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의 신학
초대교회의 신학은 초대교회의 발전에 대한 역사와 교리의 발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교리의 발전으로서 신학은 사도 이후 속사도 교부들의 신학, 변증가들의 신학 교리적인 논쟁을 잠식시킨 교회의 총회들 그리고 교리의 발전에 동기가 된 교리적 오류의 이단 사상들이 모두 연계된 초대교회의 역사이기도 하다.
속사도 교부들의 신학
속사도 교부들의 글은 그들이 신약 사도들이 생존해 있던 중에 살아있던 사람들의 글을 대표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 속사도 교부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고린도인들에게 보내는 (1) 로마의 클레멘트 제1서신(The First Epistle of Clement of Rome to the Corinthians, A.D. 97), (2) 클레멘트의 제2서신(The Second Epistle of Clement), 이 서신은 주후 150년경에 썼는데 Clement가 쓴 것이기 보다는 차라리 알려지지 않은 저자의 작품이다. (3) 익나디우스 서신(The Epistle of Ignotius)들은 안디옥의 감독 익나디우스가 주후 110년경 에베소인, 매그네시아인, 트랄리아인, 로마인, 밀라데리아인, 서머나인과 서머나교회의 감독 폴리갑(Polycorp)에게 쓴 것이다. (4) 디다케(Didache) 혹은 12사도들의 교훈(Teaching of the Twelve Apostles, A.D. 100), (5) 바나바 서신(The Epistle of Barnabas), 이 서신은 주후 70년과 132년 사이 어느 때에 기록되었다. (6) 허마스의 목자(The Shepherd of Hermas, A.D. 140-145), (7) 파피아스의 단편들(The Fragments of Papius), 이 단편들은 주후 125년경에 히에라 폴리스의 감독 파피아스가 쓴 것이다. 이런 속사도 교부들의 글은 신약의 저작들과는 그 질에서 많이 다른 것이지만 약간 새로운 자료들이 제시되어 있다. 또 이 글들은 교리의 강조대신에 윤리를 강조한다는 특성이 있다. 그러나 이런 글들이 중요한 것은 그들이 신약의 정경과 신실성의 증인이며 신약과 제2세기에 나타난 변증가들의 더 사색적인 글들 사이에 교리적 연결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교부들의 성경관
속사도 교부들의 공통된 특징은 성경을 그들의 작품에 다소간 인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구약과 신약에서 폭넓게 인용하는데 어떤 경우는 긴 부분을 그들의 작품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성경의 권위를 알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클레멘트는 “성경에 말씀하셨다”에 근거해서 죄악된 삶을 경고하고 있다(1 Clement, Cor, 35, 46). 클레멘트는 성경은 참되며 성령을 통하여 주어졌으므로 그것들 안에는 옳지 않은 것이나 위조된 것이 없다고 하였다(Cor, 45). 그는 구약을 “거룩한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언급하였다(Cor, 53).
속사도 교부들은 그들의 성경 해석에서 자주 풍유적이었다. 너희 임신하지 못한 자여 기뻐하란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여 해석하기를 우리 교회는 그 자녀들이 교회로 주어지기 전에는 무자했다고 하였다(2 Clement). 허마스의 목자는 다른 예가 된다. 익나디우스는 너희는 트랄리 사람들을 권면하여 주님의 육신인 신앙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인 사랑으로 회복하라고 하였다(Trad. 8).
교부들의 신학
삼위일체의 신앙이 확립되었다. 클레멘트는 “하나님이 사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가 사심 같이 그리고 택자의 신앙과 소망이신 성령님처럼”이란 그의 언급에서 삼위 하나님의 동등함을 설명하였다. 클레멘트는 하나님을 우주의 창조자요 주인으로 인식하였다(Cor. 33).
교부들의 기독론
익나디우스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는데 그는 예수님께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하나님으로 언급하였다(Eph, 1, Rom 1). 또 신자들안에 내주하시는 분으로 ‘그 자신이 우리 아버지로 우리 안에’ 계신다고 하였다(Eph. 15, 역시 Mag. 12). 그 밖에도 하나님의 지식(Eph. 17), 창세전에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분(Mag. 6), 그 아들(Rom. 1) 이시라고 하였다.
폴리갑 역시 예수님을 “우 주 하나님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Phil. 12)라고 언급했으며 그는 아버지로부터 보내신 자라고도 하였다(Clement, Cor. 42). 그의 인성은 사도요한의 말로 확인하였다(Polycarp, Phil. 7). 그의 부활은 아주 자주 인식되고 있다(Clement, Cor. 24, 42, Ignatius, Trallians 9; Phila. 1). 역시 이들은 그리스도의 대제사장되심과 그의 천사보다 우월하심을 확언한다(Clement, Cor. 36, 61; Polycarp, Phil. 12).
교부들의 구원론
속사도 교부들은 자주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구원을 언급한다. 클레멘트는 그리스도의 피에 우리의 눈을 고정시키고 그것이 얼마나 그의 아버지께 값진 것인지를 깨닫자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을 위해 흘리신 그 피는 전 세계를 위한 회개의 은혜를 획득하기 때문이다(Cor. 7; 참고, Cor. 23, 49, Parnabas 5)
이런 클레멘트의 언급은 무한속죄를 암시하고 있는 것같다.
익나디우스는 구원을 초래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믿음임을 가리키고 있다(Smyrn. 6). 회개 역시 강조되었다(2 Clement. 13, 19).
그러나 문제점도 발견되는데 구원에 행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클레멘트의 긴 논증은 구원에서 순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롯은 라합처럼 그의 대접(Cor. 12) 때문에(Cor. 11) 구원받았다고 한다. 구원은 역시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깨끗한 육신을 지키며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을 포함하였다(2 Clement 8). 사랑 역시 천국에 들어가는데 필수인데(2 Clement 9) 세상의 즐거움에 작별을 고하고 악한 욕망을 거부하는 것이었다(2 Clement 16). 의의 실천 역시 필요했다(2 Clement 19).
속사도 교부들의 구원관은 다분히 믿음을 통한 은혜구원에서 떠나 있다. 구원은 믿음에다 경건의 실천이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저들은 구원의 은혜와 성화의 삶 사이를 구분하는 지혜가 부족하였다. 이런 경향은 그들이 처했던 박해와 서민들의 질서 속에서 믿어 구원받은 신자의 삶이 얼마나 경건한 것인지를 드러내야 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저들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구별된 경건한 삶을 살므로 불신자와 무엇이 다른지를 보여 줄수 있었다.
교부들의 교회론
교회론에서 두드러진 것은 교회의 직제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교회에는 사도들과 집사가 있었으나 점차 발전하면서 집사, 장로 그리고 감독직으로 확장되게 되었다. 교회론에서 그 직제에 관심이 컷던 교부들은 자연히 교회의 질서를 중시하게 되면서 직분이 점차 하나의 지위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이런 경향은 저들의 신자들에게 한 권면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저들은 신자들에게 장로와 감독의 권위에 순종한 것을 요구하였다. 클레멘트는 신자들을 권면하기를 장로들과 평화하며(Cor. 54) 그들의 권위에 순복하며 그들의 징계를 받으라고 하였다(Cor. 57:63). 폴리갑은 장로와 집사들에게 순복하라고 하였다(Phil. 5). 익나디우스는 신자들의 감독에게 순종을 아버지께 대한 그리스도의 순종과 사도들의 그리스도께 대한 순종과 연결시켰다(Mag. 13). 지도자들은 상당한 존경을 받아야 했다. 익나디우스는 트랄리인들에게 쓰기를 “감독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 사도들이 그리스도께 하듯 장로들에게 순복하라.. 그들이 아버지의 모형으로 감독과 하나님의 회의로 장로들에게 존경하듯이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집사들을 존경하라”(Tral. 2, 3). 익나디우스는 빌라델비아인들에게 말하기를 하나님께와 예수 그리스도께만큼 많이 감독에게 하라고 하였다(Phil. 3). 그는 더 나아가 너희는 모두 너희의 감독 따르기를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따르시고 장로가 사도들에게 하듯 집사에게 하나님의 계명처럼 존경을 표하라. 감독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있고 예수님이 있는 곳에 보편교회가 있다(Smyrn. 8).
익나디우스에 의하면 감독을 떠나서 세례나 애찬을 행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그가 인허한 무엇이나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감독을 존귀케 하는 그는 하나님을 존귀케 하는 것이다(Smyrn. 8; 9). 주의 성찬은 불멸의 약이요 해독제이므로 우리가 죽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영원히 산다고 하였다(Eph, 20). 사도들의 교훈인 디다케는 성찬 전과 후에 기도에 관한 지시를 하고 있다(9; 10). 그리고 세례와 금식에 관한 교훈도 하고 있다(7;8).
교부들의 종말론
교부들은 종말론에 관해서는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 클레멘트 2서는 하나님의 나타나심에서 하나님의 오심의 왕국을 언급하고 있다(12:17). 사람들은 이 세상의 왕국이 그리스도에 의해 접수될때 놀라게 될 것이다(17). 그리고 그 왕국과 영생 사이를 구분했다(5). 그 왕국안에서 신자들은 용감하게 싸우기 위해 왕관을 쓰게 될 것이다(7).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에서 분명하게 산 자들은 심판받고 꺼지지 않는 불로 형벌받게 될 것이다(17).
바나바(Barnabas)는 신자들을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의 근거에서 권면한다(21). 바나바는 천년왕국에 관해서 환상적인 언급을 하고 있다. 그는 천년왕국에 대해 사중적인 축복을 말한다.
(1) 의인은 죽음에서 살아나 다스릴 것이다.
(2) 창조가 새로워진다.
(3) 노예됨에서 자유케 된다.
(4)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에서부터 모든 종류의 풍성한 음식을 생산케 될 것이다.
그 날에 포도나무가 자랄 것인데 나무마다 천개의 싹이 있고 각 싹은 천개의 싹이 있고 각 싹은 천개의 가지가 있고 가지마다 다시 천개의 잔가지가 있고 잔가지마다 천개의 송이가 있고 송이마다 천개의 포도가 있다. 모든 동물들은 땅에서 생산된 이 열매들을 사용할 것이며 그들의 차례로 평화롭고 조화스러울 것이며 인간에게 온전히 복종하게 될 것이다.
고대의 변증가들
기독교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와 중상모략자들 때문에 기독교의 변호를 위해 변증서를 쓴 탁월한 이방인 된 자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런 초기 작자들은 변증가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들의 과제는 삼중적이었다.
(1) 그들은 무신론, 식인, 근친상간, 게으름, 그리고 반사회적인 행위에 대한 거짓된 비난에 대하여 기독교를 변호하였다. 그런데 사실 이런 비난은 모두가 오해에 의한 것이었고 기독교를 반대하기 위해 중상모략이지만 박해와 반대 때문에 모임은 은밀하게 할 수밖에 없었고 또 자주 성찬식을 행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반사회적인 행위의 비난은 신자들이 구별된 청결의 삶과 부도덕하거나 잔인한 극장이나 원형 경기장 등에서 있었던 검투사들의 싸움 등에 참관하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였다.
(2) 그들은 공격적인 자제를 취하기도 했는데 그리스도를 기대하는 구약의 예표적이며 그림자같은 성질임을 오해한 유대인들에게 그 잘못의 책임을 지웠다. 역시 그들은 특별히 신약에 하나님의 계시와 비교함으로 이교 신들의 부도덕처럼 이교의 부도덕을 공격하였다. 이교의 신들은 죄인들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저들은 시기하고 음모하여 싸우고 죽이고 결혼하며 부도덕한 관계를 서슴없이 행한다.
(3) 그들은 역시 성취된 예언과 기적을 통해 신약계시의 실재를 논증했다.
변증가의 대표는 아래와 같다.
디오그네터스에게 보낸 편지(Epistle to Eiognetus)
이 서신은 주후 150년경 무명의 저자가 썼다. 아덴의 감독 콰드라투스(Quadratus)가 변증서를 썼으나 상실되었는데 마쿠스아우겔리우스에게 보낸 서신이었다. 히에라 폴리스의 감독 클라디우스 아폴리나리스 역시 마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변증서를 썼다. 아덴인 철학자 밀티아데스(Miltiades)는 유대인과 이교도 모두를 반대하는 글을 썼다. 아데나 고라스(Athenagoras)는 주후 177년경에 마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변증서를 썼는데 무신론, 식인 그리고 부도덕에 대한 고발을 반박하였다. 안디옥의 데오필루스(Theophilus)는 하나님 신앙과 부활의 소망을 변호하면서 이교도 신앙을 비난하고 구약에 비교하여 이교문학의 열등함을 폭로하였다. 앗수르인 타이탄(Taitan)은 이교의 무가치함을 반대하여 기독교의 합리성을 변호하였다. 최대에 변증가로 사료되는 순교자 저스틴(Justin)은 변증과 유대인 트라이포(Trypho)와 대화를 썼다. 그는 개종한 철학자로 기독교를 변호함에서 그의 철학적인 경향을 유지하였다.
변증가들의 성경론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서신은 하나님의 계시를 강조하였다. 우주의 창조자는 자신을 인류에게 드러내신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자신이 하늘에서부터 인간가운데 진리와 거룩한 가르침을 심으시는데 이는 인간의 지력을 초월하는 것으로 그들의 마음에 확고하게 그것을 고정하셨다(Diog. 7). 이 언급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계시는 철학자들의 사색적인 탐색과는 대조적이다. 이 서신은 하나님은 자신을 말씀(그리스도를 의미함), 혹은 이야기를 의미하는 철학적 용어(헬라어 logos)를 통하여 나타내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인류에게 하나님의 그 이야기이다. 특별히 이런 의미에서 변증가들은 그리스도를 인류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스승으로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입으로 주장된 말씀인 그 이야기를 이해하라고 권한다(Digo.11).
변증가들의 신학
디오그네루스에게 보낸 서신은 나무나 돌의 신들의 무의미하고 무익함을 길게 언급하고 있다. 그는 그의 독자에게 이런 신들은 사람들이 그 위로 걷는 돌과 꼭같은 돌로 만든 것이며 이런 신들은 녹슬고 부패한다. 사실 은과 금으로 만든 신들은 밤에 열쇄로 잠가져야 하며 파수병이 지켜야 한다(Digo. 2). 하나님은 우주의 전능하신 창조자시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Digo, 7) 그리고 우주의 주인이시며 창조주로 만물을 만드시고 질서있게 그것들을 배열하신 분으로 언급한다(Digo. 8). 순교자 져스틴은 하나님은 의와 절제 그리고 다른 덕의 아버지로 악이 범접할 수 없는 가장 참되신 신으로 하나님을 언급한다(IApol, Just 6).
그의 계시전에 사람들은 그가 어떤 분과 같은지 알지 못했으나 이제 그들은 친절하시고 선하시며 공평하시며 참되신 그를 알고 있으며 그만이 선하시다(Digo. 8). 인간은 심판과 죽음을 받아야 하지만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인내하신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아들을 죄를 위한 속죄로 보내셨다(Digo. 9). 이 하나님안에서 그가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이 명시되었다(Digo, 10). 요한복음 3장 11절의 말씀들은 이 선언에서 매우 중요하다.
아데나 고라스(Athenagoras)는 유일신론과 삼위일체에 대한 분명한 언급을 한다. 그는 언급하기를 “우리는 창죄되지 않고 영원하시며 보이지 않으시고 고통을 느끼지 않으시며 불가해하시며 광대하신 한 분 하나님을 인식한다”고 하였다. 그는 마음과 지성으로만 이해할 수 있으며 빛, 아름다움, 영으로 둘러싸여 계시며 형언할 수 없는 능력이 있으시다. 그에 의해 우주가 그의 말씀을 통해 창조되었으며 질서가 잡혔으며 서로 붙들고 있다(내가 그의 말씀을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역시 하나님은 아들을 가지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Atlen Plea 10). 성령은 하나님께로부터 유출되셨으며 그에게서 흘러나와 태양의 광선처럼 그에게로 돌아간다. 순교자 져스틴은 아들이 두 번째 위치를 정하시며 선지자의 영을 세 번째 지위라고 말함으로 삼위일체에 대한 흥미로운 언급을 하였다(1 Apolo. Just. 13).
변증가들의 기독론
말씀으로서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으나 그의 백성에게는 배척을 받으셨고 이방인들에 의해서는 믿은바 되셨다(Diog, 11). 시작부터 이 말씀은 영원하셨다(Diog. 11)고 하여 그리스도의 영원하심을 언급하였다.
비록 아데나고라스가 그리스도를 “아버지의 장자”로 묘사하였으나 그럼에도 그는 아들이 창조되셨음을 부인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영원하신 정신이시므로 태초부터 그는 그 자신안에 그의 말씀이 있었으며 영원히 지혜로우신 분이다(Athen. 10, 참고, 1Apol. Just, 21).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만 아니라 사상에서와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도 묘사하였다. 하나님의 아들은 아버지의 정신이시며 말씀이시다(Athen, 10).
그의 사역에서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한 대속이시며 법없는 자를 위한 거룩이시며 악한 자를 위해 죄가 없으시며 부패자를 위해 썩지 않는 분이며 죽을 자를 위한 불멸자로 소개하였다(Diog, 9). 로마서 5장과 베드로전서 3장 18절의 말씀이 분명하게 엿보인다.
변증가들의 교회론
순교자 져스틴은 이사야 1:16-20은 기독교 세례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 이 의식이 중생을 낳는다고 분명히 암시한다고 하였다(1 Apol, Just. 61). 그는 역시 성찬(Euchanist)은 신자들만을 위한 것임을 가리켰으며 언급하기를 말씀에 의해 봉헌된 음식이며....... 우리의 육신과 피가 양육되는 그에게서 온 이 도의 말씀으로 봉헌된 양식은 성육신한 예수님의 살과 피이다. .......화체설의 로마카톨릭교리의 씨들이 이 언급안에서 눈에 띈다.
고대의 오류
모세의 율법에 대한 관계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에 대한 이해에서는 신약에 나오는 인물, 심지어 베드로까지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역시 사도행전 15장에서 교회가 다뤘던 문제이기도 했다. 교회 역사 초기에 유대인 신자들의 분파는 구원을 위해서 율법에 집착하는 것이 본질적이라고 가르쳤다. 나사렛파(the Nazarenes)는 모세의 율법을 엄격하게 지켰다. 비록 그들은 이방인에게는 강제하지 않았으나 안식일, 할례 그리고 음식규례를 강조하였다. 그들은 동정녀 탄생과 예수님의 신성을 인식했으며 그의 가르침이 모세와 선지자들보다 우월한 것은 알고 있었다. 나사렛파는 마태복음의 히브리어판만 사용했으며 동시에 바울의 사도직도 인식하고 있었다.
예비온파(The Ebionites)는 동정녀탄생과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했으며 예수님은 마리아와 요셉의 본래의 아들이었다. 따라서 선지자이긴 하지만 단순한 인간이라고 가르쳤다. 바울의 사도직은 배격되었으며 그를 율법의 배교자로 생각했다.
엘케사이파(The Elkesaites)는 한 천사가 엘케사이에게 한 책을 주었다고 주장하며 그리스도는 인간 부모에게서 낳은 한 천사라고 가르쳤다. 그리스도의 동정녀탄생을 부인하면서 그는 천사장이었다고 가르쳤다. 율법이 아직은 유효하다고 주장하면서 안식일 성수와 할례의 필요성을 가르쳤다. 고린도전서와 디모데전서는 이 이단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영지주의 철학에 대한 관계
영지주의는 헬라어 그노시스(Gnosis)에서 왔으며 그 의미는 지식으로 이 이단의 특성을 강조하고 있다. 영지주의는 헬라 철학에 근거해서 세워진 철학체계로 물질의 악과 영의 선함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은 물질계를 창조하실 수 없으셨다. 그러므로 그들의 철학체계에서 영지주의는 온전히 영이신 최고의 하나님으로 시작된 유출과 애온들의 연속을 고안하였다. 그 고리에 중간 존재들의 하나가 데미우르게(demiurge)인데 그들이 싫어하는 구약의 하나님이다. 이 데미우르게는 그 안에 영의 충분함이 있어서 창조력을 가지며 물질의 충분함이 있어서 물질계를 창조하였다는 것이다.
이 철학체계는 역시 예수님의 영지적 견해에 영향을 주었다. 거기에는 두 가지 다른 견해가 있다. 그 하나는 물질은 악하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예수님은 실제로 인간 모양으로 오실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다만 인간 모양으로 보인 것뿐이며 고통을 받은 것처럼 나타났을 뿐이라고 한다. 다른 견해는 신적 로고스(Logos)가 인간 예수에게 임했다가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떠났다는 것이다. 구원은 역시 철학적이었다. 그것은 진리를 아는 것이었고 소소의 이런 자에게만 부여되었다고 한다. 죄와 악은 무지나 지식의 결핍과 관계가 있다. 오늘날로 하면 크리스챤 싸이언스가 영지주의의 재생이라고 할 수 있다.
말시온(Marcion)의 정경에 대한 관계
말시온은 부요했으며 주후 139년경 로마로 와서 교회에 영향을 주었다. 그는 그의 특별한 교리 때문에 자신이 교회를 조직하는데 실패하였다. 그는 영지주의의 어떤 점을 따랐으나 그들의 철학적 강조는 배격했다. 말시온은 갈라디아서가 복음의 기초적인 진리인데 율법과 복음의 혼합으로 부패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말시온은 바울서신의 10개와 누가복음을 편집한 번역본을 제외한 모든 성경을 배척했다. 그가 악한 분으로 생각한 구약 율법을 준 창조주 하나님과 그리스도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신약의 하나님 사이를 구분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구약의 메시야가 아니었으며 그는 육신의 몸으로 오지 않았으며 신약의 자비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다. 이것은 그의 율법에 대한 반대를 통해 예수님을 배척한 구약의 하나님에 대한 반대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그러나 그는 해를 받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참 몸을 갖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말시온은 지식을 통한 구원에 반대하여 믿음으로 인한 구원을 선포했다.
말시온은 실제로 교회에 도움을 주었는데 그것은 그의 선별 정경 때문에 성경의 진정한 정경을 결정하도록 압력을 주었기 때문이다.
몬타누스주의의 가르침에 대한 관계
몬타누스(Montanus)는 소아시아 베르기아 태생으로 엄격한 금욕주의를 가르쳤다. 그의 세례에서 몬타누스는 방언을 했으며 성령의 시대가 왔으며 이 세상의 종말이 가까웠다고 주장하였다. 새예루살렘이 곧 하늘에서 내려오며 천년왕국시대가 시작된다고 하였다. 그와 그의 제자들은 세상에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해 주는 마지막 선지자들이었다. 그의 제자로 두 여인들 역시 새 계시를 주는 선지자로 알려졌다.
몬타누스는 요한의 글에서 피난처를 발견했으며 그는 그리스도를 세상에 나타내신 성령 보혜사를 통한 대변자라고 가르쳤다.
몬타누스는 성령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말씀하시며 이들 중에는 여인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가르쳤다. 시대의 종말이기 때문에 성령의 은사들이 명시되었다고 하였다.
몬타누스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엄격한 도덕적 요구를 했으며 그 이유 때문에 소아시아에서 상당수의 추종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금식과 규정식을 강조했으며 배우자 사후에 두 번째 결혼을 금했다. 그리고 순교와 함께 독신을 장려했다.
비록 콘스탄틴노플 회의가 주후 381년에 몬타니즘을 정죄하였으나 그 가르침은 터툴리안이 그들의 가르침으로 개종할 만큼 인기가 있었다.
정경과 신조들
신앙의 규범들
이단 그룹들과 선생들이 나타나면서 특별히 말시온의 정경의 출현은 참된 교리가 무엇이며 어느 책이 영감된 책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신약 정경을 인식하기전에 초대교회 신자들은 참된 교리를 결정하고 거짓된 교리를 알고 배척하기 위해 신앙의 규범을 발전시키도록 압력을 받았다. 이것이 사도신경의 최초의 형태였다. 신앙의 규범에 대한 최초의 형태는 마태복음 28:19의 세례의 형식이었다. 그것은 삼위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이었다. 로마의 상징은 아마도 세례의 형식에 대한 하나의 정교함이었을 것이다.
신앙에 대한 개략적인 언급은 옛 로마형식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의 기원은 사도들이며 베드로에 의해 로마로 가져왔다고 믿는데 주후 2세기 중반에 사용되었다. 옛 로마의 짧은 형식은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과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낳으신 그의 유일한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본디오 빌라도아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장사되셨다. 세쨋날 그는 죽은 자에서 살아나셨다. 그는 하늘로 올리우셨으며 아버지의 오른 손에 앉으셨다. 거기로부터 그는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그리고 성신을 믿는다. 거룩한 교회, 죄의 용서, 몸의 부활, 영생을 믿는다.
신약의 정경
신약정경을 인식하는 최초의 단계에서 바울의 서신들이 교회들에서 읽혔으며 권위가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말시온과 영지주의자를 반대하면서 이레니우스(Irenaeus)는 사복음서를 인식하였다. 주후 175년경에 뮤라토리안 정경(Muratorian)은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그리고 요한1서를 제외한 신약 전체의 목록을 기록하였다. 주후 367년에 쓴 작품에서 아다나시우스(Athanasins)는 신약의 모든 책 목록을 싣고 있다. 이런 27권의 책들에 대한 폭넓게 동의가 당연히 이루어졌다.
사도신경
사도신경은 주후 340년경에 나타난 가장 오래된 형식의 성경의 참된 교리를 확언하고 말시온과 다른 이들의 거짓된 가르침을 거절하였다. 그 기원은 마태복음 28:19과 같은 하나의 간결한 언급이었다. 다른 기초적인 성경의 언급은 로마서 10:9-10; 고린도전서 12:3; 15:4; 그리고 디모데전서 3:16이었을 것이다.
사도신경의 기원은 사도들의 설교와 가르침으로 사도의 시대에 있었다. 신앙의 규범이란 용어는 최초의 형식에서 사도의 신경을 언급했다. 그 신경은 두 가지 형태로 발전되었는데 옛로마형식으로 알려진 짧은 것과 일반적으로 인정된 형식으로 알려진 보다 긴 신경이다. 공인된 형식은 ‘나는 천지의 창조자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믿으며 그의 독생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으며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죽으셨으며 장사되셨다. 그는 지옥으로 내려가셨으며 제삼일에 죽은 자에서 살아나셨다. 그는 하늘에 오르셨고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셨다. 거기로부터 그는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나는 성신을 믿으며 거룩한 정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의 용서와 그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는다. 아멘
확대된 신조의 초기 형태는 주후 650년경 나타나지만 적어도 주후 460년에 존재했었다.
사도신경의 목적은 성경을 지원하기 위함이 아니라 성경을 확증하며 이단의 침투를 막기 위함이었다. 예를 들자면 전능하시며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은 말시온의 악한 창조자 하나님의 재림을 대적하는데 크게 힘이 되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죽으심에 대한 고백은 예수는 단지 환상이었다는 영지적이고 가현적 믿음을 배척하는데 힘이 되었다.
고대의 삼위일체론
구약의 일신론 신앙과 관련된 주된 문제는 삼위일체론이었다. 어떻게 교회가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믿음이 있지만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식할 수 있는가? 그 시초에 교회는 삼위일체의 분명한 개념이 없었다. 사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으로 다양하게 설명되었다. 말하자면 하나의 비인격적인 로고스가 성육신때 인격이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그리스도에 대한 묘사는 아버지와 영원하신 분이시지만 아버지에게 종속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님의 인격에 관해서는 그나마 이해가 부족하였다. 어떤 이들은 성령님을 아버지와 아들 모두에게 종속된다고 이해하였다.
군주신론(Monarchianism)
삼위일체에 관해서 교회가 직면했던 두 가지 문제는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연합을 주장하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단언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삼위일체에 관한 논쟁은 군주실론이었는데 두 가지 형태가 있었다. 보다 영향력이 적었던 형태는 동력적 군주신론(Dynamic Monarchianism)이었는데 이 이론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희생시키고 하나님의 연합(통일성)을 강조하였다. 이 교리는 주후 190년에 비잔티움의 데오도투스(Theodotus of Byzontium)에 의해 발전했으며 후에는 안디옥의 감독 사모스타의 바울(Paul of Samosata)에 의해 지속되었다. 그는 로고스는 아버지와 동질이었으나 신격에서는 구별된 인격이 아니었다고 가르쳤다. 그는 하나님과 동일시되실 수 있으나 마치도 인간의 이성이 인간안에 존재하듯이 아버지안에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단지 모든 사람안에 있는 하나의 비인격적인 능력이었다. 그러나 인간 예수안에서는 특별하게 활동하였다.
예수의 인성이 진보적임을 통찰함으로 그 인성은 다른 사람의 것과 다르게 이 신적 능력때문에 점차 그 인성이 신성화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인간 예수는 그처럼 신성이 되었으므로 그는 비록 그 말씀의 엄격한 의미에서 하나님으로 간주될 수는 없지만 신적 존귀의 가치가 있으시다.
이 교리적 견해는 하나님의 한 분 되심을 주장했으나 신격안에 세 인격의 구별을 상실하고 말았다. 두 번째 양태론의 형태는 양태론적 군주신론(Madalistic Momarchianism)으로 전자보다 인기가 있었다. 이 이론 역시 하나님의 연합을 지키려고 했으나 거기에 더해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했다. 이 이론은 부신수고설(patripassionism)이라고도 부르는데 아버지가 성육하시고 고난받으시고 죽으신 분이라고 믿었다. 양태론적 군주신론은 동방에서는 그 제안자 사벨리우스(Sabellins)를 따라 사벨리안주의로 불렀다. 그 사상은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 그 자신을 아버지로, 다른 때는 아들로 또 다른 때는 성령으로 다양하게 나타내셨다는 것이다. 비록 양태론적 군주신론이 세 인격을 말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그럼에도 세 다른 모양으로 자신을 다양하게 나타내신 신(하나님)의 한 본질이 있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아들로 나으셨고 아버지가 십자가에 죽으셨으며 역시 아버지가 죽은 자에서 살아나셨다. 사실 양태론적 군주신론의 시발자였을 푸락시아스(Praxceas)는 아버지가 그 자신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하였다.
아리안주의(Arianism)
삼위일체 논쟁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알렉산드리아의 장로 아리우스(Arius)이다. 양태적 군주신론을 반대하여 아리우스는 한 분만 하나님으로 불리며 영원하신데 사실 불가해하다고 가르쳤다. 그리스도가 영원하다고 가정하는 것은 두 분 하나님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아리우스는 아들은 시작이 있으시며 아들이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고 하였다.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본질(G.K. homousios)이 아니다. 아들은 아버지에 의해 창조되었다. 아리우스에 의하면 아버지에 의해 낳았다고 언급하였다. 아리우스는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는 모든 다른 창조보다 앞서서 창조되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후에 창조하신 매체적인 존재였다. 그리스도는 모든 피조물의 최고의 지위에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가 하나님은 아니시기 때문에 변화에 굴복한다.
아리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아다나시우스(Athanasius)에게 반박되었다. 아다나시우스는 신격안에 구별된 인격을 유지하면서 하나님의 단일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역시 아들의 영원한 존재를 제시했다. 아다나시우스는 정통교리의 탁월한 변호자의 한 사람으로 교회의 역사에서 두드러진 인물이다.
니케아회의
아리안 논쟁 때문에 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주후 325년에 니케아 총회에서 만났다. 300여명의 감독들이 참석했다. 그 총회는 아리안주의를 배척했으며 아리우스에게 황제의 인가로 아래와 같은 신조를 채택하였다.
저는 유일무이하시고 전능하시며 천지와 모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오며 유일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온 우주에 앞서 나셨고 참 신이시며 참 빛이시며 참 신이시며 하나님에게서 나셨고 창조함을 받지 않으셨고 성부 하나님과 같은 본질이시며 그로 말미암아 모든 만물이 창조되었고 모든 인간들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인간으로 나셨고 우리를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는 고난을 받으시고 장사함을 받으셨으나 제삼일째 되는 날 성서에 기록된 말씀에 따라 다시 살아나셨고 하늘에 올라가시사 성부의 오른편에 앉으셨으며 장차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려 오실 것입니다.
명칭 호모우시온(homouusion)은 그리스도가 아버지와 단지 같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아버지처럼 동일한 물질이시란 사실을 강조한다. 하나님에게서 나신 하나님과 참된 하나님에게서 나신 참된 하나님이란 말은 그 이상으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한다. 동시에 만든바 되지 않고 낳으셨고 내려 오셨다는 것은 그의 영원성을 강조한다.
니케아총회후에도 논쟁은 지속되었는데 논쟁의 중심에는 많은 사람들이 반대한 용어로 호모우시안(homoursian)이 있었다. 이 논쟁은 아리우스와 아다나시우스간에 지속되면서 각각 다른 시간에 그들은 유배되기도 하였다. 서방에서는 아나니우스의 견해를 선호했으나 동방에서 수정된 언급을 원했다. 주후 381년 황제 데오도시우스(Theodosius)는 콘스탄티노풀 총회를 소집했으며 호모우시안 구절을 재단언하면서 니케아신조를 수납하였다.
콘스탄티노풀 총회
니케아신조는 다만 ‘우리는 성신을 믿는다’를 확인하였다. 거기에는 성경의 인격에 관한 분명한 교리적인 공식적 언급이 없었다. 그 동안에 아리우스는 성령은 아들에게서 첫 번째로 창조되었다고 가르쳤다. 콘스탄티노풀의 감독 마케도니우스(Macedomius)는 성령은 창조물이며 천사들 같으며 아들에게 종속된다고 가르쳤다. 아다나시우스는 성령은 역시 아들과 아버지처럼 같은 본질(homoousian)임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 문제는 주후 381년 콘스탄티노풀 총회때까지는 확정되지 못했다. 그 총회는 아래와 같은 언급을 채택하였다. 우리는 성령, 주, 생명의 수여자, 아버지에게서 나오신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예배를 받으시며 영광을 받으시며 선지자들에 의해 말씀하신 성령을 믿는다. 그 언급은 성령님이 아들이나 아버지에게 종속되시지 않고 아버지와 아들처럼 같은 본질이심을 강조하였다.
고대 기독론
삼위일체 논쟁이 정리되자 기독론 논쟁이 발생하였다. 그 논쟁은 그리스도의 참 신성과 진정한 인성만 아니라 그의 양성의 관계도 포함되었다. 이 논쟁 역시 진통을 겪었다. 가현론자들은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했다. 에비온파(The Ebimites)는 그의 신성을 부인했다. 아리안파는 그의 신성을 축소시켰고 반면 아폴리나리우스파(Apollinarians)는 그의 인성을 축소시켰다. 네스토리파(Nestorians)는 양성의 연합을 부인했으며 유티키안파는 한 성품만을 강조하였다.
아폴리나리스주의(Apollinarianism)
아폴리나리안파(젊은)는 아리안주의를 반대했는데 극단의 반대로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이단적임이 증명되었다. 아폴리나리우스는 가르치기를 ‘신적인 선재로고스가 인간 예수의 영을 대치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는 인간의 몸과 인간의 혼(soul)을 소유했으나 인간의 영(spirit)은 아니었다’고 하였다. 그는 역시 그리스도는 몸을 가졌다. 그러나 그 몸은 거의 인간의 몸이 아닐 정도로 승화되었다. 아폴리나리스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축소시켜 인간보다 무엇이 적은 것이었다. 아폴리나리스는 인간의 영은 죄의 자리였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서 죄의 어떤 가능성을 옮기려고 하였다. 아폴리나리스는 그가 예수의 영의 인간성을 부인해야 한다고 느꼈다. 아폴리나리스의 견해의 문제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보유하는 동안 그는 그리스도의 참된 인성을 부인하였다. 아폴리나리스의 가르침에서 예수님은 인간보다 못했다. 그리스도의 인격의 통일성을 추구하면서 아폴리나리스는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했다. 아폴리나리스는 주후 381년 콘스탄티노풀총회에서 정죄되었다.
네스토리안주의(Nestorianism)
네스토리안주의는 칼게돈 교리에서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묘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비록 그 언급이 그의 인성에 대해서는 확인하지만 네스토리우스는 이 언급이 마리아의 숭배로 이끈다며 저항하였다. 그리스도에 관하여 한 인격안에 양성을 인식하는 대신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안에서 신성과 인성 사이에 참된 연합을 부인하였다. 그는 사실 두 본성과 두 인격을 주장했다.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가 그의 인성으로 고난을 당하시는 동안에 그의 신성은 고난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가르쳤다(이는 역시 다마스커스의 요한의 견해였다).
그 교훈은 참 성육신의 부인이었으며 그리스도를 신인으로 확언하는 대신에 두 인격, 하나님과 인간, 그들 사이에 연합이 없다는 견해였다. 네스토리우스는 마리아는 예수님의 인성의 원천뿐이었으며 그는 두 구별된 인격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네스토리우스는 아리안주의에 반대해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변호하고 마리아 숭배를 저항하는데 힘썼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연합을 부인하였다. 그는 주후 431년 에베소 총회에서 정죄되었다.
유티키안주의(Eutychianism)
네스토리우스에 대한 반동으로 유티케스(Eutyches, A.D. 380-456)는 그리스도는 한 성품만 가졌음을 언급하는 단성론 이단을 세웠다. 신성은 인성에 수정되고 조정되었으므로 그리스도는 실제로 신성이 아니라 동시에 인성은 신성에 동화됨으로서 수정되고 변했다. 그는 더 이상 참으로 인간이 아니었다고 하였다.
유리키안 교훈의 결과는 그리스도는 인간도 신도도 아니었다. 유티키안들은 새로운 제삼의 성품을 창조하였다. 그들의 교훈에서 그리스도는 한 성품만 있으며 그것은 인간도 신도 아니었다.
이 견해는 주후 451년 칼케돈총회에서 정죄되었으나 애굽의 곱틱교회에서 지속하였다.
이 견해의 변화는 후에 그리스도는 한 의지만 지니셨음을 암시하는 새로운 명칭, 일의론적 견해로 보급되었다.
이 교훈은 주후 681년 콘스탄티노풀에서 정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