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라" (벧후 3:11-12)
신자는 누구나 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대한다. 그것은 그 날이 바로 그의 구원의 완성과 보상의 날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신자들은 초대 교회 신자들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의 신앙을 점차 상실해 가고 있는 형편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신앙의 해이나 안락하고 편안한 환경 때문일지 모른다. 그런데 본문은 신자들의 행동이 하나님의 날을 단축시키고 속히 임하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씀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신자가 하나님의 날을 단축시킬 수 있는가? 만일 신자가 하나님의 날을 신속히 임하게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주권 사상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때와 시기에 대하여 우리와 우리의 행위로부터 어떤 정보가 없이는 어떤 결정도 하시지 않는가? 베드로후서 3장은 전체가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재림에 연관된 두 가지 단어를 쓰고 있는데 오심(4절)과 날이다(10절). 오심(피루시아)은 초기 기독교 작품에서 언제나 종말론적인 언급으로 그리스도가 주제였다. 일반적으로 주의 날로 많이 쓰였고 하나님의 날로는 드문데 여기서 하나님의 날로 쓰였다. 이것은 아마도 본문이 요한계시록 16:14에 의존한 것 같다. 외경에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 전능자의 큰 날 등으로 나오는데 베드로후서가 주(그리스도)의 날(10절)과 여기 하나님의 날(아버지)사이에 구분을 했는지는 불확실하다.1) 그러나 두 용어는 그 의미에서 다르지 않다. 이 하나님의 날은 불로 하늘이 파괴되고 모든 형질이 녹아지게 될 날이 될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되는지를 우리는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런 일은 창세후로 처음 겪게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런 일이 자연적인 현상이나 인간이 만든 핵무기 등 인위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란 사실이다. 하나님의 온전한 주권 의지의 직접적인 결과로 그렇게 될 것이다. 성경대로 하면 이런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옛 하늘과 땅을 옮기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위한 길을 예비하실 것이다(벧후 3:13; 계 21:1). 신자들은 이 날을 인해서 두려워 할 것이 없다. 다만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일시적임을 깨달아야 하며 더 이상 세상 것에 소망을 두고 이 세상의 물질이나 명예나 권세 등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신자들은 이 날을 바라보고 주시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이 재림의 날을 늘 기억하며 그 빛에서 경건하게 살아가야 한다. 그러면 이렇게 재림의 견지에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사모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간절히 사모한다는 말에서 사모한다는 말은 누가복음 2:16에서처럼 속히 혹은 빠르다는 의미로도 쓰였다. 그래서 거룩한 생활로 재림을 단축하라(벧후 2:12)는 의미도 된다. 따라서 신자가 주님의 날이 속히 임하게 하라는 말씀이다.2) 그러면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세 가지 해답이 가능하다고 본다.
1. 기도하라는 뜻일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당신의 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고 기도 하라 하셨다. 그리고 실제로 초대교회는 마라나타를 기도했는데(고전 16:22) 이 말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 고 요한계시록 22:20에서 번역되어 있다. 2. 이사야 60:22에 근거한 유대인의 강한 전통으로 거기서 그 백성의 죄는 메시아의 오심을 지연시키며 그 백성 의 회개는 그 날을 빠르게 한다 하였다. 따라서 신자들의 회개와 거룩한 생활이 그 날을 단축하게 한다고 할 수 있다. 경건한 삶은 그 날에 대한 기대와 그 날을 속히 임하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3) 3. 설교와 불신자에 대한 전도이다. 우리 사이와 재림 사이에 은혜 시대, 성경 시대, 복음 전도의 시대가 있다. 복 음 전도는 우리가 주님의 오심을 빠르게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다(막 13:10). 물론 여기에 기 도와(계 8:4) 신자의 행위(11절, 벧전 2:12) 그리고 회개와 순종(행 3:19-21)을 제외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궁극적 목적에 기여한다.4)
마지막으로 만일 우리가 주의 날을 단축할 수 있다면 그 날을 주권적으로 결정하신다는 하나님의 주권사상과 모순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재림에 대한 기대와 거룩한 삶으로 재림의 시간을 빠르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주권 의지이다. 그러므로 결코 그 두 사이에 모순이 있을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신자는 언제나 주님의 재림을 염두에 두고 그 빛에 따라서 살아가야 한다. 재림을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적극적으로 경건한 삶 즉 악에서 떠나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특별히 기도와 회개 그리고 전도에 힘을 써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는 성도의 진정한 소망을 이루어야 한다.
주 1. Richard J. Bauckham, Jude, 2 Peter, p. 325 2. A.T. Robertson, Word Pictures in the New Testament, Vol. VI. p.177 3. Peter H. Davids, More Hard Sayings of the New Testament, pp.188-189 4. Michael Green, 2 Peter and Jude, p.15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