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구원관 1) 죄란 무엇인가? 구원은 죄에서의 구원이며, 이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도 동의하는 진리이므로 죄에 대한 로마 가톨릭의 죄관부터 살피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도 성경대로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범죄했다고 한다. 로마 교회에서는 원죄의 결과 에덴에서의 추방 외에 인간에게 그 결과의 형벌로 ⑴ 불멸을 상실하고 ⑵ 무고통을 상실하며 ⑶ 성화의 은혜를 상실했다고 한다. 그들은 원죄가 하나님과의 관계만 해친 것이 아니고 박테리아나 무서운 바이러스가 우리 몸을 해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인간 본성에 깊은 상처를 주었다고 한다. 이런 원죄의 견해는 신학적으로 원죄를 부인한 펠라기우스주의와는 다르지만 전적 부패는 아니다. 따라서 반(Semi) 펠라기우스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트렌트 회의에서는 원죄의 결과에 대해 ⑴ 지성의 어두워짐 ⑵ 의지의 연약성 그리고 ⑶ 저급한 욕망의 혼란을 들었다. 로마 교회는 죄를 원죄와 자범죄로만 구분하지 않는다. 자범죄는 이성의 나이 7세부터 의도적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에 반대하는 의지적 행위다. 이 자범죄는 치명적인 큰 죄와 치명적이지 않은 작은 죄로 구분한다. 치명적인 죄는 중대한 일,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숙고한 뒤에 동의한 죄로 행동 자체가 중대한 것이다. 거기에는 값진 물건이나 많은 돈을 훔친 것, 간통이나 간음, 위증(거짓 맹세) 등이 포함된다.63) 그러면 죄의 용서와 구원은 어떻게 가능한가? 죄인은 어떻게 의로워지는가? 2) 칭의 가톨릭과 개신교는 모두 십자가 상 그리스도의 죽음의 공로가 죄인이 의롭다 함을 얻는 데 필수적이라는 데 동의한다. 십자가의 공로로 죄를 용서받는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우리가 죄의 용서를 받도록 우리 대신 그리스도를 심판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유익이 어떻게 개인적으로 적용되는지에 관해서는 서로 견해가 다르다. (1) 칭의의 원천 개신교의 입장은 하나님께서 한 죄인이 예수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 때문에 완전히 그의 죄가 용서되었다고 선언하실 때, 그 사람은 실제로 법적으로 자유케 되었으며 이제는 영구히 의로워졌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선언되었다는 뜻이라고 본다. 로마서 4장 3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신분이 그의 앞에서 완전하게 의로워졌다고 선언하셨다. 따라서 루터와 개신교의 종교개혁자들은 아브라함의 칭의의 근거를 하나님의 선언에서 발견했다. 즉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믿는 순간 그를 완전하게 의롭다고 하셨으며, 이는 법정에서 판사가 죄인을 향해서 실제로 한 평결이요 법적인 선언과도 같은 것이었다.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법정적 선언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결과이며, 이제 믿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신분이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칭의의 선언은 죄인 밖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칭의의 형식을 법적 허구로 본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자신 안에서나 그 자신이 의롭지 않은 자를 의롭다고 부르셨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죄인이 그리스도를 믿을 때 법적으로 그의 앞에서 의롭게 되었음을 선언하신다. 따라서 그 용서받은 죄인은 아직도 죄인이다(롬 7:19, 23, 25; 약 3:2; 요일 1:8). 그러나 가톨릭 교회에서는 하나님은 단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에 협력하여 일한 후에, 그리고 실제로 그 안에서와 그 자신이 의로워졌을 때 의롭다고 선언하신다고 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죄인에 대한 칭의의 선언은 실제로 칭의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사람이 의롭다고 선언될 수 있는가? 성경에 의하면 사람이 믿을 때 그는 그리스도와 연합한다. 따라서 빌립보서 3장 9절은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의가 그의 것이 되었다. 즉 죄인의 어카운트(account)에 그것(그리스도의 의)이 더해졌다(고후 5:21). 이는 죄인이 하나님의 예비하신 의로 옷을 입은 것과도 같다(사 61:10). 그리스도의 의와 공로가 그를 덮었으며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의롭다고 선언하실 때는 그 사람의 성품이나 선행을 보셨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선언과 관계가 없다. 무한한 그리스도의 공로가 믿는 자에게 은혜로 주어짐으로 그의 의를 구성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칭의의 선언으로 자신과 예수를 믿는 자도 의롭다 하셨다(롬 3:26). 이에 대해 로마 가톨릭 교회는 하나님의 칭의가 선언된 자 안에서 실제적으로 의가 발견될 수 있어야 참으로 의로워졌다고 한다. 성경과 다르게 하나님은 참으로 의로워진 자만을 의롭다고 선언하신다는 것이다. (2) 전가된 의인가? 고취된(불어넣은) 의인가? 성경의 교훈에 따르면 그리스도와 그의 공로는 신자의 어카운트(구좌)에 더해졌다. 그 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그 자신의 아무것도 없음을 주장하지 않는다. 차라리 그는 그리스도의 모든 것, 즉 그리스도의 의로운 삶과 대속의 죽음에 호소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죄인에게 전가된 그리스도만의 공로에 근거한다. 하나님이 그를 의롭다고 선언하신 것 - 그것은 공적으로 그의 죄가 용서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 자신의 아들의 도덕적인 의를 신자에게 전가하거나 전환시켜 주신 것이다. 가톨릭의 경우는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의지를 도와서 믿음을 갖게 한다고 본다. 그러니까 이것은 죄인 안으로 고취된 것이다. 이 은혜나 능력이 주어졌을 때 신자는 그것과 협력하게 된다. 가톨릭의 가르침은 죄인이 노력으로 그 자신 안에 의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칭의는 하나님과 죄인이 협력하여 이루는 셈이다. 그러므로 가톨릭에서는 개인의 선행이 구원을 위해 필요하며 칭의가 발생하기 전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의는 율법을 떠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모든 믿는 자에게 임한다고 말씀한다(롬 3:21-22). 인간의 노력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자비에 따른 것이다(딛 3:5).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는 칭의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근거해서만 얻는다.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본질이다. (3) 칭의는 잃어버릴 수 있는가? 그리스도가 이미 성공적으로 완전한 삶을 사셨고 인간의 죄 전부를 위한 값을 지불하려고 죽으셨으므로 아무것도 이 속죄의 사건을 바꿀 수는 없다. 그리스도는 칭의의 불변하는 기초다. 그러므로 한 번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은 온전히 그리고 영원하게 안전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므로 사람의 선행 여부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에서는 범죄할 경우 칭의를 잃어버릴 수 있다고 본다. 사람의 죄가 하나님이 주입하시는 의를 파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로마 교회에 의하면 인간은 칭의를 잃어버릴 수 있으며, 이는 그가 어느 날 천국에 있게 되기까지는 결코 확신할 수 없다. 이상 위에서 (성경에 근거한)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의 칭의론을 비교하여 살펴보았다. 그것을 대조하면 아래와 같다.
제임스 G. 맥카티, 가톨릭에도 복음이 잇ㅅ는가. pp.178-180에서 요약정리함.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구원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한 은혜의 즉각적인 구원이 아니다. 믿음은 구원의 시작일 뿐이고 부활 때까지 특별히 성례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한 생활과 선행을 이루어 완전에 도달해야 한다. 3) 성례란 무엇인가? 로마교회의 성례 체제는 주로 로마 가톨릭 교회의 반동 종교개혁(Counter Reformation)때 있었던 트렌트회의의 산물이다. ⑴ 미사란 무엇인가? ① 십자가의 연속이다. 가톨릭 교회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세세에 영속시키기 위해 미사를 제정했다고 한다. 따라서 각각의 미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목적으로 희생 제사를 재현(현재화)한다. ㉠ 신부인 교회에 보이는 제사를 남겨 주고자 하심. ㉡ 그 제사에서 십자가 위에서 단번에 이루어진 피의 제사가 재현될 것임 ㉢ 그 구원적 효과는 우리가 날마다 저지르는 죄의 용서에 적용될 것임. ② 각 미사는 십자가 희생제사의 기념이며 구원의 능력이 적용된다. 가톨릭 교회의 신앙에 미사는 십자가같이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는 희생 제사이거나 화목의 희생 제사다. 그것은 이 미사를 통해서 그가 회개의 은총을 선물로 주시며 아무리 큰 죄라도 용서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에서 성례(미사)는 하나님 편에서는 그분의 진노를 진정시키며 사람 편에서는 죄인을 죄의 형벌로부터 자유로워지게 하는 속죄다. 더 나아가서 미사의 희생 제사는 살아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들에게도 은총을 준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지만 아직 완전히 정화되지 못한 자들을 위해서도 사도들의 전통에 따라 아주 올바르게 드려져야 한다. Ibid., 따라서 성찬례는 산 이와 죽은 이들의 죄에 대한 보상으로도 드리는 것이며, 하나님께 영적이거나 현세적인 은혜를 얻기 위해서도 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의 이런 가르침은 성경과 다르다. 성경은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다고 했으며(히 10:18), 성찬에서 그리스도를 기념하라고 하셨지 희생 제사를 드리라고 하시지 않았다(눅 22:19). 더 나아가서 성경은 구속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역은 완전히 “다 이루셨다”고 가르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다 이루었다(요 19:30)고 하셨다. 거기서 헬라어 동사는 현재 완료형이다. 현재 완료형은 하나의 과정을 암시하지만 그 과정에 최정점에 이르러 다 이루어진 상태에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 십자가에서 완전히 이루어져 완료되었으며, 이제는 완전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말이다(요 19:30).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므로(엡 1:7) 성령께서....우리 죄와 율법을 하나님이 다시 기억하지 아니한다고 증거하신다(히 10:15, 17).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은 단번에 드린 희생이지 지속될 것이 아니다(히 7:27; 9:12, 26, 28; 10:10; 롬 6:10; 벧전 3:18). 로마 가톨릭의 성례는 미사(성체성사)이며 은혜의 운반자다.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가 한 번 육체적으로 지상에서 하신 바를 그의 신비한 몸으로 오늘도 하신다. 성례는 은혜를 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세운 외적인 몸이다. 은혜의 특성과 양은 사람의 영의 성향에 의존한다. 성례는 역시 그리스도의 구속하시는 행위의 확장으로 본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은 단번에 이루어진 완전한 것이 아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7성례를 주장한다. ① 세례(Baptism) 세례는 원죄와 자범죄로부터 사람을 자유롭게 하여 그를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의 회원이 되게 한다. 세례는 원죄를 제거하고 영혼 안에 성화케 하는 은총을 주입한다. 따라서 세례에 대한 로마 가톨릭의 가르침의 핵심은 세례는 구원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는 구원을 산출해 낸다. 교회와 세례자를 연합시킨다. ② 견진성사(Confirmation) 세례의 성사를 완성하고 확인하는 성사다. 만일 세례가 새롭고 초자연적인 삶으로 다시 낳는 성례라면, 견진성사는 성숙한 성인이 되어 받는 성사다. 세례는 신부가 주관하나, 견진성사는 감독이 성례자의 머리에 손을 얹고 집례한다. 이 행위로 성례를 받는 자는 성령을 받는다고 하며, 그의 신앙고백에 따라 살도록 그를 강하게 하며 그가 믿는 바를 말할 수 있게 한다고 한다. 이 경우에 감독의 권세는 오순절에 사마리아(행 8:14-17)에서 성령을 전달한 사도들과 동등하다고 한다. ③ 성체성사(The Eucharist) 거룩한 교제나 유카리스트(성체) 역시 미사로 부른다. 이 의식은 그리스도의 지속되는 희생으로 간주된다. 미사는 역시 신부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희생에 관하여 “이것은 나의 몸이요, 내 피의 잔이다”라는 말을 하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떡과 포도주의 사건(외모, 맛, 냄새 그리고 느낌) 아래 임재하신다. 따라서 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체설이라고 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요한복음 6장 53-58절에 근거해서 성체성사에 참예하는 자는 ㉠ 적은 죄를 용서받고 ㉡ 시험에 대적해서 강하게 되며(악한 욕망의 세력을 소멸함) ㉢ 영원한 영광과 영광스러운 부활이 약속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이 성체성사는 성례 중에서 가장 중요하며 그리스도께서 2000년 전 갈보리에서 드리신 것과 같은 희생(제사)이다. ④ 고해성사(Confesstion; Penance) 로마 가톨릭 교회는 그리스도는 죄의 고백이나 고해 때 신부를 통해서 죄를 용서하신다고 가르친다. 요한복음 20장 23절에서 예수님이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고 하신 말씀을 통해 신부들은 죄를 사하거나 유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올바른 죄의 고백에는 양심의 조사(시험), 죄에 대한 슬픔, 장래 죄를 피하려는 확고한 의도, 죄들의 고백 그리고 신부에 의해 결정된 고해를 이루려는 자원함이 요구된다. 이 성사의 목적은 세례 받은 후 지은 치명적인 죽을 죄를 용서받기 위함이다. ⑤ 성품성사(Holy Orders) 이 성사는 주교로서 주교직에, 신부로서 사제직에, 또는 집사로서 부제직에 종사하게 되는 사람들에게 행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대한 직분의 안수는 영적 능력과 다른 사람들을 성화시키는 은혜를 부여하는 것이다. 신부는 반드시 감독의 안수를 받다야 한다. 감독은 사도들의 후계자이며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영속하는 신부를 안수하는 권위가 있다. 역시 신부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죄를 사하는 권위가 있으며 영구하게 멜기세덱의 서차를 따라 제사장으로 임명되었다. ⑥ 혼배성사(Matrimony) 이 성사는 결혼성사로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에 연합의 증표다. 1439년 이후 플로렌스 회의(The Council of Florence)에서는 이 혼배성사에 삼중의 유익이 있다고 했다. ㉠ 자녀의 출산과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그들을 교육하는 것이다. ㉡ 배우자가 서로에게 성실하도록 의무를 갖게 한다. ㉢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이 분리할 수 없는 연합이듯이 결혼은 불가분리다. 역시 낙태나 피임을 배격한다. 바티칸Ⅱ에서는 결혼에 사랑의 증인이 필요하며 결혼은 자녀의 출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⑦ 병자성사(Anointing of the Sick; Extreme Unction) 이 성사는 원래 종부성사(Extreme Unction)로 알려져 왔다(1512). 이 성사의 목적은 매우 위중하게 아프거나 죽음에 직면한 사람에게 영적이고 육체적인 힘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1499-1532). 이 성사는 죽음에 가까워진 사람의 영혼을 천국에 갈수 있도록 준비시킨다. 또 어떤 상황에서는 육체적인 치유를 약속한다(1512). 병자에게 기름을 바르는 이 성사는 두 가지 다른 성사와 병행한다. 고해성사와 성체성사가 그것이다(1524-1525). 이 세 가지 성사를 합한 의식을 마지막 의식이라고 부른다. 가톨릭에도 복음이 있는가? 이 의식은 고해성사의 보충이며 완성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7성례를 구원론에서 다루는 것은 7성례가 구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례는 구원을 위한 과정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은혜구원’이 아닌 ‘행위구원’을 믿을 때 즉각적인 구원 대신에 점진적인 구원을 주장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이렇게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오직 성경의 권위 대신에 외경을 성경에 더하고, 오직 하나님의 권위 대신에 교황과 사제단 교회 그리고 전통의 권위를 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 대신 마리아를 비롯한 교황(감독들)과 신부를 중재자로 보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 중재자의 가르침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를 차단시키고 있다. 그리스도와 신자 그 사이에 끼어든 것이 바로 로마 가톨릭 교회이며, 그 결과는 교황 전통 사제 그리고 마리아와 성인숭배다.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의 구원관의 차이는 크게 보면 아래와 같다.
4) 로마 가톨릭 교회에 대한 성경적인 도전 ⑴ 오직 성경의 권위 로마 가톨릭 교회가 십자가의 희생과 성례를 강조하는 것은 복음이 십자가의 복음이란 점에서 높이 평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자가만은 온전한 복음이 아니다. 그것이 온전한 복음이 되는 것은 고난의 죽음으로 끝나서가 아니라 부활의 기쁨과 영광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로마 가톨릭 교회는 절반의 복음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로마 가톨릭은 십자가 고난과 성례를 강조하지만 십자가로 죄가 완전히 사해졌기 때문에 더 이상의 희생 제사가 필요 없게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미사(그리스도의 희생)의 반복이 그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온전히 칭의되지 못하며 은혜와 협력하여 선을 행하는 인간의 노력과 공로를 더해야만 한다. 이런 경향은 구원의 확신으로 인한 기쁨과 감격을 상실하게 만든다. 실제로 론(Ron)과 에드(Ed)가 함께 필립핀에서 사역할 때 성 금요일 마닐라의 중심가에서 있었던 일로, 거리에는 그들의 찔림 받은 예수와 그 안에 나무로 만든 검은 예수를 넣은 유리관을 운반하는 로마 가톨릭 신자들로 가득했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십자가에 자신들을 못 박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알리고 있는 영광의 위대한 날, 부활 주일 아침에 거리는 침묵했다. 이것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은혜 구원 대신에 인간의 노력과 공로가 더 요구되는, 그래서 실제로 천국에 들어가기까지는 자신의 구원을 확신할 수 없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구원관은 결코 기쁨이 있을 수 없었다. 따라서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복음의 변질이요 은혜의 축소라고 할 수 있다. 만일 로마 가톨릭 교회가 개신 교회와 일치를 원한다면 성경적인 순수한 복음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성경과 교회(사제들의 교도권), 교황 그리고 전통의 복잡한 권위에서 오직 성경의 단순한 권위로 회복되어야 한다. 그것은 성경만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할 수 있기 때문이다(딤후 3:16-17). 성경만이 하나님이 호흡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신앙과 생활에 유일한 권위가 된다.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요 20:30-31). 따라서 성경을 떠난 구원의 가르침은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이며 진리가 아니다. 신약의 마지막 책의 경고는 왜 오직 성경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이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 ⑵ 오직 예수만의 믿음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구원관의 문제는 은혜를 주장하지만 겸해서 행위를 더하는데 있다. 구원을 위한 죄의 용서와 의로워지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는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고 하시는 것은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로 되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 완전히 의롭게 되지는 못했기 때문에 완전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로마 가톨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자신을 십자가에 희생하시므로 죄가 완전히 사해진 사실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고 했다(롬 5:1). 구원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으며(히 10:10),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히 10:12).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불법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시며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를 드릴 것이 없다(히 10:17-18). 로마 가톨릭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그 권위를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화목이 더 필요하고 완전히 의로워지기 위해서는 남은 죄에 대한 용서를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구원을 위해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은혜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미사의 성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희생이 반복되어야 하고 죄 용서를 위한 고백의 회개만 아니라 그 죄에 상당한 선행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로마 가톨릭 교회의 칭의와 구원에 대한 가르침때문에 그 신자들은 사죄와 구원에 관한 성경적인 어떤 확신도 가질 수 없다. 놀랍게도 10명의 가톨릭 신자 중에서 9명은 기독교의 절대 불변의 원리요 중심적이며 핵심적인 기본 교리를 알지 못했다. 12년 간 로마 가톨릭의 교리문답을 배운 가톨릭 고등학생 중에 90%가 그들이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며 모든 사람을 위해 보상의 감정을 가질 때 천국에 갈수 있다고 대답했다. 왜 그들이 구원받을 것으로 소망하느냐고 물으면 구주를 제외한 나머지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20년 간 멕시코에서 선교한 한 선교사는 “가톨릭 신자는 복음을 모른다. 실제로 가톨릭의 가르침들은 복음에 큰 장애물이 된다. 나는 20년 동안 구원받았음을 확신하는 한 사람의 헌신된 가톨릭 신자를 만나 보지 못했다. 대다수의 가톨릭 신자들은 분명하게 구원받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많은 가톨릭 신자들을 구원으로 인도했고, 그 때문에 지역 가톨릭 신자들은 나와 내 교회를 핍박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로마 가톨릭 교회가 개신교, 특별히 복음적인 교회들과 신앙의 일치를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성경적인 칭의관과 구원관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5) 로마 카톨릭에 대한 우리의 자세 존 거스트너(John H. Gerstner)는 가톨릭에 대한 개신교인들이 지녀야 할 자세를 아래와 같이 제시했다. ⑴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한 비판은 겸손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다. ⑵ 개신교 신자는 로마 가톨릭 신자와 결혼해서는 안 된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신부에 의한 결혼만이 정당하다. 그것은 개신교 신자가 가톨릭 배우자를 신앙으로 개종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같으며 자녀들을 로마 가톨릭으로 양육하도록 요구한다. ⑶ 로마 가톨릭에 대한 반대는 영적으로만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영적인 무기를 사용해야 한다. ⑷ 우리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 ⑸ 우리는 가능한 한 협력할 것은 해야 한다. 예배는 가능하지 않으나 도덕적인 사역은 연대해서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회보장운동 같은 것은 가능하며 해야 할 것이다. ⑹ 우리는 로마 가톨릭 친구들을 참된 교회로 나오도록 초대해야 한다. 요약과 평가 중세 교회의 이단은 주로 이원론적인 이단이었던 영지주의의 재생이었다. 파울리키안, 보고밀파, 카타리파, 아말릭파는 모두 이원론 철학의 경향이 강했다. 그밖에 로마 교회의 조직과 성직제에 대한 반발로 생긴 반 성직제 사상이나 성경을 신앙 생활의 유일한 규범과 판단 기준으로 보고 로마 카토릭의 신앙을 비판한 사상적 이단이 있었다. 그러나 반 성직 사상이나 로마 카톨릭의 신앙과 신학을 비판한 복음적인 사상들은 사실 이단이 아니었다. 다만 로마 가톨릭과 로마가 모두 하나의 국가, 하나의 신앙을 지향했으므로 로마 가톨릭과 다른 사상이나 신앙은 용납될 수 없었다. 영과 육을 선과 악으로 보는 이원론적 이단들은 중세 금욕주의 수도원 운동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중세 수도원의 신앙 생활의 경건은 물론 학문과 농사와 그 발전에 기여했다고 볼 때 이런 영향은 모두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을 것이다. 반 성직제의 사상이나 복음적 사상의 이단들은 종교개혁자들의 사상과 개혁에 자극과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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