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Suh |
2008-08-13 21:36:00, 조회 : 1,288, 추천 : 141 |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또 규모를 지키지 말라 함을 저희가 들었도다" (행 21:21)
사도들을 비롯해서 최초의 성도들은 모두가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기독교로 개종했으나 유대교의 전통과 관습 속에서 자라왔고 아직도 그 사회 속에서 살고 있었다. 이런 배경에서 저들은 기독교인들이 되었으나 여전히 율법에 열심이었고 할례를 비롯해서 특별한 날이나 음식 규례등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모세의 율법과 전통의 배경 안에 복음을 두었으나 바울은 에베소에서 이방인 신자들에게 모세의 규범들에 얽매일 의무가 없다고 가르쳤다. 거기서 그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20:24)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모세의 율법과 관습의 빛을 잃게 하였음을 보여 주었다(갈 3:25). 그는 소아시아, 마게도니아 그리고 헬라에서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에게 복음을 설교했다(행 20:21). 그는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같이 그리고 이방인에게는 이방인같이 되었다(고전 9:20-21). 그 두 그룹에게 복음을 전파하기는 어려웠으나 그의 양심은 깨끗하였다. 그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다 회개하라고 외쳤다.1) 그런데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지방에 세운 교회의 유대인 개종자들은 그들의 이전 유대 관습에서 많은 것을 생략하게 되었다. 저들은 일에서나 상업 그리고 여행 등에서 주변 환경에 쉽게 적응하였으므로 그것은 자연스런 결과였다.2) 다시 말해서 저들이 그렇게 된 것은 바울이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런 배경에서 이방인의 사도로 자처했던 바울의 가르침은 자연히 그 교회들을 방문한 유대주의에 집착한 신자나 여행자들에 의해 오해와 불평을 사기 쉬웠다. 그래서 실제 바울의 율법이나 유대인의 관습에 대한 교훈이 잘못 와전될 가능성이 많았다. 본문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을 것이다. 따라서 본문에 바울이 할례를 받지 말고 유대인의 규모를 따라 살지 말라고 했다는 것은 사실 잘못된 오해였다. 물론 이방인 신자는 유대적 의식을 준수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 바울의 확신이었다. 그러나 유대인 신자에게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그래서 바울이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그를 익히 잘 알았던 교회의 대표 야고보는 그에 대한 오해를 씻고 교회의 평화와 연합을 위해 그 자신이 유대인으로서 모세의 율법을 지켜 주도록 요구한 것 같다. 이에 바울은 나실인의 서원 기간을 끝냈고 비용을 내서 유대인의 모든 관습을 지켰다. 그러면 이런 바울의 행위는 정당하였는가? 그가 가르친 복음의 진리와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로마서, 갈라디아서) 정말 그는 유대 신자는 율법에 따라서 살기를 원했는가? 이것은 구원을 위한 기초로서 신앙과 상치되는 것이 아닌가? 이상의 문제들은 바울의 율법과 유대인의 규례에 대한 입장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힘으로 풀릴 수 있다고 본다. 바울은 유대적인 규모나 관습이 그리스도인을 통제할 수 없으며 할례를 받는다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다 하였다(갈 5:2). 그러니까 그는 구원의 기초로서 할례나 유대인의 관습은 무익한 것으로 반대하였다. 그러나 역시 바울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믿었다. 이스라엘은 구원을 받게 될 것이며(11:26) 그 신념 때문에 그는 그의 이방인 선교와 다른 방법으로 구별된 유대인 선교를 할 수 있었다(갈 2:7-10). 뿐만 아니라 바울은 비록 그가 자유했으나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었다. 그는 복음 때문에 유대인 중에 있을 때는 유대인이 되어 율법 아래서 살았다(고전 9:19-23).3) 그러니까 바울은 유대인에게 복음 전파를 위해서 유대인으로서 모든 관습을 지켰다. 그러나 이방인에게는 그런 유대적 전통의 짐을 지울 필요가 없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할례를 들 수 있다.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된 표로서 유대인 남자는 누구나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 이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일원된 육체적 표였다. 여성의 경우는 아버지와의 관계나 남편과의 관계에서 그 언약적 신분이 보장되었다.4) 이런 맥락에서 유대인들에게 할례는 구원의 보증과도 같았다. 그러나 바울에게 할례 자체는 중요하지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신분의 차이를 만들지 못한다(갈 5:6, 6:15). 이런 면에서 바울은 만일 유대인 아버지가 기독교인이 되어 그의 아들을 조상의 관습에 따라 할례 하기를 원한다면 반대하지 않았다. 그 밖에 관습들도 그에게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것들에 대해 그는 융통성이 있는 자세를 취하였다. 이런 것들은 각자의 마음에 확신을 따라서 할 수 있었다(롬 14:2-6). 따라서 유대인이 유대인의 종교적 전통을 따르는 것이나 이방인이 이방의 방식대로 예수를 믿는 것을 다 기쁘게 여겼다.5)
그런 전통이나 문화 그리고 생활 관습이 성경의 가르침에 분명히 어긋나거나 반대되는 것이 아니면 허용하였다. 다만 그것들이 구원과 연관이 있듯이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무익하게 만드는 잘못임을 분명히 하였다. 이상의 바울의 입장에서 이미 문제는 풀렸다고 생각한다. 바울은 선교적인 차원에서 율법, 유대인의 관습, 규모 등을 취급하였다. 그의 관심사는 영혼의 구원이요 복음의 전파였지 신학적으로 이 문제의 잘잘못의 시비를 가르려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의 교훈과 행동을 선교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해석해야 한다. 또 한 가지 바울이 여기서 강조하려는 것은 유대적 경건의 전통이 영적 우월감이나 이방인에 대한 배타적인 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이며 사랑으로 연합되어야 했다.
주 1. Simon J. Kistemaker, Acts(Baker, 1990), p.759 2. R.C.H. Lenski, The Acts of the Apostles(Minneapolis: Augsburg, 1961), p.879 3. Peter H. Davids, More Hard Sayings of the New Testament(IVP, 1991), pp.85-86 4. John B. Polhill, Acts(Broadman, 1992), p.447 5. F. F. Bruce, The Book of the Acts(Eerdmans, 1990), pp.405-4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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