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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이 구절은 룻이 보아스와 성적인 관계를 맺은 것을 암시하고 있는가?
RevSuh  2008-07-30 20:59:51 hit: 2,031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서 가서 노적가리 곁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룻 3:7)

룻은 보아스가 먹고 마신 후에 잠자기 위해 노적가리 곁에 누웠을 때 조용히 그 발치 이불을 들고 들어가 거기 보아스와 함께 누웠다.  이것은 룻이 그녀를 구속하도록 그에게 의무를 지우기 위해 보아스와 성적인 관계를 한 것을 암시하고 있지 않는가?
  
추수 때에는 일반적으로 먹고 마시면서 기뻐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리고 보리 추수는 대개 해가 지기 전인 오후 4시-5시경까지 지속했다.  그 시각은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으로 곡식 단을 둘러치고 거기서 잠을 자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보아스가 곡식단 곁에 누웠을 때 룻이 가만히 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운 것이다. 혹시 이때에 룻은 부도덕한 마음을 먹고 보아스 곁에 누운 것이 아닌가?  어떤 주석가들이 그렇게 보아 두 사람이 성적인 관계를 가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1.  그러나 보아스는 신뢰할 수 있는 인격자였고 롯은 모든 사람이 알듯이 현숙한 여인이었다(11절). 그러므로 결코 부도덕하게 볼 사건이 아니다.  특별히 룻이 가만히 가서 란 말이 혹시 은밀하게 란 말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으나 그 말은 소리가 나지 않게 조용히 란 뜻이다. 예를 들어 다윗이 사울의 옷자락을 가만히 베었을 때 쓰인 같은 말이다(삼상 24:4)2.
  
또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9절) 란 말을 들어 그렇게 생각하기도 쉬우나 그 말의 뜻은 보호를 상징했으며 결혼과 관계가 있을 뿐이지3 성적인 관계를 의미한 것은 아니다.
  
이제 좀더 구체적으로 여기 룻의 행위가 보아스와 성적인 관계가 아님을 지적해 보기로 한다.
  
첫째로, 룻은 보아스와 부도덕한 관계를 감추기 위해 밤에 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보아스가 공적인 감시의 압력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밤에 왔다.

둘째로, 발을 덮지 않았다고 한 말은 룻이 보아스와 성적인 관계를 했다는 것을 가리키는 완곡어법이 아니다. 오히려 복종과 순복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스에게 그녀가 순복하고 기꺼이 그의 아내가 되겠다는 것을 가리킬 뿐이다.
  
셋째로, 보아스의 발에 이불을 들고 룻이 누웠다는 말은 성적인 관계를 표현하는 말이 아니다.  그 경우에는 그가 그녀와 함께 누웠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룻은 누구와 함께 누웠다고 하지 않았다4.
  
그러므로 룻이 보아스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다는 말은 그녀가 보아스와 성적인 관계를 가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보아스의 발치에 누운 것은 복종의 행위였다.  룻은 그녀 자신을 보아스의 권위 아래 두었다.  따라서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란 말(9절)은 보호와 결혼의 안전을 위한 요구였다5.
  
   주
   1. John F. Walvoord & Roy B. Zuck, The BIble Knowledge Commentary, Old Testament(Victor Books, 1985), p.424
   2. Leon Morris, Ruth(Downer Grove: IVP, 1968), p.288
   3. The Broadman Bible Commentary, Vol.2 (Nashville: Brodman, 1970), p.475
   4. Norman Geisler and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 1992), p.153
   5. J. Carl Lancy, Answers to tough Questions,(Grand Rapids: Kregel, 1997), p.68
보아스와 룻 사이에 결혼의 채비는 계대 혼인법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RevSuh  2008-07-30 20:58:07 hit: 3,404

    "그 기업 무를 자가 가로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룻 4:3-8)

신명기 25:5-10은 계대 혼인법에 대해서 말씀한다.  만일 형이 결혼했으나 자녀가 없이 죽으면 그 사람의 동생이 형의 아내를 취해서 그의 죽은 형의 이름으로 자녀를 양육할 의무가 있었다.  이 관습은 그 형의 대를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보아스는 룻의 죽은 남편의 형제가 아니었다.  또 여기서는 왜 친족이 룻에 의해서 혹은 룻으로부터 땅을 사야 했는지 알기가 어렵다.  더구나 아래의 몇 가지 사실들은 이 경우가 계대 결혼과 다른 것을 보여 주고 있다.  

1. 보아스의 경우는 과부인 룻과 결혼하기로 기대되었던 형제보다 훨씬 먼 친척이었다.
2. 계대 결혼을 거부당한 과부 대신에 그 친족이 자신의 신을 옮겼다.
3. 분명히 여기서 신을 옮기는 것의 중요성은 합법적인 거래를 보증하는 것이었으므로 어떤 치욕이나 부끄러움도  없었다.1

그러면 룻과 보아스의 결혼은 예대 결혼 법에 어긋나는가?
  
어느 법이든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변경되어 온 것이 사실이고 또 확대 사용되었음도 알 수 있다.  여기 보아스가 룻과 계대 결혼을 하게 된 것이 바로 그 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원래 계대 결혼의 주관심사는 죽은 자의 가계를 지속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 룻의 경우는 더 이상 계대 결혼할 대상이 될 나오미의 아들이 없었다.  다시 말해서 형제가 없었으며 또 나오미가 결혼해서 아들을 낳을 가능성도 없었다.  따라서 이 경우는 형제를 제외한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그 권리가 주어졌다.  나오미의 가족에는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척이 한사람 있었다.  그러나 그가 그 권리를 포기하였다.  그는 룻과 결혼하고 재난을 되사는 것은 그 자신의 상속에 손해가 될 것을 우려하였다.  그는 그 자신의 가족에 머물지 않고 그 자신의 자녀들에게 속하지 않을 재산에 투자하기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 재산이 자신에게 상속되기를 원하였을 것이다.2  따라서 보아스가 가장 가까운 친척이 되었으며 이 도덕적 목적을 법적으로 이루어야 할 다음 혈연이었다.
  
또 하나는 죽은 자의 이름으로 자녀를 양육할 책임과 함께 죽은 자에게 속한 기업의 얼마를 팔았거나 몰수된 어떤 재산을 다시 찾을 책임도 있게 되었다(레 25:25).  그런데 가장 가까운 친족이 재정적으로 이 책임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으므로(룻 4:6) 그의 권리와 나오미를 속하고 룻과 결혼할 책임을 포기했으며 그 의무가 보아스에게로 갔다. 그러므로 보아스와 룻과의 결혼이 계대 결혼에 모순된 것은 아니었다.3
  
다만 신을 벗기는 행위는 상대편에 모욕을 주기 위함이었는데(신 25:9) 여기서는 땅에 대한 소유권을 양도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행동이었다.  신은 발을 밟을 수 있는 매체인데 이것을 벗어서 상대방에게 넘겨준다는 것도 그 땅을 양도 또는 포기한다는 사실을 상징했다.  
  
물론 계대 결혼에서는 신발이 벗기우므로 힘과 권위를 타인에게 빼앗김으로서 수치를 당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 두 관계는 직접 연관은 없을지라도 상징적 의미로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4

계대결혼의 형식과 절차가 똑같지 않았으므로 이 사건은 그 과정을 소상히 소개하고 설명해 준다고 볼 수 있다.  룻과 보아스의 결혼은 계대결혼에 대한 확대요 후대에 이르러 상황과 형편에 맞게 조절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주
   1. F.B. Huey, Jr., Ruth, E. B. C. Vol.3(Grand Rapids: Zondervan, 1992),p.542
   2. J. Carl Laney, Answers to tough Question(Grand Rapids: Kregel, 1997),p.69
   3. Norman Geisler &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 1992),p.154
   4. 강병도편,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서울; 기독지혜사, 1989), p.960
어떻게 모압의 증손자인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다스리고 제단을 세우며 여호와의 회중 안에서 예배하는 것이 가능했는가?
RevSuh  2008-07-30 20:50:04 hit: 904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룻 4:21-22)

어느 주석가의 말처럼 룻기가 족보로 마치는 것은 예상 밖이다.  왜 족보가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가?  우리는 잘 아기 어렵다.  아마도 이야기의 주제에 단지 덧붙인 부록이었으리라1.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구속을 이루시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결국 나오미와 룻과 보아스를 통해서 다윗이 나오게 되었으며 메시아이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족보가 보여 주고 있는 또 다른 사실은 모세 때까지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는 이스라엘의 지도적 지파로서 유다 지파의 위기를 상기시켜 주며 다윗이 바로 그 유다의 지도적 가문에서 출생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족보는 다윗의 왕조에 대한 합법적인 근거를 제시해 주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특별히 여기서 보아스가 다윗의 일곱 번째 조상의 이름으로 나오는 것은 그에 대한 특별한 존귀와 중요성을 지시해 준다.  그도 그럴 것이 보아스는  비틀거리는 가계를 끊겨 버리는데서 구해 주었기 때문이다2.
  
이제 어떻게 다윗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 제단을 세우며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었는지 알아보자.
  
신명기 23:3에 의하면 모압 인의 후손은 누구든지 10대까지 예배와 섬김을 위해 야웨의 회중에 들어 올 수 없다고 하였다.  다윗은 모압의 3대손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다윗이 왕이 되고 하나님을 섬긴 것은 모순이 아닌가?
  
그 해답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의 도덕법은 항상 구속력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필요가 종종 의식 법의 문자를 초월한다고 지적하셨다.  예를 들면, 다윗은 제사장밖에 먹을 수 없는 진설병을 먹었다.  따라서 안식일 배가 고팠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먹은 것은 죄가 아니라고 하셨다(마 12:1-8).  믿음과 충성된 사랑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의식 법에는 예외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모압 여인 룻은 믿음과 하나님께 대한 언약적 충성을 보여 주었다.  모압 인의 예배 참여에 대한 금지는 믿음의 원리로 대치되었다3.
  
다윗의 족보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성취를 위한 것이었다면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데 합법적이었음을 보여 주는 것만이 그 목적이 될 수는 없었다.  예언대로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후손으로 오실 것까지를 논증하는 것이어야 했다.  과연 예수님은 족보상으로 볼 때 유다 지방의 왕가의 후손으로 오신 것이 사실이지만 역시 보잘 것 없는 이방인 조상의 후손으로 오신 것이다.  따라서 그 족보가 벌써 은혜 구원의 원리를 보여 주고 있는 셈이다.

     주
     1. Leon Morris, Ruth(Downers Grove: IVP, 1968), p.317
     2. Robert L. Hubbord, Jr., The Book of Ruth(Grand Rapids: Eerdmans, 1988), p.284
     3. J. Carl Laney, Answers to tough Questions(Grand Rapids: Kaegel, 1997),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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