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분파적인 이단

  분파적 이단은 신학적(교리적)인 이단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단이라는 말 자체가 어떤 지도자의 사상이나 믿음을 따라 정통 교회에서 분리해 나간 파당이나 분파를 가리킨다고 볼 때 이단으로 포함시킬 수 있으며, 그 신앙이나 관습은 물론 교리에도 잘못이 없지 않았다.

1. 몬타니즘 Montanism

몬타너스(Montanus)는 이교 제사장이었다가 기독교로 개종하여 주후 155년경에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은 후에 그는 자신이 성령에 지배되었다며 예언을 하기 시작했다.1) 그는 세례를 받을 때 방언을 했으며, 예언하기 시작했고, 요한복음에 약속된 성령께서 자기를 통해 말씀하신다고 선언했다. 몬타너스가 소아시아 프리지아(Phrygia)에서 활동했으므로 몬타너스주의자들을 종종 프리지아 사람들로 불렀다.
몬타너스 운동은 교회 초기에 유행했던 예언자들의 영적 부흥운동의 재현, 더 엄격한 삶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초청, 세계의 조기 종말, 그리스도의 재림 및 새예루살렘에 이상적 사회를 건설하려는 활기 찬 신앙을 대표한다.2)
따라서 몬타너스 운동의 특징은 당시 교회와 신앙 상태에 대한 반성이며 적절한 반응이기도 했다. 제2세기에 접어들면서 교회는 재림에 대한 열망이 식어짐은 물론이고 점차 감독 중심의 제도적 교회로 발전되어 가면서 도덕적 삶이 그 힘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 성령의 강림으로 시작된 교회는 성령의 충만한 능력으로 역사했던 사도들이 사라지면서 그 능력이 크게 감소되고 말았다. 따라서 몬타너스는 성령의 은사의 필요성과 도덕적 성결 생활의 회복을 위해 금욕 생활의 필요성을 주장하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몬타너스 운동은 하나의 교회와 신앙의 개혁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3)
그러나 몬타너스는 예언을 했던 두 여인 프리스길라(Prescilla)와 맥시밀라(Maximilla)가 합세하면서 성경 이상으로 예언을 중시하게 되었다. 몬타너스파는 몬타너스와 그의 추종자들의 예언의 내용은 새로운 것으로 새 시대는 성령이 그들에게 주신 새 계시로 시작되었다고 했다. 이 새로운 계시는 신약에 기록된 것과 모순되지 않으나, 새 계시는 그것의 윤리와 일부 종말론적인 상세함에서 신약을 능가한다는 것이었다.
몬타너스는 말시온처럼 교회가 유대교로 귀속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 강조점에서는 서로가 달랐다. 말시온이 바울을 그의 출발점으로 삼은 데 비해 몬타너스는 요한의 책들을 강조했다. 말시온은 교회가 율법과 은혜의 급진적 이분법을 가르치면서 유해한 율법주의로 나아간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것을 원 상태로 되돌리려고 했다. 말시온은 권위 있게 쓰여진 계시를 정확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면에서 근본주의자였다. 이에 비해 몬타누스는 성령으로부터 나온 직접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카리스마적인 사람이었다.4)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극단으로 치달았고, 그 결과 말시온은 성경의 일부분을 제외시켰고 몬타너스는 그것을 확대시키고 말았다.

1) 윤리관
몬타너스파의 윤리 규정은 매우 엄격했다. 결혼은 전적으로 악하지는 않았으나 큰 선으로도 보지 않았다. 따라서 결혼은 한 번만 할 수 있었고, 과부나 홀아비는 재혼이 허용되지 않았다.
또한 이들은 금식을 엄격하게 지켰으며 관용 없는 권징이 시행되었다. 몬타누스는 교회는 죄인을 용서할 수 있으나 세례 후에 범하는 큰 죄, 특히 간음죄는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이 간음처럼 치명적인 죄는 순교로만 용서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순교는 예외적으로 높이 평가되었으므로 박해를 피해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순교를 추구하라는 전통적인 견해에는 반대했다. 믿음을 부인하지 않는다면 순교는 피할 수 있었다.

2) 종말론
몬타너스와 그의 두 여선지자들은 그들과 함께 계시 시대가 끝이 났으며 곧 세계의 종말이 온다고 했다. 새예루살렘이 프리지아의 페프자(Pepuza in Phrygia)에 세워진다고 했다. 많은 몬타너스파 사람들이 마지막 날의 큰 사건을 증거하기 위하여 그곳으로 모였다. 저들은 종말론적 열망에서 이미 땅에 내려올 준비가 되어 있는 새예루살렘이 하늘 지평선 위에 드리워진 환상을 보았다고 했다.
몬타너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성령의 새 계시와 선한 교회 조직 사이에는 모순이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들은 계급적 구조를 채택했으며, 그렇게 세워진 교회는 급속하게 소아시아와 후에는 로마와 북아프리카로 확산되었다. 이런 분리된 교회의 조직은 자기들을 일반 교회와 구별하여 우월하게 보이려는 분파적인 독선주의의 결과이기도 했다. 몬타너스 자신이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었다. 자신은 천사도 아니고 대사도 아니며 바로 성부 하나님이라고 선언했다. 그와 함께 했던 프리스길라나 맥시밀라 역시 마지막 예언자로 그들 뒤에는 더 이상 예언이 없고 종말이 온다고 주장함으로써 성경보다 그들의 직접 계시를 더 높게 생각했다. 따라서 그들을 추종했던 자들은 몬타너스와 두 여선지자는 사도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보다 더 우월한 점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Hippolytus).5) 그리고 이런 교만 때문에 모든 교회를 모독했으며 기성 교회와 구별되는 독자적인 교회를 세우게 했다.
몬타너스파 교회가 북아프리카로 확산되면서 207년경 터툴리안을 추종자로 얻게 되었는데, 그는 당시에 가장 비범한 라틴 기독교 신학자였다. 그는 몬타너스파의 엄격한 생활 방식에 끌려 몬타너스파가 되었으며, 교회는 참으로 죄를 용서할 수 있으나 감독의 수로 구성된 교회가 아니라 성령의 교회만이 성령 충만한 사람을 통해 할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학자들은 몬타너스파는 확산되는 계급적인 감독 제도의 중앙집권화에 대한 반동이었으며, 원래의 사도적 교회 안에서 신자들의 독립성을 회복시키려는 운동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어디로의 회귀이기보다는 새로운 영적 분출로 보기도 한다.6)
몬타너스파는 엄격한 윤리 규정과 권징을 했던 교회 안의 개혁 운동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그 방편의 하나로 성령과 예언 사역을 강조하며 임박한 종말 사상으로 경건생활을 추구했다. 그러나 개혁 운동은 지나친 우월감과 관용 없는 독선으로 교회의 연합을 해친 분열의 분파 운동이 되고 말았다. 예언을 강조한 성령 운동은 두 가지 오류를 낳게 했다. 첫째는 성경 이외의 계시를 허용하는 것이고, 둘째는 시한부 종말론이 되면서 몬타너스와 그의 두 예언자들은 추종자들에게 재림주나 메시아처럼 숭배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몬타너스의 사상은 특별히 계시와 종말관에서 분파적인 이단이었다.

2. 노바시안파 The Novatian

노바시안(Novatian)은 로마의 학식 있는 장로였다(251). 노바시안파는 다음 세대의 도나투스파처럼 변절자들에 대한 교회의 관용과 용서에 대한 불만으로 생겨난 분파 운동이었다.
노바시안파는 회원이 되려는 사람들에게 엄격한 기준을 요구했다. 입교의 예식으로 여겨졌던 세례는 그 이전에 지은 모든 죄를 씻어 용서받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세례를 받은 후에는 결코 죄를 짓지 말아야 했으며, 세례 후에도 어떤 죄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생각했다.
터툴리안은 어떤 중한 죄들을 7가지 치명적인 죄에 포함시켰는데 우상 숭배, 신성모독, 살인, 간음, 음행, 위증 및 기만이었다. 터툴리안은 세례 후에 이런 죄 중의 하나를 범하게 되면 단 한 번밖에 용서받을 수 없다고 했다.7)
그러나 교회는 점차 배교와 성적인 죄를 범했을지라도 진심으로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죽음이나 투옥과 고문 같은 핍박을 견딜 수 없어 배교한 자들은 회개하고 교회원으로 허락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제3세기 중엽 데시우스(Decius) 황제의 핍박 때 수천 명의 사람들이 배교했으며, 제4세기에 디오클레시안(Diocletian) 박해 때도 마찬가지였다. 251년 봄에 새로운 감독 임명의 기회가 왔을 때 노바시안은 그의 엄격한 권징 정책 때문에 감독 후보에서 배제되고 배교자는 참회 후에 회복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편 관대한 장로 고넬리우스가 대신 선출되었다. 이에 노바시안과 그의 동조자들은 노바시안을 감독으로 세우고 분리된 공동체를 세웠다.8) 노바시안은 그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정통 교회의 연합을 깨뜨린 분열의 죄를 지고 말았다.
따라서 노바시안파나 도나투스파는 교리적인 의미에서 이단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노바시안은 240년과 250년 사이에 쓴 「삼위일체에 관하여」(On the Trinity)에서 “아들은 항상 아버지 안에 계셨으며 그 밖에서 아버지는 항상 아버지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양태론자들이 만든 이신론(deism)을 피하기 위해 아들은 시작이 있다는 견해를 받아들였으며, “어떤 의미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선행하신다. 아버지만이 영원하시며 낳지 않으신 데 비해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파생되었다”고 했다. 따라서 노바시안은 아버지와 아들을 동등하신 하나님이 아니며 아들과 성령도 아버지에게 종속된다고 했다.9) 노바시안은 양태론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신론으로 책임을 피하기 위해 지나치게 주의했으며, 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아들은 시작이 있으며 아버지는 아들을 선행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로 아버지에게 아들은 종속된다는 종속론에 빠지고 말았다.

요약과 평가

초대교회의 이단은 크게 보면 유대주의적 이단과 물질과 영을 날카롭게 구분하는 이원론적 이단 그리고 교리적 논쟁으로 빚어진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적인 오류였다. 유대주의적 이단은 점차 그 세력을 상실했으나 철학적 이원론의 이단이었던 영지주의는 지속되어 마니교와 중세의 이단에서 재생되었으며 근세의 신비주의적인 이단이나 사이비 분파에 여전히 살아 있다. 이런 면에서 이단은 사탄의 역사이며 요한계시록에서 나오는 땅에서 나온 짐승(거짓 선지자)의 역사이므로 주님이 오실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이런 이단들은 교리가 정립되지 못했다. 이들은 초대교회에 적지 않은 해를 끼쳤으나 긍정적으로는 교회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경각심을 주었고, 성경의 정경과 성경적인 바른 신앙과 교리의 확립에 동기를 제공해 주었다.
신학적 교리 논쟁에서 발생한 초대교회의 이단이나 이단적 사상은 다분히 그 성격이 다른 이단들, 특별히 근세 교회사 이래 생긴 이단들과는 크게 차이가 있었다. 이들 교부들이나 사상가들은 어느 누구도 거짓된 교훈을 만들어 자기 세력을 구축하려는 의도가 없었다. 거기에는 교회를 혼란시키거나 신자들을 유혹하기 위한 호색이나 탐심(벧후 2:1-3)도 없었다. 또 그들은 사신 주를 부인하거나 은밀하게 영혼을 멸망케 할 이단을 교회 안으로 들여온 자들이 아니었다. 모두가 교회를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했다. 다만 성경의 진리를 어떻게 공식화해서 교인들이 잘 깨달아 알고 신앙과 생활에 적용할 수 있을까에 목적이 있었다. 저들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어떻게 조화시키고 설명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고, 거기서 이견들이 생겨나 토론과 논쟁을 했으나 그 목적은 어디까지나 성경에 충실하며 성경의 가르침을 그대로 믿고 지키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삼위일체나 그리스도의 양성 같은 문제의 논쟁은 사람의 이성으로 설명하고 이해해야 할 진리가 아님을 깨우쳐 주었으며, 성경대로 믿어야 할 초이성적인 진리임을 밝혀 주었다. 마침내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벗어난 잘못된 견해나 주장들은 교회의 전체 회의를 통해 정죄되고 보다 성경적이면서도 많은 지도자들이 동의하는 교리가 작성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다. 결국 기독교의 역사적인 정통 교리들이 작성되었는데, 그것은 이성의 논리나 창작이 아니라 모두가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의 진술이었다. 따라서 교회 회의를 통해서 작성된 역사적인 기독교의 교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고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이기에 매우 중요하며, 후대 교회 안팎에서 발생한 이단들의 진위를 가리는 데 성경과 함께 중요한 표준이 될 수 있었다.


<주>
1) ‘성령께 지배되었다’는 말은 그가 ‘보혜사’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주어진 말씀’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후에 몬타너스파는 몬타너스와 성령을 동일시했다. Justo L. Conzalez,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Vol. 1(Nashville: Albingdon, 1979), 144.
2) 케니스 래토레트, 기독교사(상), 윤두혁 역(서울: 생명의말씀사, 1993), 217.
3) Karl Heussi, Kompendium der Kircheng Schichte, in 해롤드 브라운, 교회사 안에 나타난 이단과 정통, 라은성 역(서울: 그리심, 2001), 122.
4) Ibid.
5) 김명혁, 초대교회의 형성(서울: 성광문화사, 1995), 121.
6) James North, A History of the Church(Joplin: College Press, 1997), 92.
7) 케니스 래토레트, 기독교사(상), 231.
8) Ivor J. Davidson, The Birth of the Church(Grand Rapids: Baker, 2004), 329.
9) Otto Heick,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Vol 1, 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