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저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 하셨다 하고 또 저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셨다 하라" (왕상 21:19) 아합 왕은 왕궁 곁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이 탐이 났다. 왕은 나봇을 불러 팔 것을 흥정했으나 실패한다. 나봇은 조상이 물려 준 땅을 팔 수가 없었다. 왕은 그 문제로 인해서 병져 눕게 된다. 왕의 고민을 알게 된 왕후 이세벨은 두 명의 거짓 증인을 세워 나봇이 하나님을 욕하고 왕을 저주했다고 고소케 해서 마침내 그를 돌로 쳐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아 취한다. 그때 선지자 엘리야가 사마리아로 내려가서 왕을 만나 한 예언이 위의 본문이다. 그러면 엘리야의 예언은 정말 성취되었는가?
열왕기상 22:37-38에 아합 왕의 죽음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왕이 죽으매 그 시체를 메어 사마리아에 이르러 거기 장사 하니라 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 씻으매 개들이 그 피를 핥았으니 여호와의 하신 말씀과 같았더라" 여기서 예언은 성취되었다. 그러나 개들이 그의 피를 핥을 것이라는 말씀은 성취되었을지라도 나봇의 피를 핥은 곳이 사마리아는 아니지 않은가? 나봇은 이스라엘 성안에서 신성 모독의 죄를 범했다는 거짓 고소로 재판을 받고 아마 이스르엘 성벽 바로 외곽의 어떤 곳으로 끌려갔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그가 피를 흘린 곳은 바로 그 근처였지 이스르엘에서 여러 마일 떨어진 사마리아는 아니었을 것이다. 또 성밖으로 그가 끌려나갔을 경우라면 혹시 멀리 사마리아까지 가서 처형시켰을 수도 있었을 것이나 이것도 흔치 않았던 예외의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1). 이렇게 볼 때 아합 왕의 죽음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은 문자적으로 성취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아래와 같은 해답이 제시되었다. 그의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 씻으매 개들이 그의 피를 핥더라는 말씀에서 그 예언은 성취되었다(왕상 22: 38). 그러나 문자적으로는 나봇의 땅에 그의 시체가 던져진 그의 아들 요람의 사건에서 성취되었다(2). 어떤 학자들은 아합에게서는 수정 성취되었으며 예후의 아합의 아들의 살해로 성취되었다고 본다(왕하 9:26)(3).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나봇은 이스르엘에서 죽었으나 왕상 22장에서 왕은 길르앗 라못에서 죽었으며 사마리아에 장사되었기 때문이다(4). 그러나 아합 왕에게서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고 보는 이들도 있는데 그렇게 보는 이유는 아합이 중상을 입은 곳이 길르앗 라못인데 바로 거기서 나봇이 돌에 맞았다고 생각한다(22:38)(5). 또 다른 해석은 아합의 부하들은 중상하여 죽은 왕의 시신을 병거에 싣고 길르앗 라못을 돌아 요단을 건너 서북 방향으로 가서 여름의 수도인 이스르엘에 도착했을 것이다. 거기서 사마리아로 가 아합의 시신을 매장하기 위해 왕의 병거가 사마리아로 들어가기 전 그곳의 못에서 병거를 한번 씻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곳의 못의 이름이 아마 사마리아 못으로 불렸을 것이다. 그 가능성은 이스르엘이 여름 휴양지로 그곳에 아합 왕과 이세벨이 연못을 파서 주위 환경을 더 아름답게 하였을 것이며 정규 수도(아합의 부친 오므리가 건설한 것임)의 이름을 기리는 의미에서 그 곳을 사마리아 못이라고 불렀을 것이라고 한다(6).
그밖에 이 예언은 꼭 같은 장소에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나 일반적으로 말해서 같은 곳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스르엘에 있던 사마리아의 영토에서 성취되었다. 나봇의 처형 장소나 사마리아의 연못은 같은 공적 장소였다는 해석이다(7). 그러나 위 본문이 정확하게 나봇이 돌에 맞은 장소를 언급하지 않았고(참고; 왕상 21:13) 또 나봇의 피를 개가 핥은 곳도 정확하게 어디라고 언급하지 않았다. 따라서 나봇은 사마리아로 옮겨져 처형되었을 것이며 또 이세벨이 그의 시체를 사마리아에서 확인했을 때 개들이 거기서 그의 피를 핥았을 것이다(8). 이제 이상의 해답들을 정리해 보자. 크게 보아 아합의 죽음에 대한 예언의 성취가 그에게서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고 보는 견해와 그에게서는 수정 성취되었으며 아들 때에 와서 문자적으로 이루어졌다는 해석이 있다. 이 두 가지 대답은 사실상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가장 좋은 해석은 두 가지 해석의 종합이라고 생각한다. 아합에게서 이루어졌고 그 아들 요람에게서 또다시 확인 성취되었다. 아합 왕은 그의 죽음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을 듣고 회개하며 겸손한 자세를 취하였다.
그 결과 21:29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겸비함을 인하여 재앙을 저의 시대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두 사람의 죽음이 예언 성취를 보완을 해 주고 있는 셈이다(9).
주 1. 글리슨 아쳐, 성경난제백과사전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0), pp.272-273 2. C.F.Keil, I & II Kings(Grand Rapids: Eerdmans, 1980), p.272 3. R.P. Patterson and Herman J. Austel, I & II Kings(Grand Rapids: Zondervan, 1988), p.161 4. Simon J. Devries, I King(Waco: Word, 1985), p.257 5. Adam Clarke. Commentary on the Bible(Grand Rapids: Baker, 1967), p.356 6. 글리슨 아쳐, 상게서, p.273 7. Matthew Polle, A Commentary on the Holy Bible, Vol 1 (London: Banner, 1962), p.710 8. J. Carl Laney, Answers to tough Questions(Grand Rapids: Kregel, 1997), p.84 9. Barne's Notes, Exodus to Ruth(Grand Rapids: Baker, 1987), p.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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