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이단에 대한 교회의 대응

  이단이 개인과 교회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개인의 영육간의 피폐, 가정 파괴, 가산 탕진, 사회적 혼란, 복음의 문을 막는 것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예방과 대책에 힘써야 한다.

  첫째, 이단을 경계해야 한다.
  말세란 말은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긴 기간을 지칭한다. 따라서 초대교회도 오늘도 말세이며, 예수님의 재림을 염두에 두고 생각한다면 지금은 말세의 지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탄은 그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있으며 할 수만 있다면 택하신 자라도 넘어뜨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그 증거로 전도나 선교를 법으로 불가능하게 하고 기독교인이 되는 것을 처벌하는 이슬람교의 확산과 일부 공산주의 국가들 그리고 종교 다원주의 사상과 뉴에이지 운동의 범람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직접적인 증거로는 이단과 사이비의 발생과 그 팽창을 들 수 있다. 요한계시록은 이에 대해 사탄과 바다에서 나온 짐승(정치적 세력), 그리고 땅에서 나오는 짐승(거짓 선지자)을 적그리스도의 삼두체제로 소개하고 있다(계 13:2-18). 오늘날 교회의 마이너스 성장과 이단 종파의 성장, 종교 다원주의 사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교회가 이단이나 사이비 또는 비복음적인 이교적 신앙을 경계할 때임을 깨닫게 해준다. 특별히 교회가 이단이나 사이비 종파에 대한 경계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저들의 목적이 거짓 복음으로 영혼을 망하게 함은 물론이고 신자들을 바른 복음에서 떠나 배교하게 만드는 사탄의 책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는 이단을 경계하는 설교뿐만 아니라 건전한 이단 연구자들을 초청해서 이단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함으로써 교인들에게 이단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해야 할 것이다. 이단이나 사이비 신앙에 대해서는 예방만큼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이단과 사이비 종파를 공개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목회자들이 이단이나 사이비에 대해 관심이 적고 신자들은 이단과 사이비에 대한 분별력이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목회자는 이단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교인들에게 이단의 실상을 소상히 밝혀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단적으로 이단대책위원회를 두고 이단이나 사이비 신앙 그리고
타종교나 뉴에이지 운동 등에 관한 정보를 교단이 발행하는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함은 물론, 노회나 목사 장로 기도회 혹은 세미나 등을 통해서 교회 지도자들이 먼저 알고 교인들에게 가르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요즈음은 웬만한 교회마다 도서부를 두고 매달 새로 나오는 신간 경건 서적들을 구입해서 교인들에게 대여하고 있다. 목회자는 신간 구입 도서 중에 이단이나 사이비 그리고 다른 종교에 관한 사상을 성경적으로 다룬 책들을 구비하여 교인들에게 읽게 함으로써 이단이 정통 기독교와 무엇이 다르고 문제인지를 깨닫고 경계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또 가능하다면 이단 종파를 연구하는 전문 교수나 연구가 그리고 이단 종파에 빠졌다가 나온 간증자들을 초청해서 세미나를 개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셋째, 기독교 법조인과의 협력 사역이 강화되어야 한다.
  한국의 경우 이단이나 사이비에 대한 비판이 종종 그 당사자들에 의해 명예훼손이나 허위나 사실 유포 등으로 법정에 고소되는 사례들이 적지 않았다. 이런 사례들은 이단과 사이비의 정체를 밝히고 교회와 사회에 알림으로써 경각심을 지니고 대응케 하는 데 적지않은 장애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최병규는 기독교 법조인은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일할 수 있어야 하며 순수한 복음 전파와 변증을 위하여 서로 연합하고 정보를 교환하여 조언해 준다면 교회는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서 다른 종교나 종교 집단을 비판할 권리는 최대한 보장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교단의 교리 보호와 그 산하 지도자들 및 신자들의 신앙 보호를 위하여 주의를 촉구하는 취지에서 공표한 것일 경우 위법성이 없다는 판시와 여러 판례들이 나와 있음을 소개해 주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 법조인과의 협력은 이단의 정체를 밝히고 교인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가지고 대처케 하는 데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넷째, 이단에 앞서 더 열심히 전도해야 한다.
  이단 종파의 성장과 교회의 마이너스 성장은 그 원인이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본서의 “왜 이단 종파는 성장하는가” 라는 부분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단 종파의 성장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중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전도와 선교에 대한 열정을 꼽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경우 통일교나 신천지, 미국의 경우 몰몬교나 여호와의 증인들은 기성 교회가 실패하고 있는 지속적인 전도와 자비량 선교를 성공적으로 잘 수행하고 있다. 그들은 교회보다 먼저 불신자에게 다가가서 배우고 숙지한 전도 방법으로 사랑과 인내로 사람들을 설득하여 자파로 끌어들인다. 또 교회에 침투해서 분열을 책동하는가 하면, 복음의 진리에 대한 확신이 없는 신자나 새 신자를 상대로 거짓 복음을 참된 것인 양 믿게 함으로써 그 영혼을 망하게 한다.  
이런 거짓 복음을 이기는 길은 저들보다 먼저 참 복음을 열심히 지속적으로 전함으로써 이단보다 영혼 구원에서 앞서는 길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이단들이 어떻게 전도하는지, 그들의 비복음적인 내용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깨닫게 할 뿐 아니라 전도의 방법을 가르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전도의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공해 주어야 한다.

  다섯째, 교회는 오직 성경이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규범임을 확인케 함은 물론이고 기독교의 기본 진리(교리)를 모든 신자에게 가르쳐야 한다.
오늘날 우리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종교의 경전들이 출판되어 누구나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시대보다도 종교와 신앙에 대한 관용의 사상이 팽배하다. 또 이성보다 감성을 중시하는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교리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은 당연하다. 더 나아가 오늘날 교회들은 그 존립의 목적을 수적인 성장에 두고 있기 때문에 교단의 신학이나 신앙의 정체성에는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게다가 불신자의 전도가 힘들어지면서 교인들의 수평 이동이 심화되고 있다.  
이렇게 교회가 교파나 신앙의 색깔에 상관없이 모이다 보니 교단 특유의 신학이나 교리를 가르칠 수 없게 되었고, 설교나 가르침이 모두 교리와는 먼 경건생활에 국한되었다. 성장을 위해 다양한 신앙을 포용하다 보니 이단이나 교리적으로 성경에서 빗나간 신앙에 대해서 관용하게 되고 무엇이 다르고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분별력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이단과 사이비에 대해 무방비 상태가 되고 만 것이다.
  교회는 한 사람의 불신자 구원이 얼마나 힘든가를 깨달아야 하며, 그 천하보다 더 귀한 구원받은 영혼이 이단과 사이비에 희생되는 일이 얼마나 큰 손실이요 잘못인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교회는 성경이 가르치는 기본 진리의 교육을 모든 신자들에게 반드시 가르침으로써 성경의 진리로 이단이나 사이비가 무엇이 잘못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여섯째, 만인 제사장의 진리를 가르침과 훈련으로 체득케 해야 한다.
  많은 신자들이 수동적인 신앙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따라서 자립적인 신앙 생활 대신 의존적인 신앙 생활로 의존적인 신앙 생활로 만족한다. 이런 신앙의 자세는 쉽게 카리스마적이고 인기 있는 이단 종파의 지도자에게 매혹되기 쉽게 만든다. 그리고 그에게 예속된 신앙 생활로 안전과 축복을 기대하려고 할 것이다. 이단이나 사이비 교주들은 이런 신자에게 구세주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신자들을 유혹해서 자기에게 예속시킴으로써 그들의 삶을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이용한다. 그러므로 이단이나 사이비의 유혹을 예방하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스스로 서는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인간 제사장이나 중보자 없이 직접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훈련시켜야 한다. 그리고 훈련받은 신자들이 각자의 성령의 은사에 따라 봉사할 수 있도록 섬김의 자리를 줌으로써 주님의 몸 된 지체의 일원으로서 소속감과 자존감 그리고 보람을 느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일곱째, 교단별로나 전 교회적으로 이단 경계 주일을 지켜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대응책들을 모든 교회, 모든 성도들이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게 되려면 1년에 한 번 이단 경계 주일을 지켜야 한다. 교단마다 신학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교단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 전체, 더 나아가서 세계 선교에 이르기까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교인들은 신학교에 대한 관심이 크게 부족하다. 그러나 신학교 주일을 지킴으로써 관심과 기도와 헌금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단 경계주일의 취지와 설교 그리고 헌금을 통해서 교인들은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이단 퇴치 사역에 사용해도 이단에 대한 경계는 물론 그 퇴치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여덟째, 이단에 빠진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바른 신앙으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
  이단이나 사이비 신앙에 빠진 사람들을 바른 신앙으로 개종시키는 일은 불신자를 구원하는 만큼, 아니 그보다 더 힘들 수 있다. 그러나 이단에 빠진 이나 불신자나 모두 잃어버린 자가 아닌가? 따라서 우리는 그들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우리를 집요하게 개종시키려고 하지 않는가? 사랑을 가지고 그들을 만나고 복음이 무엇인지, 왜 복음만이 구원의 신앙인지를 성경을 통해서 깨닫게 해주고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왜 중요한지를 기도하면서 설득하고 전함으로 그 영혼들이 복음으로 돌아와 구원받게 해주어야 한다.  

  아홉째, 신학교의 교과 과목에 타종교와 이단에 관한 과목들을 두고 모든 학생들이 졸업하기 전에 이수하도록 해야 한다.
  이단 퇴치 사역의 성패는 개교회 목회자에게 달렸다. 만일 신학교에서 이수 과목으로 타종교와 이단 과목을 둔다면 적어도 세 가지 유익이 있을 것이다.
  ⑴ 목회자들 스스로가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건강한 목회를 할 수 있다.
  ⑵ 교인들에게 이단과 타종교의 신앙은 무엇이 다른지를 가르침으로써 이단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할 수 있다.  
  ⑶ 교단 안에서 이단의 발생이나 이단의 침투를 막을 수 있다.
  이밖에도 교단적으로 이단 경계 주일을 실시하는 데 앞정설 것이며 교단 간에 이단 퇴치 운동에도 더 잘 협조하게 되므로 교단 간의 화합은 물론, 정총적인 교단들이 복음의 신앙으로 연합하여 거짓 복음의 역사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회의 지도자들은 언행이 일치하는 삶의 본이 되어야 한다. 신앙 생활은 성경대로 하나님을 믿고 성경이 가르치는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얼마나 이 원리에 충실하는지가 그 신아의 성숙과 미숙의 판단 기중이 될 것이다. 모든 신자가 이 표준에 일치되는 삶을 살기 위해 힘써야 하며 적어도 불신자보다는 그 윤리적인 삶이 나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이 오늘 교회의 현실이다. 교회를 찾아 나온 새 신자나 심지어 그렇지 않은 직분자들까지도 지도자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표준에서 완전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 기대가 무너질 때 실망하게 되며, 교회를 떠나 차라리 그 정체가 다 드러나지 않고 경건하고 신비하게 보이는 이단이나 사이비파 지도자들에게 끌리게 된다. 따라서 교회의 지도자들, 특별히 장로(목사)나 집사들은 겸손히 사랑으로 섬겨야 하며, 목회서신에서 가르치고 있는 지도자의 자격 기준을 따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지도자는 소자(새 신자나 영적으로 미숙한 신자)를 성장시킬 수도 있고 실족시킬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하며, 신앙과 삶이 일치하지 않을 때 소자를 실족케 하는 죄를 범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마 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