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입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라’고 하셨다(눅 24:49). 입는다(헬라어 enduo)는 일반적인 말로 옷 혹은 누구를 옷입힌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 말은 수동태로 개인이 그 자신을 옷입힌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하나님)가 그를 위해 그것을 한다는 것이다. 옷입힌다는 의미는 위 본문에서 능력으로라는 구절로 설명이 되었다. 사도들은 그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입혀질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

비둘기
그리스도의 세례에서 성령님이 비둘기같이 내려왔다. 그것은 실제로 비둘기였는가? 성경은 이 말을 여러 가지로 표현하였다. 비둘기로(마 3:16) 비둘기같이(막 1:10) 비둘기같은 형체로(눅 3:22)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누가복음 3:22과 요한복음 1:32에 따르면 비둘기의 육체적 설명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비둘기는 단지 성령을 묘사한 것뿐이다. 비둘기의 질과 특성이 성령을 묘사하는데 매체로 쓰였다.
각 복음서는 하늘에서 비둘기처럼 성령이 내려오셨음을 강조했는데 이는 성령이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임재에서부터 오셨음을 강조한다. 물론 그의 공생애를 위해 그의 아들에게 아버지의 축복과 기름부으심을 강조한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특별히 그리스도를 반대한 사람들에게 중요한 증거였다. 비둘기는 그의 공생애의 시작때 그리스도위에 오시는 성령님을 묘사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사역을 위한 그리스도위에 임한 성령의 능력을 강조하였다. 비둘기는 역시 순결의 상징이며(참고, 마 10:16) 평화의 표현이다.

보증
고린도후서 1:22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증으로 우리 마음속에 성령을 주셨다고 하였다. 보증(헬라어 arrabon)이란 말은 첫 불입금, 예금, 보증금, 보증으로 이미 구매 가격의 한 부분을 지불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질문이 있는 조문에 대한 법적 요청을 안전하게 하거나 또는 계약을 유효하게 한다. 보증금은 계약한 편이 그 이상의 지불을 하겠다는 지불금이다. 에베소서 1:14은 성령의 성질을 천국에서 우리의 궁극적이며 완전한 영화의 보증금으로 나타난다. 에베소서 1:14에서 구속은 신자들의 구속의 마지막 단계 즉 그의 궁극적 영화의 마지막 단계를 내다본다. 보증으로서 성령님은 그리스도안에서 신자들의 안전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시다.


오순절에 불의 혀들이 스스로 분배되어 사도들위에 머물었다(행 2:3). 불에 의한 하나님의 자신의 계시는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에 의해 이해되어 왔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켰다. 이는 성령의 내려오심으로 진기한 발생은 하나님이 이 사건에 계셨다는 것을 예시했다(참고, 출 3:2). 그 발생은 역시 하나님의 인가였다. 베드로가 후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선포할 때 불은 베드로의 메시지에 하나님의 인가였다(참고, 레 9:24; 왕상 18:38-39). 불은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했다(참고, 레 10:2). 오순절에 불신자들은 궁극적으로 주후 70년 성전의 파괴때 그들의 불신 때문에 심판받았다.

기름
기름은 구약성경이 성령의 사역의 모형으로 섬기도록 제사장과 왕들을 기름부었는데 성령의 모형이었다. 스가랴 4:1-14은 모형으로서 기름의 중요성을 예로 드는데 기름은 주전 515년 성전의 건축을 완성하는데 백성들을 인도하도록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을 강하게 하는 성령의 능력을 가리켰다. 등대로부터 두 지도자(3, 14절)에게 기름의 지속적인 흘러가는 것을 6절에서 설명되었는데 ‘힘으로 되지 않고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사무엘상 10:1에서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사울을 기름부었다. 그 기름부음은 그 백성을 인도하는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것을 묘사하였다(삼상 10:6, 10). 그러나 구약은 신약에서 성령의 사역을 위한 모형이었다.

성령의 모형으로서 기름
중요성 성경
사역을 위해 주어진 성령 출 40:9-16과 행 1:8
성령이 조명하심 출 27:20-21과 요일 2:20/td>
성령이 깨끗게 하시고 성화케 하심 레 8:30; 14:17 그리고 롬 8:2-3



성령은 신자의 인으로 동일시되었다(고후 1:22; 엡 1:13; 4:30). 인은 로마의 관리들에 의하면 마태복음 27:66에서 인으로 안전하게 하거나 돌을 단단하게 고착시키는 것을 의미했다. 비유적으로 인치는 것은 파피리에서 정체성의 방편으로 동물의 모든 종류의 방편으로 표시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표는 소유권을 가리키며 역시 인을 지녔을때 주인의 보호를 의미하였다. 가축을 낙인 찍는 것은 고대 인침에 대한 현대의 유사물이다(참고, 사 44:5; 축 9:4).

성령의 인침에서 몇 가지 중요한 진리가 나타난다.
1) 인은 하나님에 의한 소유권을 나타낸다. 신자들에게 성령의 인침은 신자가 하나님께 속했음을 가리킨다.
2) 인은 안전을 암시한다. 인은 구속의 날을 위해 영구한 것이다(엡 4:30).
3) 인은 역시 권위를 암시한다. 로마의 권위는 로마의 인이 있었던 곳을 다스렸던 것같이 하나님의 권위는 그의 영이 주어진 자인 신자를 지배한다.


장막절때 마지막 의식중에 제사장은 실로암못에서 물을 가져와 예배자들이 노래하는 가운데 제단곁에 통풍통에서 그것을 쏟아 붓는다. 그 사건은 메시야의 영광스러운 통치(슥 14:16-21)를 기대하는 즐거운 것이었다. 그 사건중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이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고 선포하셨다(요 7:37-38). 다음 구절은 그 설명이다.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다’(요 7:39). 몇 개의 욧점이 주몰할만하다. 물은 영생을 나타내는 성령의 상징을 드러낸다(참고, 요 4:14; 7:37-39). 물은 성령받을 것을 의미한다(겔 36:25-27; 요 7:39). 물은 장래의 축복을 기대한다.

바람
바람은 낱말 영(헬라어 Pneuma)이 영처럼 바람으로 번역될 수 있으므로 성령에 관한 가장 자연스런 묘사이다. 니고데모에게 중생을 설명하시면서 예수님은 성령에 의한 출생을 바람에 비교하셨다(요 3:8). 신생은 마치 바람이 나무를 통해서 부는 것이 설명 불가능하고 주권적인 것처럼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는 주권사역이다. 성령에 의한 신생도 그렇다 성령은 그가 원하는대로 행하신다. 이는 마치도 바람에게 아무도 지시할 수 없는 것과 똑같이 아무도 성령에게 지시할 수 없다(참고, 고전 12:11).

계시와 영감에서 성령

정의
계시(Revelation)
계시(헬라어 apokalupsis)는 드러내다 혹은 베일을 벗긴다는 것을 의미하며 위대한 조각가에 의해 완성된 조각상을 가렸던 베일을 벗기는 것을 묘사하는데 쓰였다. 성경의 진리에서 계시는 하나님께서 사람이 다른 것으로는 알 수 없는 어떤 것을 사람에게 드러내 주시는 것을 의미했다(참고, 겔 2:2; 8:3).

영감(Inspiration)
성경의 영감은 하나님의 인간 저자들 감독하시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는데 그들의 개성을 사용하시므로 그들이 원본의 말씀에서 인간에게 그의 계시를 오류없이 저작하고 기록하였다. 계시에 대조적으로 영감은 계시가 자료를 가리키는데 비해 영감은 그 방법을 언급한다고 말할수 있다. 영감이란 말은 디모데후서 3:16에서 헬라어 Theopneustos(하나님이 호흡하셨다)에서 취해진 말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에서 나온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적 호흡의 산물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호흡은 그의 창조적인 말씀이 지닌 그의 권능이 상징이다.

하나님 - 호흡으로 창조하심
하나님 그의 호흡으로 하늘을 형성하심, 시 33:6
성경을 계시하심, 딤후 3:16


계시의 통로
구약 선지자
구약 선지자의 메시지는 그들 자신에게서 기원된 것이 아니다. 선지자는 단순히 하나님이 그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수단이었다. 그는 그의 메시지를 전하는데서 성령으로 인도받았다(참고, 렘 1:2, 4, 9, 11, 17).

성령
구약 선지자는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드러내시는 전달수단인 반면에 성경의 저자들을 인도하신 분은 성령이셨다. 베드로후서 1:21은 성령이 구약 선지자들과 함께 하심으로 오류에서 그들의 말을 지켜 주셨다. 성령께서 다윗을 통제하셨다. 다윗은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며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다고 하였다(삼하 23:2).
사도행전 1:16은 다윗의 유다에 관한 예언을 설명하면서 같은 진리를 강조한다. 그 예언은 이루어져야 하는 데 그 이유로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통해 말씀하셨기 때문이었다(참고, 행 4:25; 마 22:43). 성령님은 에스겔을 통제하셨다. 에스겔의 많은 예언들은 성령의 통제를 통하여 주어졌는데 그 분이 선지자로 하여금 하나님께로부터 환상을 받을수 있게 하셨다(겔 2:2; 3:24; 8:3; 11-24). 성령님이 미가를 통제하셨다. 성령님이 그 선지를 충만케 하시므로 그 나라를 향해 말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셨다(미 3:8).

계시의 방법
하나님은 구약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

말씀으로
구약에는 하나님께서 구두로 말씀하신 예가 많다. 하나님꼐서 아브라함에게 들리게 말씀하셨다(창 18:13, 17). 그는 그 백성이 듣도록 모세에게 말씀하셨다(출 19:9; 20:1FF). 그는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다(사 6:8).

꿈으로
꿈을 통한 계시는 계시의 하나의 열등한 방식인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께서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대화하는 것은 특권이었다. 그러므로 이방인에게 소통하신 하나님의 방법은 꿈을 통한 것이었다. 그것은 믿지 않는 자들을 가르칠 수 있게 하시는 한 방법이었다. 꿈을 통한 계시는 꿈을 꾼 자가 수동적이며 무의식상태에서 받은 것이므로 다만 비물질적인 심리적 형상으로만 발견된다. 꿈은 신자나 영적 분별력이 없는 사람에게 적합하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꿈으로 말씀하신 자는 아비멜렉(창 20:3), 야곱(창 31:10-13), 요셉(찯 37:5-9) 그리고 느브갓네살이다(단 2장).

환상
환상은 영적으로 성숙한 자를 위해 계획된 계시의 고상한 범주인 자처럼 보인다. 선지자들은 자주 환상을 받았다. 선지자를 위한 말의 하나는 선견자(Seer)인데 이 말은 본다는 히브리어 말에서 왔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보는 자이다. 환상을 받은 하나님의 대면자의 예로는 아브라함(창 15:1), 나단(대상 17:15), 에스겔(겔 1:1), 다니엘(단 8:1)이 있다.

신의 현현
구약에서 신의 현현은 물리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타나심이었다. 현현이란 말(Theophany)은 헬라어 theos(하나님)과 Phanein(나타나다)에서 왔다. 따라서 신의 현현은 하나님의 나타나심이다. 이 모양으로 하나님의 방문을 받는 것은 특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일반적으로 아주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을 위해서만 예비되었다. 구약의 신의 현현은 아브라함(참 18장), 여호수아(수 5:14), 기드온(삿 6:22) 그리고 다니엘(단 6:22)에게 나타났다.

구약의 영감
성령님 자신이 모든 성경의 영감을 위한 방편이셨다. 그의 감독사역은 그 소통의 무오를 확증한다. 구약에 그 다양한 예가 있다. 구약 저자들은 성령께서 그들의 저작을 인도하신다는 의식이 있었다(삼하 23:2-3). 이 구절에서 네 번이나 강조하기를 하나님이 다윗에게 말씀하셨다고 하였다.
그리스도는 구약 저자들이 성령에 의해 인도되었다고 가르치셨다(막 12:36). 시편 110편을 인용하시면서 예수님은 다윗이 성령으로 말씀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영감된 다윗의 말씀에 근거하여 그의 논증을 하셨다. 사도들은 구약 저자들은 성령으로 인도되었다고 가르쳤다(행 1:11; 4:24-25; 28:25). 유다의 죽음을 설명하면서 베드로는 그것이 반드시 이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함은 다윗을 통해서 성령님께서 예언하셨기 때문이라고 하였다(행 1:16).

신약의 영감
디모데후서 3:16같은 영감에 관한 중요한 신약의 구절은 기본적으로 구약의 견지와 같다. 그럼에도 신약에는 영감을 가리키는 많은 구절이 있다.

그리스도는 신약의 영감을 확증하셨다.
그리스도는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그들이 기억함으로 오류없이 쓰도록 그들에게 능력을 주실 것이므로 사도들은 그들의 저작에서 안전하게 지켜지게 될 것을 예언하셨다(요 14:26; 16:14). 이것은 어떻게 요한이 후에 그가 그의 복음서를 썼을때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해 자세한 모든 것을 기억할수 있었는지를 설명한다(요 16:12-15).
성령은 신약 저자들을 아래 방식으로 인도하셨다.
(1) 그는 저자들로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사실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도우셨다.
(2) 그는 그들에게 그들이 쓰고 있는 것을 신학적으로 이해하도록 하셨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실 때 그들은 그의 절박한 죽음과 부활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3) 그는 신약 전체의 완성을 보장하셨다. 요한복음 14:26의 모든 것은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영적 진리를 가리키며 신약 성경의 완성을 필연적으로 포함한다.

신약 저자들은 그들이 성경을 쓰고 있음을 인식하였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을 모임에서 몇 가지 잘못을 인하여 꾸짖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교정하게 하였다. 그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가 저들에게 쓰는 것이 주님의 명령임을 기억하게 하므로 결말지었다(고전 14:37). 바울은 그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쓰고 있다고 인식하였다. 바울의 저작을 통해 몇 가지 결론을 이끌어 낼수 있다. 바울의 가르침은 직접 계시를 통하여 그에게 주어진 것이었다(갈 1:12). 바울의 가르침은 성령님에 의해 그에게 가르치신 것이었다(고전 2:13). 바울의 교훈은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따라서 오류에서 자유했다(고전 14:37; 살전 4:2, 15). 바울의 가르침은 초대교회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식되었다.
신약 저자들은 각자 다른 저작들을 영감된 것으로 인식했다. 디모데전서 5:18에서 바울은 ‘성경이 말씀하기를’ 이란 말로 그의 서론을 언급하였다. 그리고는 신명기 25:4과 누가복음 10:7로부터 인용하였다. 바울은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인용함으로서 그것들이 권위에서 동등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누가가 쓴 말씀은 모세의 신명기 기록처럼 아주 같은 의미로 성경이었다. 베드로후서 3:16에서 베드로는 바울의 글을 성경의 다른 책들과 같다고 하였다. 바울의 저작은 구약성경과 동등한 것에 두었다. 유사한 병행이 베드로후서 3:2에도 있다.

성경의 권위의 이중적 구분
권위 구분
너희는 기억해야만 한다. 거룩한 선지자들에 의해 전에 말씀한 말씀들(구약)
사도들에 의해 전해진 주님과 구주의 계명(신약)


구약에서 성령의 사역
중생
성령님은 구약에서 사람들을 중생케 하셨는가?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신생을 니고데모에게 설명하셨는데 그에게 이런 일은 구약에서 가르쳤기 때문에 그는 그것들을 알아야 한다고 깨우치셨다(요 3:10). 모든 가능성으로 예수님은 에스겔 36장을 언급하셨는데 두 구절이 물과 성령을 논의하기 때문이었다. 에스겔 11:19과 36:25-27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장래에 중생을 경험하게 될 것을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새로운 마음, 새로운 영을 주실 것이다. 그는 그들안에 그의 영을 두실 것이다. 그는 그들을 중생케 하실 것이다. 비록 이런 구절들이 장래에 속한 것이지만 구약 신자들 역시 중생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에스겔 18:31에서 사람들은 너희 자신을 새 마음과 새 영이 되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에스겔 36:235-27의 두 병행구절은 요한복음 3:5같이 구약 신자가 성령으로 중생되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참고, 시 51:10).

선택적인 내주하심
요한복음 14:16-17에서 예수님은 오순절 성령께서는 구약의 것과 다르게 신자들에게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실 것을 암시하셨다. 이 구절의 강조는 새 사역이 내주하심이며 그것이 영구하게 되는 것이었다. 요한복음 14장의 약속은 모든 신자에게 예약된 것이며 내주하심이 영구하게 될 것이다. 구약에도 내주하심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선택적이었고 일시적이었다.
(1) 성령님은 구약에서 어떤 사람들에게 내주하셨다 성경은 여호수아(민 27:18)와 다윗(삼상 16:12-13)안에 거하셨다.  
(2) 성령님은 구약에서 어떤 사람들에게 임하셨다.
일시적인 임하심은 성령께서 특별한 과업을 위해 개인에게 오셨던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그 과업이 완수되면 성령님은 더 이상 그 위에 머물러 계시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타당하다. 성령이 구산리사다임을 정복하도록 옷니엘에게 오셨다(삿 3:10). 그는 미디안을 파멸하도록 기드온에게 임하셨다(삿 6:34). 그는 암몬 족속을 파하도록 입다에게 임하셨다(삿 11:29). 그는 이스라엘에 축복의 예언을 하도록 발람에게 임했다(민 24:2). 이런 본문들은 모두 육체적 활동을 위해 능력을 주셨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 중에 아무도 어떤 의미에서 죄에서의 구원에 관하여 한 것은 없었다. 능력의 부여는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 때문에 어떤 것을 해야 하는 것은 없었다. 입다는 기생의 아들이었으며 우상숭배의 환경에서 살았다. 삼손은 육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의 육체적 욕망에 따라 살았다. 발람은 불신자였다.
(3) 성령님은 구약에서 어떤 사람들을 충만케 하셨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부사셀을 충만케 하셨으며 그에게 성전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금과 은으로(출 31:2-5) 작업하기 위해 예술적 디자인을 할 수 있도록 그에게 기술자가 되기 위한 지혜를 주셨다.
구약시대에도 성령님께서 신자안에 계셨지만 그것은 일시적이었다. 특별한 과업을 위해 임재하신 성령님은 그 일이 끝났을 때 그에게서 떠나가셨다. 주의 영이 사울에게 임했으나 그에게서 떠나셨다(삼상 10:10; 16:14). 다윗은 그에게서 성령님이 떠나가실까봐 두려워했다(시 51:11).

죄를 억제하심
창세기 6:3은 성령이 죄를 억제하시는 것이 제한적임을 가리키고 있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이 성령의 죄를 확신케 하시는 사역에 주의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었다. 그 문맥에서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홍수로 그 사람들을 심판하셨다.

섬김을 위한 능력
구약에서 성령은 선택된 개인에게 특별한 과업을 이루도록 주셨다. 그런 능력은 성막과 성전을 위한 기술적인 일에서의 능력으로 브사셀과(출 31:2-5; 35:31-35) 히람(왕상 7:14)에게 주어졌으며 나라를 인도하는 능력으로는 여호수아(민 27:16-18), 사울(삼상 10:10) 그리고 다윗(삼상 16:13)에게 주어졌으며 전쟁에서의 능력은 옷니엘(삿 3:10), 기드온(삿 6:34) 그리고 입다(삿 11:29)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비상한 육체적인 힘은 삼손(삿 14:9)에게 주어졌다.

글/ 서춘웅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