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론

성령님은 삼위일체 신격의 한 분이시기 때문에 그 분의 인격과 사역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성령의 인격성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여졌으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유사한 특성을 기대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인간의 연구로 신격의 어떤 개념을 형성하는 것이 가능한데 이는 인간이 하나님의 초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인격은 간단하게 지성, 감성 그리고 의지를 소유한 것으로 정의된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가지신 것을 증명한다면 그것은 그가 인격이시며 인격을 지니신 분임을 보여 주게 될 것이다. 성령님은 어떤 때는 그것, 혹은 사물 혹은 단지 영향력처럼 언급되었다.
교회사의 초기에 아리우스(Arius)는 성령님의 인격을 부인했다. 그는 성령님은 단지 아버지에게서 방사하는 하나의 영향력일 뿐이라고 하였다. 그는 주후 325년 니케아회의(The Council of Nicea)에서 정죄되었다. 그의 가르침은 유니테리안주의와 여호와의 증인같은 이단에서 오늘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그의 속성들이 그의 인격을 확증한다.
지성
성령은 모든 것을 통찰하신다(고전 2:10)고 하시므로 지성이 있으시다. 통달(통찰)한다는 말은 사건을 심사하거나 조사한다는 의미이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신다. 그리고 신자들에게 그것들을 드러내신다. 같은 말이 요한복음 5:39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사용되었다는데 거기서 그는 ‘너희는 성경을 상고해 보라’고 하셨다.

지식
아무도 하나님의 사상에 대한 지식이 없으나 성령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신다.

마음
성령님께서는 아버지를 아신다. 이처럼 아버지는 성령님의 생각을 아신다(롬 8:27). 마음이라는 말(헬라어, phromema)는 생각, 마음, 목적, 갈망, 노력의 길(방식)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분명하게 성령님이 지성을 지니셨음을 가리킨다(참고, 엡 1:17).

감정
감정이나 감각을 느끼는 것 무엇에 대해 깨닫게 되는 것이나 반응하는 것이다. 에베소서 4:30에서 ‘성령님을 근심케 말라’고 명령하였다. 그 문맥은 신자들이 거짓말로 죄를 지을때(2절), 성낼때(26절), 물건을 훔치거나 게으르게 될 때(28절) 혹은 불친절한 말을 할때(29절) 성령님이 근심케 되시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같은 단어에서 온 명사는 바울이 그들에게 책망의 편지를 쓴 후(고후 2:2, 5) 고린도 사람들의 슬픔을 묘사하는데 쓰였다. 근심하는 분은 인격이다. 단순한 영향력은 근심할 수 없다.

뜻(의지)
성령님은 뜻이 있으시다. 이는 그가 주권적인 선택과 결정의 능력이 있음을 가리킨다. 성령님은 그가 뜻하시는 대로 성령의 은사들을 배분하신다. 그가 뜻하신다(헬라어 bouletai)는 앞서 숙고한 후에 뜻을 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주권적인 선택의 사상이 이 언급에 대한 증거이다. 유비의 방법으로 같은 말 뜻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묘사한다(막 1:18). 아버지가 뜻하신 것과 똑같이 성령님도 뜻이 있으시다. 사도행전 16:6은 성령님이 아시아에서 전도는 바울을 금하시고 유럽에서 사역하도록 바울을 방향을 수정해 주심으로 그의 뜻을 행사하셨다. 이런 성경구절들은 분명하게 참된 인격의 한 부분으로 성령님이 지성, 감정, 그리고 뜻을 가지셨음을 가르친다.

그의 사역은 그의 인격을 확증 한다.
성령님은 아버지와 아들의 역사에 유사한 일을 하신다. 이런 일들은 성령님의 인격을 확정한다.

성령님은 가르치신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나가시기전 그들에게 그가 다른 보헤사를 보내 주시겠다고 말씀하심으로 그들에게 용기를 주셨다(요 14:16). ‘다른’ 이란 말은 성령님이 ‘예수님’과 같은 성질의 돕는 자이실 것을 강조한다. 예수님처럼 성령님은 제자들을 가르치실 것이다(마 5:2; 요 8:2). 그러므로 성령님은 그들을 가르치실 것이다(요 14:26). 성령님은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가르치시는 사역에서 같은 성질의 일을 수행하실 것이다. 성령님은 그들에게 예수님이 이미 가르치신 것을 생각하게 하실 것이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을 확증하실 것이다.

성령님은 증거하신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에 대해서 증거하실 성령님을 약속하셨다(요 15:26). 성령님은 예수님이 아버지에게서 오셨으며 하나님의 진리를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교훈에 관하여 증거하셨다. 같은 말씀이 요한복음 15:27에서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하는데 사용되었다. 제자들이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한 것과 같이 성령님은 그리스도에 관해 증거하신 것이다.

성령님은 인도하신다.
예수님은 성령님이 오실 때 그가 그들을 모든 진리로 인도하실 것을 언급하셨다(요 16:13). 마치도 여행자를 안내함같이 인도하실 것이다

성령님은 죄를 깨닫게 하신다.
요한복음 16:8은 성령의 장래 사역은 세상을 정죄하실 것이다. 깨닫게 한다(convict)는 헬라어로 엘레그초(elegcho)이며 그 의미는 어떤 것에 대해 누구를 깨닫게 한다. 또는 누구에게 무엇을 지적한다는 뜻이다. 성령님은 죄와 의, 그리고 심판에 관하여 세상을 깨닫게 하시는데서 하나님의 검사처럼 활동하신다.

성령님은 거듭나게 하신다.
신자가 연약할 때에 성령님은 신자의 탄식을 들으시고 그를 위해 중재하신다(롬 8:26). 아버지는 성령님의 중재를 이해하시며 그 기도에 응답하시며 성령님이 하나님의 자녀를 위한 중보기도 때문에 신자의 삶 속에서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하게 이루신다(롬 8:28). 중보기도에 대한 같은 말씀이 그의 중보사역에서 그리스도에게 사용되었다(롬 8:34; 히 7:25). 그리스도가 신자의 유익을 위해서 중재하심과 꼭같이 성령님은 신자들을 위해서 중보하신다.

성령님은 명령하신다.
사도행전 15:22에서 성령님은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역을 위해 따로 갈라 놓으셨다. 사도행전 13:4은 두 사람이 성령에 의해 파송되었다고 덧붙이고 있다. 성령님은 바울과 실라가 아시아에서 복음 전하는 것을 금하시고 빌립에게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가서 말씀하라고 지시하셨다.

그의 신분이 그의 인격을 확증한다.
성령님은 근심되실 수 있으시다.
성령님은 신자가 죄를 지을때 근심되신다(참고, 사 63:10).

성령님은 신성모독되실수 있으시다.
신성모독은 일반적으로 아버지 하나님을 대적한 행위로 생각한다(참고, 계 13:16; 18:19). 그리스도 역시 신성모독되실수 있으시다(마 27:39; 눅 23:35). 비슷하게 성령님은 모독되실 수 있으시다(마 12:32; 막 3:29-30). 성령님에 대한 모독은 그리스도의 역시가 성령님의 역사임에도 사탄에게 돌릴 때이다.

성령님은 저항받으실 수 있으시다.
불신하는 유대인들을 대적한 그의 설교로 인해 돌에 맞은 스데반은 그들이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받지 못하였고 항상 성령을 저항한 자들로 그들을 고소하였다(행 7:51).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배척한 오랜 전통에서 요지부봉이었으며 성령님의 권면을 저항하고 있었다.

성령님께 거짓말을 할 수 있다.
베드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거짓말을 했을때 그들이 성령님께 거짓말 했다고 고발하였다(창 5:3).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령님을 속인 그들의 죄 때문에 모두 죽음의 형벌을 받았다.

성령님은 순종받으실 수 있으시다.
사도행전 10장에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그의 사역의 영역안에 이방인들도 포함시키셨음을 가장 생생하게 드러내셨다. 이 관계에서 성령님은 베드로에게 고넬료의 집으로 두 사람과 함께 가라고 말씀하였고 거기서  그 진리는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었다. 베드로는 성령의 명령을 순종했고 가이사랴에 있는 고넬료의 집으로 갔다.
이런 예들은 그가 근심하시며 모독되시며 저항받으시고 거짓말을 할수 있고 순종할 수 있는 분이시므로 성령의 인격의 증거를 제시한다. 이것은 인격에 대한 참고로 말해 진 것일 뿐이다.

그의 명칭들은 그의 인격을 확증하다.
헬라어에 성경에 대한 대한 말은 프뉴마(Pneum)이며 이는 중성적인 단어이다. 푸뉴마를 대치하여 사용된 어떤 대명사는 일반적으로 역시 중성이다. 그러나 성경의 저자들은 이 문법적인 모형을 따르지 않았다. 대신에 그들은 성경을 가리키는데 남성 명사들을 대용하였다.

성령을 위한 어떤 남성 명사들
성경 중성명사 남성대명사
    요한복음 15:26    pneuma(영)    ekeinos(He)
    요한복음 16:13    pneuma(영)    ekenos(He)
    요한복음 16:14    pneuma(영)    ekeinos(He)


성령님의 신성
삼위일체의 하나님 중 어느 분을 부인한다면 그것은 다른 분도 부인하게 된다. 따라서 삼위일체를 믿는 것은 성령님의 신성을 믿는 것은 필연적이다.

성령님의 신적인 명칭
하나님의 성령의 명칭은 그의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그의 관계를 증명하게 역시 그의 신성을 확인한다. 그가 하나님의 영으로 호칭되셨으며 그것은 그가 바로 하나님의 인격이심을 의미한다. 고린도전서 2:11은 분명하게 인간과 그의 영이 하나를 만들며 같은 존재이듯이 하나님과 그의 영도 하나이실 뿐임을 보여준다.
아마도 하나님의 영이란 말이 쓰였을때 가장 많은 실예는 그것이 아버지보다 성령님에 대한 언급일 것이다. 유사하게 그리스도의 영이란 말이 사용되었을 깨 그것은 일반적으로 성령님을 언급한 것이다. 그런 이유는 만일 아버지가 의도된 호칭이었다면 그것은 가장 일반적으로는 하나님, 주님 그리고 그런 명칭을 썼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리스도가 의도되었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쓰는 것이 가장 정상일 것이다. 예를 들면 로마서 8:9-11에서 삼위의 세 인격이 모두 언급되었다. “아버지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9절) 그리스도가 너희안에 계시며(10절), 예수를 죽은 자에서 살리신 그(아버지) 영(11절)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 그리스도나 아버지보다 성령님에 대한 언급임이 분명하게 보인다. 로마서 8:5과 9:13-14로부터 그 이상의 것을 볼수 있는데 영과 하나님의 영은 동의어이며 삼위의 세벤째 인격에 대한 언급이며 동의어이다. 유사한 예는 사도행전 16:6-7에서 볼수 있는데 거기서 성령(6절)과 에녹의 영(7절)은 동의어이다. 에베소서 4:4은 한 분 성령만 언급하는데 이는 위에 정리가 참된 것을 가리킨다.

성령의 명칭
명 칭 강조 인용
    한 영     그의 연합     엡 4:4
    일곱 영     그의 완전, 편재 그리고 순전하심     계 1:4; 3:1
    그 주님 그 영     그의 구주     히 9:14
    영원한 영     그의 영원하심     히 9:14
    영광의 영     그의 영광     벧전 4:14
    생명의 영     그의 생동성     롬 8:2
    거룩의 영     롬 1:4
    성령     그의 거룩     마 1:20
    거룩한 자    요일 2:20
    지혜의 영    그의 전지, 지혜     출 28:13;
    이해의 영    그리고 조언     신 11:2
    지식의 영
    강함의 영     그의 전능     사 11:2
    주의 두려운 영     그의 존경     사 11:2
    진리의 영     그의 진실하심     요 14:17
    자원하시는 영     그의 주권적 자유     시 51:12
    은혜의 영     그의 은혜     히 10:29
    은혜와 기원     그의 은혜와 기도하심     슥 12:10


성령의 신적 속성
생명(롬 8:2)
생명은 하나님의 속성이다(수 3:10; 요 1:4; 14:6; 딤전 3:15). 아버지와 아들은 그들 자신만에 생명이 있으시므로 성령도 그 자신안에 생명이 있으시다.

전지(고전 2:10-12)
사람의 영(인간 정신)은 인성에 속한 것을 안다. 성령님은 하나님에 관하여 하신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신다(고전 2:10). 깊다는 같은 말(헬라어 bathos)는 하나님의 지식에서 사용되었다. 그것은 인간에게는 알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은 통찰할 수 없고 알려지지 않는 것들을 아신다(롬 11:33).

편재(시 139:7-10; 요 14:17)
시편 139편에서 다윗은 성령의 임재로부터 도주할 수 없다고 외쳤다. 그가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그는 거기 계신다. 그가 땅 깊은 곳으로 내려올지라도 성령님은 거기에 계신다.  그가 멀리 날아갈지라도 그는 성령의 임재를 벗어 날수 없었다. 성령님의 편재하심은 역시 요한복음 14:17에서도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성령은 그들 모두 안에 계실 것이므로 성령님의 편재 확인하였다.

영원성(히 9:14)
성령님은 이 구절에서 영원한 영이라고 호칭되었다. 영원하신 영을 통하여 그리스도는 자신을 흠없이 하나님께 드리셨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한 부분을 담당하신 것과 꼭같이(눅 1:35) 같은 방식으로 그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에서 한 부분을 담당하시었다.

거룩성(참고, 마 12:32)
하나님의 거룩은 전적으로 죄와 죄인들에게서 성별되시며 분리되신다. 성령의 가장 일반적인 이름은 거룩한 영이시며 이는 삼위의 제 삼위가 신성의 이 초월의 속성을 지니셨음을 가리킨다.

사랑(갈 5:22)
성령은 사랑이시며 하나님의 자들 안에서 사랑을 초래하신다. 만일 그가 주된 속성으로 사랑을 소유하시지 않으셨다면 그는 신자들 안에서 사랑을 만들어 내실수 없으실 것이다.

진리(요 14:17)
성경은 요한복음 14:17과 15:26에서 진리의 영이라는 말로 묘사되었다. 그리스도가 진리이듯이(요 14:6) 성령도 진리이시며 사람들은 성령을 통하여 진리로 인도하신다.

아래 도표는 삼위 하나님의 속성으로 신격의 연합과 동등함을 드러내 주고 있다. 성령님은 아버지와 아들처럼 같은 신의 속성을 나타낸다.

삼위 하나님의 특성
속성 아버지 아들 성령

생명
수 3:10 요 1:4 롬 8:2

편재
시 139:1-6 요 4:17-18 고전 7:10-12

전지
렘 23:23-24 마 28:20 시 139:7-10

영원성
시 90:2 요 1:1 히 9:14

거룩성
레 11:44 행 3:14 마 12:32

사랑
요일 4:8 롬 8:37-39 갈 5:22

진리
요 3:33 요 14:6 요 14:17


성령의 신적 역사
성령의 역사는 그의 신성을 증거한다.
창조(창 1:2)
몇몇 성경구절은 성령님이 창조사역에 참여하셨음을 확인한다. 창세기 1:2은 성령이 창조를 품으셨으며 그것에 생명을 초개하셨음을 가리킨다. 시편 104:24-26에서 시편 기자는 창조를 묘사하는데 30절에서 그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는지를 언급한다.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셨다; 욥기 26:13은 하늘에까지 하나님의 창조를 확대시킨다. 성령께서 땅만 아니라 하늘도 창조하셨다.

그리스도를 잉태함(마 1:20)
성령이 마리아를 덮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죄없는 인성을 보증한다. 그의 신성에서 그리스도는 영원하시지만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죄없는 인성을 낳았다.
그가 그리스도의 인성을 존재케 하였다. 그리스도는 그의 영원한 인격이 인간의 형체를 취하셨으며 성육신되셨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시작하는 원인이 되셨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잉태의 행위이다.

성경의 영감(벧후 1:21)
성령이 마리아를 덮은 것이 그리스도의 인성의 죄없음을 보장함과 같이 성령께서 인간 저자들을 감독하심으로 무오한 성경을 보장한다.
성경의 제자들은 성령님과 함께 하였으므로 성경의 책들의 영감이 보장되었다. 영감에서 성령의 사역은 아버지의 사역에 유사하다(참고, 딤후 3:16).

중생(딛 3:5)
중생한다는 것은 생명을 준다는 뜻이다. 성령님은 중생케 하신다. 그는 중생의 저자시다. 성령에 의한 중생을 육체적 영역에서 인간의 재생산에 대한 영적인 짝이다. 인간 생식은 인간의 생명을 낳는다. 영적인 중생은 영적 생명을 생산한다. 성령님은 중생을 낳으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도구로 하여 하신다(벧전 1:23). 같은 진리를 요한복음 3:6에서 가르치는데 거기서 성령님은 새롭게 중생케 하시는데 그 안에서 그는 인격을 중생케 하신다.

성도들을 중보함(롬 8:26)
그리스도는 신자들을 위한 중보기도자시다. 이처럼 성령도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신다.

성화(살후 2:13)
성황에는 세 국면으로 있다. 그 첫째는 신분에 관해서이다. 성경에 의해 성별되어 믿는 자는 그리스도에게 연합되며 그 결과 그리스도안에 있게 된다(참고, 고전 1:30; 히 10:14-15; 벧전 1:2).

성도들을 도우신다(요 14:16)
이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른 돕는 자를 약속하셨다. 돕는 자는 헬라어 parakleton인데 두 말에서 왔다. 곁으로 와 부른다 이다. 그러므로 돕기 위해 곁으로 부르는 자라는 것이다. 요한일서 2:1에서 주 예수님은 ‘범죄한 성도의 대언자로 호칭하셨다. 성령님은 신자들을 돕기 위해 곁으로 부르시는 돕는 자이신 그리스도와 같은 성질의 다른 분이시다. 성령님의 사역은 신자의 돕는 자로 그의 사역이 보혜사로서 그의 역할에서 그리스도의 것과 같기 때문에 그의 신성을 요구한다. 성령의 사역은 분명하게 그의 신성을 가리킨다.

성령의 신적 발현
성령님의 삼위의 다른 위격과의 관계는 발현(출)이라는 말로 이는 성령께서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셨음을 가리킨다.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주후 381에 이 교리를 확정했다.
filioque(그리고 아들로부터)란 구절이 주전 589년 톨레도(Toledo) 총회에서 더해졌는데 이는 요한복음 15:26에 근거한 것으로 아들의 동등함을 확정하였다. 이 교리는 그리스도와 아버지께서 성령을 보내셨음을 확언했다.
성령의 발현 교리를 암시하는 몇 개의 성경 구절이 있다. 하나님의 영은 성령의 발현은 그가 하나님에게서 낳은 영이시라는데 성령의 발현을 확언한다.
요한복음 15:26의 현재 시제(Proceeds)는 그 관계의 영원성을 이해하는데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영원히 발현하신다고 말씀한다. 성령님의 영원한 발현은 시편 104:30에 의해 확언된 것처럼 보이는데 이 구절은 성령님이 구약의 경륜에서 아버지로부터 나오셨음을 가리킨다.
헬라어 교회는 영원한 발현을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시작된 것으로 이해한다(둘다 동시에 발생했음).
그러나 성령의 발현은 삼위의 다른 위격에 성령의 종속됨을 가리키지 않는다.

성령에 대한 진술
성경에는 성령님에 관해서 그의 인격과 그의 사역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런 묘사는 유형, 실례, 상징과 동일시되며 성령에 관한 진술은 아래와 같이 분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