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에 나오는 바로는 라암세스 왕이었는가?
RevSuh  2008-07-31 12:14:03 hit: 1,660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지 사백 팔십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지
      사년 시브월 곧 이월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왕상 6:1)

구약에서 성전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전이었다.  그리고 성막과 성전은 그 구조 자체를 초월해서 영적 상징적 연속성이 있다.

ⓛ 광야에서의 장막  ② 솔로몬이 지은 찬란하고 경외스러운 구조의 성전 ③ 포로 후에 세운 보다 단순한 성전 ④ 헤롯왕의 노력으로 지나치게 돈을 들이고 장식을 더한 성전 ⑤ 성전의 장래 천년 왕국의 형태로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만나기 위해 내려오신 곳으로서 하나님의 집이 그것이다(1).
또 장막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려졌다.

(1) 거처(miskan): 이 말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동등시 하신다는 뜻이며 사람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올 수 있게 하신다는 말이다.
(2) 회막(ohelmoed): 하나님께서 당신과 사람 사이에 만남을 예비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장소와 시간을 정하셔서 만나게 하신다.
(3) 증거의 회막(ohel haedut):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만드신 계약에 대한 증거이다.
(4) 성소(miqdas): 인간의 죄 많음과 무가치함에 대조하여 하나님의 엄위와 구별되심을 가리킨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거하시는 곳으로서 성전에 대한 일반적인 상징은 개개인 신자의 몸인 성전과 신자들의 집단적인 몸인 교회의 성전에서 교회 시대에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2). 그런데 위의 본문은 솔로몬의 성전 건축과 출애굽 사건을 연관짓고 있어서 이스라엘 역사에 매우 중요한 연대를 소개해 준다.

여기서 솔로몬 왕이 다스리기 시작한 것이 주전 970년이므로 그가 왕이 된지 4년째라면 주전 966년이 된다. 주전 966년에서 480년이면 주전 1446이나 1445년이 출애굽의 연대가 된다.  그런데 그 때는 아멘호텝 2세의 치세 초기가 된다. 그러나 학자들간에 근래에 지지를 받고 있는 출애굽의 연대는 1290년이나 라암세스 2세(1300-1234)치세의 극히 초기이다(3).
  
그러면 어느 것이 옳은가?
만약 출애굽이 1290년경에 이루어졌다면 열왕기상 6:1의 햇수는 480이 아니라 324년이 되어야 옳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학자들은 여기서 480년이라는 햇수는 12세대에 대한 기간으로 한 세대를 40년으로 간주한 것인데  실제적으로 한 세대는 20년이 조금 더 될 것이므로 그 기간은 480년보다 훨씬 더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4).  또 한 세대를 30년으로 보아 480년은 360년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5).  또 어떤 사람들은 칠십인 역본(LXX)에 따라 430년을 선호하기도 한다(6).
  
그러나 본문의 열왕기상 6:1이 이스라엘의 애굽 탈출을 주전 1445년으로 단정할 뿐 아니라 사사기 11:25도 같은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거기서 요단 동편 지역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암몬 족 속의 침입자들에 대한 입다의 질문은 이들 땅에 거한지 300년이어늘 그 동안에 너희가 어찌하여 도로 찾지 아니하였느냐고 반문하였다.  입다의 생존 연대는 개략 해서 1100년경이었다.  그러므로 입다의 이 말은 가나안 정복이 주전 1400년경이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출애굽이 주전 1445년이라는 주장과 일치한다.

또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설교에서 그는 이렇게 단정하고 있다.  "가나안 왕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약 450년간) 그후에 (즉 땅을 12지파에게 분배한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여기서 450년이란 기간을 처음 애굽을 떠날 때부터 가나안 복지를 정복하고 다윗을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운 사무엘의 때까지를 포함한다.  그러니까 주전 1445년부터 995년까지이다.

이렇게 볼 때 출애굽의 연대를 1290년으로 잡는다면 적어도 성경의 본문 왕상 6:1과 사사기 11:26절 그리고 신약에 와서 바울의 사도행전 13:19-20절 말씀을 다 틀린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면 출애굽의 연대를 1290년 혹은 라암세스 2세(1300-1234) 치세의 초기로 보는 이유가 무엇인가?
1. 출애굽기 1:11에 이스라엘 백성이 라암셋을 건축하기 위해 노예같이 일을 했다고 했는데 이 사실은 그때 벌써 라암세스 왕이 있어서 그 도시의 이름이 지어졌음을 전제로 한다.
2. 야곱이 애굽으로 이주할 때 힉소스 왕조가 애굽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그 왕조는 주전 1750년이 거의 되어 세력을 잡았으므로 만일 그 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거기서 430년을 우거했다고 하면 1750년에서 430년을 뺀 1320년이 되는데 그때는 18대 왕조인 아멘호텝 2세의 치보다 19대 왕조인 라암세스 2세의 시기가 더 가깝다.
3. 출애굽의 앞장들은 왕실의 거처가 삼각주 윗 부분의 고센 지방으로 전제하는데 제18 왕조때 애굽의 수도는 거기서 남쪽으로 500마일을 더 올라간 테베시에 있었다.
4. 팔레스타인의 주요 도시인 라기스 드빌 하솔 등이 파괴된 곳에서 발굴된 고고학적 증거는 초기 연대 이론이 요구하는 14세기 초가 아닌 13세기를 보여주고 있다.
5. 14세기 후반과 13세기에 애굽이 팔레스타인을 침입한 사건이 사사기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여호수아 시대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때에는 그 침략들이 이미 과거의 사건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한다.

그러나 이상의 반대 이론들에 대해 아쳐(G.L. Archer)는 아래의 사실로 반박하였다. 그것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당시 애굽의 왕조는 팔레스타인에서 온 셈족 이방인을 같은 식탁에서 식사하는 것까지 금할 정도로 얕보았다(창 43:32). 그러나 힉소스 인들은 원래 팔레스타인에서 애굽으로 내려 왔고 셈계의 언어를 사용했으니 같은 지역에서 온 저들을 열등한 인종으로 취급했으리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또 요셉이 그의 형들을 양치는 목자라 했는데 당시 애굽 사람은 목축을 가증히 여겼다고 하였으나 이 말이 힉소스 족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  또 요셉의 죽은 후에 그를 알지 못하는 바로가 권좌에 올랐다고 했으니 아마 그들은 애굽의 원주민이기보다 차라리 힉소스 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라암세스라는 이름 자체도 학소스 말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라암세스(Rameses) 2세의 아버지는 세티(Seti)였으며 이 말의 의미는 셋의 추종자 혹은 수테크(Sutekh)였는데 이 말에 해당하는 애굽 어는 바알이며 바알은 힉소스 왕조를 돌보는 신이었다.

2. 18대 왕조의 바로가 고센 지방에서 500마일 가량 떨어진 먼 곳에 왕의 거처를 두었으리라는 주장은 비문상의 증거에 비추어 볼 때 받아들일 수 없다.  압제를 한 바로로 추종되는 투트모스 3세는 헬리오폴리스의 성전앞에 두 개의 붉은 화강암 오벨리스크를 세웠는데 여기서 그는 자신을 셀리오폴리스의 주인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도시는 삼각주의 기슭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고센 지방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었다.

3. 여호수아의 정복 기사에 언급한 라기스. 드빌 그리고 하솔과 같은 도시들이 13세기에 파괴되었다는 고고학적 증거들은 여호수아의 침공이 실제로 13세기에 일어났었다는 이론의 결정적인 증거가 되지 못한다.  실제로 고고학적 증거들은 그 발견 도상에 있을 뿐이며 지난 30년 동안에 발굴된 지역들 중에서 점점 더 많은 수의 지역들이 지금까지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고 추정되던 그 기간에 융성했던 도시 중심지로 입증되었다(7).
  
그러므로 본문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후 480년이라는 년대가 4x12x10으로 상징적 가치가 있을 뿐이며 문자적으로 취하는 입장이 크게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거기 근거한 출애굽의 연대 계산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믿는다(8).  그러니까 솔로몬은 971년에서 주전 931년을 다스렸고 성전의 시작은 주전 967년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480년을 뒤로 계산하면 출애굽은 대략 1450년대였으며 성전은 주전 960년에 완성되었을 것이다(9).

   주
   1. R.D. Patterson and Hermann J. Austel, 1,2 Kings(E. B. C. Vol.4, Grand Rapids: Zondervan, 1988), p.60
   2. Ibid., p.61
   3. 글리슨 아쳐, 성경난제백과사전(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0), p.258
   4. R.D. Patterson and Hermann J. Austel, Op.cit., p.62
   5. R.K. Harrison, Old Testament Introduction, pp.178-179
   6. C.F. Keil and F. Delitzsch, I & II Kings(Grand Rapids: Eerdmans, 1980), p.67
   7. 글리슨 아쳐, Ibid., pp.259-268
   8. Simon J. Deveries, I Kings(Waco: Word, 1985), p.93
   9. Harvey E. Finley, The Book of Kings(B. B. C. Kansas: Beacon, 1965), p.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