조카임을 잊었고 야곱은 그가 에서의 동생임을 망각했다. 유다와 베드로는 그들이 예수의 제자임을 부정했고 따라서 내가 누구임을 알고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도 신자다운 삶을 살아가려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무엇임을 아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 신자임을 자처함에도 내 정체성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잊고 산다면 세상의 소금으로서 소임을 할 수 없게 되고 마침내 맛잃은 소금처럼 버림받아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말 것이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그 정체성에 맞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은 무엇인가?
먼저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자다.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다. 다른 말로 소명이라고 한다. 그러면 무엇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말인가? 여기 불렀다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였다. 그 중에 하나가 잔치나 축제에 부름받은 것을 말한다.
마태복음 22:2에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다고 하였다. 따라서 신자된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의 천국의 혼인잔치로 부름을 받았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9:7에는 어린양의 혼인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되었다고 말씀한다. 구원받은 자가 천국에서 누리게 될 축복을 상징적으로 혼인잔치로 말씀한 것이다. 따라서 영적으로 예수님은 신랑이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신부로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

이 구원의 축복에 대해 에베소서 2:8에는 이렇게 말씀한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절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예수를 내 구주로 믿고 죄사함받고 구원받아 예수의 신부로 천국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은 우리의 행위로 된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은혜로 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선물은 내가 받을 공로가 있어서 받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일해서 선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면 그것은 선물이 아니라 당연히 받아 누려야 할 삶이요 댓가요 보상이다. 선물은 값없이 거저 주는 것이다. 받을 자격과 상관이 없다. 선물을 위해서 내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감사히 받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은 그가 하신 일에 결코 후회함이 없으시다. 민수기 23:9에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그가 하시는 일에 결코 후회함이 없으시다고 하였다. 그렇다. 외아들까지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어찌 그 일을 후회하시겠나?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셨다가 다시 걷어 가시거나 빼앗아 가시는 분이 결코 아니시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영원하다. 안전하다.

오늘 본문 1절이 그것을 보장한다. 신자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다. 구원받은 우리는 우리의 신랑되신 예수님과 천국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때까지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로 지키심을 받는다. 로마서 6:33절이 그것이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우리는 누구도 송사할 수 없다. 우리를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기에 누구도 정죄할 수 없다. 마귀가 회개하여 용서받은 죄를 다시 떠올리며 너는 죄인이라고 하며 우리를 정죄할지라도 다시 죄인이 되지 않는다. 의롭다하신 이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불의한 자 되어 정죄받지 않는다.

오늘 우리는 많은 문제를 안고 산다. 생업에 문제, 자녀의 문제, 건강의 문제, 신분상의 문제, 사고, 범죄, 천재와 같은 많은 문제를 안고 산다. 유혹과 시험도 많다. 우리의 믿음이 구원의 확신이 위협을 받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한다. 우리의 신앙도 up and down 한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할 수 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 뿐이 아니다. 8:34대로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를 위협하는 어떤 문제와 유혹과 시험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그 무엇도 우리의 구원을 흔들어 떨어뜨리거나 무산시킬 수는 없다. 구원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다. 하나님이 위하시는데 누가 대적하겠나? 고린도전서 1:7대로 우리는 주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리스도의 신부답게 끝까지 견고케 하실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체는 이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구원받은 자와 은혜로 구원받은 자다. 선물로 구원이 주어진 자다. 내 공로는 없다. 오늘의 나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다. 이 놀라운 은혜구원을 한시도 잊지 않고 사는 것 그래서 은혜받은 자의 겸손이 있고 선물받은 자의 기쁨과 감격이 있고 그리스도의 신부된 자의 정결함을 지니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하면서 어두운 세상에서 밝아 의롭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크리스챤의 정체성 지닌 자의 삶이다.

둘째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자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 사랑은 요한복음 3:16에 잘 드러나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큰 사랑, 지극한 사랑, 희생의 사랑을 받나? 믿는 자, 영생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자가 아닌가?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은 자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에 그 사랑에 반응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사랑을 받은 자라면 어찌 반응을 해야 하는가?

덴버에 사는 셋째딸네 손녀가 이제 만 5살이 됐다. 유치원에 다닌다. 말을 잘한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 집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제 이모들하고 전화하는 재미에 빠졌다. 아니 매일 몇 번씩 전화한다. 할머니가 받으면 말이 잘 안 통하니 please 할머니 이모 좀 바꿔주세요 그런다. 연말이 아닌가? 크리스마스가 얼마 안 남았다. 23일날 LA에 온단다. 그러니까 이모들한데 무엇을 사 주겠느냐? 또 뭘 사달라고 한다. 듣고 있던 이모가 크리스마스가 누구 생일이냐고 물었다. 대답을 안 하고 있더니 Baby Jesus! 그런데 왜 네 선물을 사 줘야 하니! 물론 사 주긴 하겠지만 네 선물은 작은 것 사 줄 꺼고 가난한 아이들, homeless people에게 더 큰 선물을 사 줘야지! 어때? 그렇지 않니? 그랬더니 하는 말이 이모 내가 무슨 대답할지 벌써 다 알잖아. 그래! 그랬더니 요즈음은 제 엄마를 들볶는단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사 줄 선물을 빨리 사라고 성화란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손녀에게 정말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는 보람된 성탄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깜짝 놀란 이야기를 하더란다. 심각하게 이모! 나는 캘리포니아가 좋고 이모 곁에서 살고 싶었는데 그게 힘들겠어. 아무래도 덴버를 못 떠날 것 같아. 무슨 말이야? 갑자기! 덴버에서 살다니! 내 남자 친구가 청혼을 했어. 그 애와 결혼해서 살려면 덴버에서 살아야 하잖아! 아마 결혼은 빨리 할 것 같다.

사랑은 어린애의 마음도 생각도 계획도 제가 좋아하는 것도 모두 바꿔버린다. 사랑은 설복하는 힘이 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랑을 받았나? 하나뿐인 외아들을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 내 죄를 사하시고 의롭게 하시기 위해 대신 십자가에 부끄러움과 고통을 참고 피흘려 죽으시므로 생명을 주신 예수님! 그 사랑받은 자,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라면 우리의 반응이 무엇이어야 하겠는가? 이해할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받을 자격도 가치도 이유도 없는데 그렇다면 우리의 반응, 정상적인 반응은 무엇이겠는가?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그 하나님의 사랑에 놀라고 감격하고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이 몸 바칩니다.  이 감격, 기쁨, 놀라움 그 헌신으로 하나님 사랑하고 다른 성도 사랑하고 나가서 교회밖에 이웃을 사랑하고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알고 내가 누구인지 알고 행하는 삶이 아니겠는가?

물론 우리 모두 건망증이 심하다. 내가 하나님 사랑, 하나님의 은혜 받은 자임을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탄주일도 주시고 고난주간도 주시고 부활주일도 허락하시고 감사절도 주셨다. 그리고 적어도 일년에 세 번, 네 번은 성찬식을 통해 하나님 사랑,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을 내가 그 은혜 받은 자임을 깨닫게 하신다. 우리는 그때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나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다. 내 삶의 곳곳에서 그 사랑이 넘쳐나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 사랑은 우선 교회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사랑은 실천되기까지는 결코 사랑이 아니다. 어떻게 다른 성도를 사랑할 수 있는가? 저는 신자끼리의 사랑을 두 젊은이가 만나서 결혼하게 되는 것과 같은 과정이 있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거저 되는 게 아니다. 정말 아무나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먼저 소개를 통해서 만난다. 다음 단계는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전화해서 다시 만난다. 또 만난다. 서로를 알아간다. 모르는데 사랑이 되나 그러니 이렇게 사귀고 나서야 서로 사랑을 고백하고 청혼하고 결혼한다. 우리의 사랑도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 주일날 얼굴만 스치고 지나가는 것으로는 사랑이 불가능하다. 거기서 더 나가야 한다. 예배로 만나고 성경공부로 만나고 선교회로 만나고 구역예배로 만나야 한다. 주일마다 봉사로 만나야 한다. 교회밖에서도 만나야 한다. 자주 만나 사귀어야 사랑할 수 있는데, 알아야 사랑하는데 그렇다면 200명 가족 중에 내가 아는 형제는 몇 사람인가? 사귀는 자매는 몇 사람인가?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고 서로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이는 몇 사람인가? 나는 사랑하고 있는가?

여러분! 우리 교회가 구역을 2-3년 지나면 구역원을 나누는 이유가 있다. 더 많은 성도와 만나고 알고 사랑하게 하기 위함이다. 아직 모르고 사랑이 안되고 있다면 그 구역원은 다시 그 구역에 남을 수 있다. 그러나 2-3년이 지나도 사랑이 안 된다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잊고 사는 것이다. 구역을 바꿔서도 사랑해 보자.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 얼마나 가슴 뿌듯하고 행복한가? 내가 누구를 사랑하고 있다. 얼마나 보람된가? 사랑받은 자로, 사랑하며 받으며 보람되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크리스챤의 정체성에 맞게 사는 것이다.

셋째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의무와 책임으로 부름받은 자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구원의 축복이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마침내 천국의 혼인잔치에 참여케 하신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사랑받은 자로, 하나님의 사랑받은 자로 반응하며 살도록 부르심이다.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은 그 정체성에 걸맞는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결산과 심판으로 부르심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모두 은혜받은 자, 구원받은 자, 사랑받은 자로 살 의무와 책임이 있다.

종교개혁자들이 잘 깨우친 진리 중에 하나는 모든 직업에 대한 하나님의 소명이다. 따라서 직업에는 성속의 구별이 없다. 말씀을 설교하는 목사나 농부나 구두수선공이나 선생이나 상인, 공무원이나 Business man이나 다르지 않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목회자로 부르신다는 말도 틀린 말이 아니다. 신자는 누구나 내 생업을 하나님의 소명으로 받아들여 귀중하게 생각해야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신실함과 열정을 지니고 맡겨진 일을 다해야 한다. 그래서 내 생업으로 일터에서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한다. 더나가서 특별히 주님의 몸된 교회안에서 서로 다른 지체로서 교회를 세우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갈 사명이 있다. 직분이 그것이다. 교회의 직분 중에는 집사직이 제일 많다. 직분을 대표한다. 우리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사실 우리 교회는 집사의 직분도 그리 쉽게 맡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사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우리 교회로 오신 새가족 대부분은 전에 다니시던 교회에서 직분자로 계셨던 분들이다. 저희 교회는 그런 분들 중에서 주일성수나 제직회에 참석하실 수 있는지 여부와 우리 교회에서 적응과 섬김을 살펴 1년이 경과되신 분만 서리집사로 임명한다. 권사님들은 당회에서 임명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 교회는 반드시 투표를 한다. 또 어느 교회들은 명예장로, 집사, 권사제도가 있으나 우리 교회에는 없다. 교회의 모든 직분이 섬김의 직분인데 명예직분은 적합하지가 않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교회는 집사님들이 많아서 다 제직이다. 직분의 고귀함을 모른다고 한다. 그럴지라도 저는 모든 신자가 하나님의 이를 할 의무와 책임으로 부름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직분의 정체성 아니 대표적인 집사의 정체성이 무엇일까? 어느 분이 이렇게 잘 말했다. 집사는 군대에서 일등병과 같다. 대부분의 집사들은 입이 제일 빠르고 불평, 불만이 제일 많고 무슨 문제가 생겼다 하면 대개 집사들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많이 책망을 듣는 것도 집사다. 또 목회자의 신경을 제일 많이 쓰게 하는 것도 집사요 속을 태우는 것도 집사들이다. 그래 집사가 문제야 그런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집사가 없으면 교회는 알맹이 없는 땅콩과 같다. 기도하자고 하면 그래도 집사들이 모이고 전도하자 하면 집사들이 나선다. 봉사하는 것도 집사들이 하고 주의 종을 대접하는 것도 역시 집사들이다. 그러니 집사가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고 재미도 없을 것같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하는 말은 그래도 집사가 최고야 한단다.

여러분! 우리 교회는 그래도 권사가 최고야. 그래도 장로가 최고야 라고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모든 성도님들이 주님 앞에 행한 일의 보고서를 들고 서야 한다. 언제 내 보고서를 쓸 기회가 끝날지 모른다. 우리의 남은 생을 계수하여 한해 맡은 일, 매일, 매주, 매달 최선을 다해 보고서에 기록하고 주님 앞에 서야 한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의 달란트 비유에 나오는 착하고 충성된 5달란트 두 달란트 맡은 종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게 잘했다 칭찬받고 상받을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오늘이 기회다.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자.
여러분! 우리 모두 이 시간 주님의 말씀 내가 올때 믿음을 보겠느냐? 크리스챤의 정체성을 지니고 사는 신자를 보겠느냐고 하신 주님의 물음을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자. 그리고 오늘부터 은혜 받은 자, 사랑받은 자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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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웅 목사[Rev. David 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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