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므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니라" (벧후 2:20)
예수를 믿기 전 우리의 상태는 하나님의 정죄와 심판밖에 기대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였다. 그러므로 신자가 된 후에 전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그래서 본문에 그리스도를 안 후에 세상의 더러움에 얽매인다는 말은 이해가 어렵다. 어떻게 사람이 개종하기 전보다도 더 나빠질 수 있는가? 그런 경우도 있는가? 그들이 다시 타락했더라도 아직 신자인가? 구원이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이런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는가? 이 문제들의 해답을 위해 제일 먼저 여기서 저희는 누구를 가리키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면 저희는 누구인가? 크게 보면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 거짓 선생들이다(19절). 2. 불안정한 사람들이다(18절). 3. 일반적으로는 둘을 다 가리키며 특별하게는 거짓 선생들이다.
위의 견해는 사실상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문맥에서는 거짓 선생들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그 이유로서 첫째, 19절이 말씀하는 거짓 선지자는 저희의 정상적 선행사로 볼 수 있다. 둘째, 20절에 접속사(gar)는 논리적으로 19절과 20절에 연결된다. 셋째, 19절에 저자는 20절에 지면과 동사로서 연결되었다. 넷째, 선생들이 전장의 주제이기 때문이다.1) 다음으로 이 거짓 선생들의 특성은 무엇인가? 그들은 한때 정통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과거의 죄가 씻음을 받았다(1:9; 2:22). 그들은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고 이 개인적인 지식이 저희를 세상의 부패에서 해방시켰으며 의의 길도 알게 하였다(2:21)). 그러므로 의로운 삶을 살도록 가르침만 받은 것이 아니라 세상과 그 욕망에서 그들을 자유하게 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였다. 그들이 이런 모든 것을 체험하였으며 모든 면에서 의롭고 정통적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연약한 자들을 더 큰 죄에 빠지게 하는 같은 죄를 행하고 있다(2:18-19). 그들은 자유를 주장하나 그 자유는 그들의 욕망에 따라서 살려는 자유다. 이런 욕망이 저들을 사로잡았으며 의의 길을 배척하였다. 그들은 개종되기 전에 행했던 죄에 돌아가고 말았다.2) 그들은 마침내 그들의 마지막 상태가 첫번 것보다 더 나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비슷한 예를 드신 일이 있다. 거기서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들렸던 자가 귀신이 나갔으나 마침내 다시 귀신이 들어왔을 때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못하게 되었다고 하셨다(마 12:43-45; 눅 11:24-26). 이와 유사한 이야기는 성경 밖의 이야기에서도 나오는데 거기서도 신자들이 부도덕으로 빠져 들어간 것을 묘사한다(Herm, Sim, 9:17:5, Mand, 5:7:12:5:4).3) 이렇게 보면 베드로 사도는 여기서 예수님의 배교에 대한 가르침을 제1세기 중반 로마에 있는 교회에 적용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는가? 그것은 그들이 지식을 추구하며 자유를 많이 말하나 실제로 그 실천에 대해서는 아는바가 없었다.4) 다시 말하면 그들은 순종하지 않았으며 그 경우 그들이 개종하기 전보다 받아야 할 심판이 더 중해지고 말았다. 그래서 그들의 운명은 히브리서 10:26-27의 말씀대로 되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물론 그들도 회개하면 용서가 가능하였다. 그러나 저들은 진리를 알면서도 순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만 아니라 연약한 신자들까지 꾀어 함께 배교하려 하였다. 마지막으로 이런 사람들을 신자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이런 자들도 천국에 가게 되는가? 교회 안에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다. 그래서 명목상 신자와 참으로 중생한 신자가 따로 있다는 것이 신약의 가르침이다(고후 13:5; 딤후 2:18-19; 요일 3:7-8; 2:19). 이런 배경에서 그들도 신자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도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참 교회, 천국의 일원인가라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참으로 주님으로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의의 길을 따르는 자요 세상의 부패에서 자유하게 되어 천국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사람의 의로운 삶이 그를 구원한다는 행위 구원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구원은 죄 많은 삶의 방식에서 회개하여 그리스도에게 돌아오는 것이요 그의 왕직 아래서 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구원이 이 세상에서 시작된 하나의 과정이라면 죄를 이기는 삶이 그 증거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여기서 베드로 사도는 허세 부리는 거짓 선생들과 그들의 위선적인 가르침에 연약한 신자들이 유혹받지 말도록 경고하고 있다. 성경을 배우고 진리를 깨달으나 순종하지 않으면 우리는 명목상의 신자로 머물게 될 뿐이요 이런 불순종이나 생활의 무변화는 마침내 더 큰 책임있는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주 1. Edwin A. Blum, 2 Peter(E.B.C. Vol. 12), p 282 2. Peter H. Davids, More Hard Sayings of the New Testament, pp.193-194 3. Richard J. Bauckham, Jude, 2 Peter, p.277 4. Michael Green, 2 Peter and Jude, p.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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