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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된 것은 언제였나?
RevSuh  2008-07-31 14:05:01 hit: 1,710

     "왕이 엘리야의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고 저가 아들이 없으므로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제 이 년이었더라"      (왕하 1:17)

여기서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들의 이름이 같은 것은 이들 양국의 선왕들이 서로 동맹조약과 우정 때문이었으리라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사실 유다나 이스라엘은 솔로몬 왕 때까지만 해도 한 나라였으며 한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보면 동맹이나 우정을 떠나서도 서로가 같은 이름을 선호했으리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열왕기하 3:1에는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여호사밧 18년에 왕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두 기록은 모순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된 것은 유다 왕 여호람 때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 여호사밧 때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보다더 분명히 밝혀보면 북왕조의 여호람은 주전852-841년까지 다스렸으며 남왕조의 여호람은 주전 853-841년을 다스렸고(848 완전 통치) 남왕조의 여호사밧은 주전 872-848을 다스렸다(섭정 870/860 완전 통치)(1).
  
그러므로 남왕조의 여호람이 왕이 된 해가 주전 853년인데 그의 아버지 왕 여호사밧의 통치가 848년까지였으므로 적어도 5년간의 차이가 나는 셈이다. 따라서 남왕조의 여호람 왕의 제2년은 그가 853년에 완전 통치를 시작했으므로 주전 851년이나 850년이 된다. 그리고 그때는 여호사밧의 제18년이기도 하다.  그것은 그가 주전 869년에 정식으로 통치하기 시작하였으므로 거기서 18년을 더하면 851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런 차이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어떤 이들은 이런 차이점이 본문에 대한 사본 상의 차이로 생각하기도 한다. 어떤 사본에서는 17절의 후반부가 온전히 제외되었는가 하면 어떤 것은 18절후에 3:1-3의 내용이 더해진 것도 있다(2).
  
이에 대해 우서(Usher)나 라이트훗(Lightfoot) 그리고 다른 학자들은 섭정을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여호사밧이 수리아를 대항한 전쟁을 하기 위해 길르앗에 있는 라못으로 올라갔을 때는 그의 통치 18년째였으며 아합의 통치 22년째였는데 아합은 그의 아들 여호람을 섭정자로 임명하였으며 그에게 그 나라의 통치권을 넘겨주었다.  1:17에 유다의 여호람 제2년에 이스라엘의 요담이 왕이 됐다는 언급이 바로 이 섭정에서 나온 것이다.
  
여호람의 통치 제2년은 여호사밧 통치의 제18년에 일치한다(3:1). 그리고 그의 섭정 제5년에 여호사밧이 그에게 온전히 나라의 통치권을 넘겨주었다. 그것은 시간의 이 시점 다시 말해서 우리가 유다의 여호람의 통치 제18년으로 간주한 여호사밧 23년에서부터 계산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아버지가 죽은 후 단지 6년만 다스렸다(3).
  
아처(G.L. Archer)는 유대 왕의 역사 속에는 부왕의 생존 기간에 세자가 섭정왕에 즉위한 예를 따른 것이 여섯 번이 있었다고 하였다.

1. 아사는 주전 869년에 죽었지만 그의 아들 여호사밧은 주전 872년에 섭정왕이 되었다(따라서 3-4년간 섭정을 했다).
2. 여호사밧은 주전 848년에 죽었지만 그의 아들 여호람은 주전 853년 섭정왕이 되었다.
3. 아마샤는 주전 767년에 죽었지만 그의 아들 아사랴는 주전 790년에 섭정왕이 되었다.
4. 웃시야는 주전 725년에 죽었지만 그의 아들 히스기야는 주전 728년에 섭정왕이 되었다.
5. 요담은 736년이나 735년에 죽었지만 그의 아들 아하스는 주전 743년에 섭정왕이 되었다.
6. 아하스는 725년에 죽었지만 그의 아들 히스기야는 주전 728년에 섭정왕이 되었다(4).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면 남북 왕조의 왕들의 통치 연대의 혼란에 대한 의문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주
   1. R. D. Patterson and Hermann J. Austel, 1,2 Kings(Grand Rapids: Zondervan, 1988), p.173
   2. T.R. Hobbs, 2 Kings(Waco: Word, 1985), p.3
   3. C.F. Keil, 1,2 Kings(Grand Rapids: Eerdmans, 1980), p.289
   4. 글리슨 아쳐: 성경 난제 백과사전(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0), p.276
이교주의와 그들의 시대에 우상숭배의 관계에서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RevSuh  2008-07-31 14:03:06 hit: 1,100

     "여호와께서 회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에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왕하 2:1)

위의 말씀은 선지자 엘리야(주전 875-848)가 그의 사역을 마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승천할 때가 된 것을 보여준다. 그는 선지자의 사역이 지속되어야 할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으므로 그의 조사요 신실한 제자 엘리사를

그의 후계자로 굳게 세워주려고 하였다. 이런 목적에서 그는 그의 마지막 지상의 사역을 선지 학교가 있는 여리고에서 보내려고 하였다. 길갈에서 여리고는 남동쪽으로 15마일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하나님의 일은 그 누구도 홀로 할 수 없으며 지속되어야 하는 중요한 일이므로 후배 양성과 훌륭한 신학교의 설립과 운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엘리야가 마친 사역 그리고 엘리사가 이어 받을 사명은 어떤 것이었는가?  저들이 아합과 이세벨의 바알 숭배을 반대했다면 그 일에서 그들의 역할과 기능은 무엇이었는가?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의 핵심은 바알은 신이 아니며 여호와만이 참으로 신이시오 하나님이심을 변호하고 변증하는 일이었다.  
  
그러면 바알은 어떤 신이었는가?
고대 시리아에서 우가릿(Ugarit)으로 알려진 설형 문자의 방대한 도서관이 불란서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 원문들의 연대는 성경 시대로부터 온 것으로 고대의 문화와 종교에 빛을 비춰준다.
  
그 우가릿 자료에서 바알은 불과 번개를 통제한다. 많은 우가릿 원문들은 바알을 천둥번개를 일으키며 불을 제압하는 것으로 언급한다.그러나 불병거(왕하 2:11; 6:17)에 대한 언급은 야외 하나님이 그 요소들을 통제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준다. 여호와의 불이 가멜산과(왕상 18:38) 아하시야의 군대 위에 떨어졌다(왕하 1:10-14).  따라서 불을 통제하시는 분은 야외이심을 증명하였다.
  
역시 우가릿 원문들은 바알이 비도 통제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허락에 의해서만 비가 내리고 땅이 풍성한 열매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엘리야가 그의 선지자 사역을 시작할 때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왕상 17:1)고 선언함으로서 바알에 대한 우가릿의 개념이 거짓임을 증명하였다. 엘리사 역시 여리고에서 물을 고치고(왕하 2:19-22) 모압을 대적한 세 왕들의 작전을 위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게 될 것을 예언하므로서(왕하 3:17) 물에 대한 야외의 통제를 증명하였다.
  
우가릿 석판들은 바알의 식물과의 관계를 묘사해 주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농업과 그 땅의 생산을 통괄하고 있음을 가리켰다.  바알은 곡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땅에서 곡식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데 바알이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바알은 죽음의 신 못(Mot)을 정복하고 비옥의 여신 아나스(Anath)를 도와주므로 땅을 비옥하게 해 주며 비를 오게 하는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그릿 시냇가에서 엘리야를 기적으로 먹이심으로 야외가 양식의 예비자임을 증명하였다(왕상 17:6). 또 사렙다 과부를 위한 기름과 음식을 기적적으로 예비하시고(왕하 1:10) 광야에서 엘리야를 먹이셨으며(왕상 19:6) 가난한 과부의 빚을 갚도록 기름을 예비하셨는가하면(왕하 4:1-6) 떡 이십 개로 백 명을 기적으로 먹이신(42-43절) 모든 사건들은 야외가 기름을 더하시고 곡식을 풍성하게 하시는 분이심을 증명해준다.
  
역시 우가릿 본문에서는 자손의 선물이 그의 아들 바알의 요구로 가나안의 최고 신 엘(El)에 의해 주어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수넴 여인에 대한 엘리사의 축복이 마침내 아들을 낳게 하였다(4:16-17).  따라서 바알이 아니라 야외가 어린아이를 예비하시는 분이심을 증명하였다.  그뿐 아니라 우가릿 백성들은 바알의 죽음과 부활이 연관된 신화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바알은 죽었다가 다시 부활했다고 믿었다.  따라서 바알은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다고 보았으며 죽음을 이긴 바알의 승리는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죽음을 정복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과부의 딸을 살리고(왕상 17:17-23)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린 사건(왕하 4:32-37) 그리고 엘리사의 뼈에 닿은 시체의 부활의 기적은(13:21) 모두 바알이 아니라 야외가 생명과 죽음을 통제하시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계획된 것이다(1).
  
따라서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의 핵심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되신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변증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기적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냄으로서 바알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주로서 생사를 포함한 모든 일을 통제하시는 분이심을 증명하였다.

   주
   1. J. Carl Laney, Answers to Tough Questions(Grand Rapids: Kregel, 1997), pp.86-87
엘리사에게 약속된 갑절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RevSuh  2008-07-31 14:00:57 hit: 1,671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왕하 2:9)

엘리사는 그의 스승 엘리야가 승천하기 직전 스승의 영감의 갑절을 요구하였다. 엘리사는 선지적 지도자 의 역할에 올바른 상속으로서 그의 자격을 요구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알고 요구하였다. 엘리사는 그의 앞에 놓여 있는 두려운 사역에 대한 책임을 감당할 수 있도록 그 자신의 능력을 훨씬 능가하는 성령의 능력을 요구한 것이다. 엘리사의 이 요구는 솔로몬이 백성들을 잘 재판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지혜를 구한 일과도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엘리사는 왜 갑절을 요구했는가?  그 갑절(두 배)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서 엘리사가 엘리야의 영감을 갑절이나 더 원했던 것은 그의 겸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능력에 있어서 그 자신은 엘리야에 비교할 수가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감이 엘리야보다 갑절이나 더 필요한 부족한 사람으로 자신을 바로 본 것이다.
  
그러면 갑절은 무엇을 의미했는가?
갑절이라는 말은 신명기 21:17에서 발견되는데 거기서는 장자의 기업은 다른 아들들에 비해 갑절이었다.  따라서 엘리사는 장자의 기업을 요구한 셈이다.  그러나 이 말은 장자의 기업이 부모의 재산의 배가 아니었듯이, 여기서 엘리사가 요구한 갑절은 엘리야의 영감의 갑절이나 그의 능력의 배를 달라는 요구가 아니었다.  15절에 보면 다만 엘리야의 영감이 엘리사에게 머물렀다고 하였다.  따라서 여기서는 엘리사가 엘리야의 합법적인 후계자란 의미가 더 적절하다고 하겠다.  따라서 10절에 보면 후계에 대한 그의 권리가 그의 스승의 승천에 대한 그의 증인됨에 근거하였음을 설명하고 있다(1).
  
따라서 여기서 엘리사의 요구는 그의 선지자적 사역에서 제일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뜻이다(2).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우리는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간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 직분, 그 일들을 잘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요 지혜요 자격이다.

   주
   1. T.R. Hobbs, 2 Kings(Waco: Word, 1985), p.21
   2. J. Carl Laney, Answers to Tough Questions(Grand Rapids: Kregel, 1997), p.88
엘리사의 저주는 정당하였나?
RevSuh  2008-07-31 14:00:03 hit: 7,354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길에 행할 때에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서 저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사십 이명을 찢었더라"    (왕하 2:23-24)

여기 열왕기하 2:19-25절에는 엘리사의 두 가지 기적이 기록되어 있다. 첫 번째 기적은 여리고성의 물을 고친 사건이다.  여리고성은 아합시대에 다시 재건되었는데(왕상 16:34) 물이 아직도 여호수아의 저주 아래 있어서(수 6:26) 마실 수가 없으므로 백성과 땅이 크게 고통 중에 있었다(19절). 엘리사의 기적으로 물을 고쳐 온전히 구시대의 심판을 제거시켰다. 두 번째 기적이 바로 본문이다.  엘리사가 그 여리고에서 벧엘로 올라갈 때에 젊은 아이들이 떼로 몰려와서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조롱을 하자 엘리사가 돌이켜 저들을 저주하니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 저들 중에 42명을 찢어 죽였다.  벧엘은 송아지를 숭배하는 우상의 중심지였으나 (왕상 12:32, 13:1-32) 역시 선지 학교가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지금은 벧엘에 나무가 그리 많지 않으나 그 당시에는 삼림으로 덮여 있었으며 자주 사나운 짐승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공격했었다(삿 14:5; 삼상 17:34; 왕하 22:25)(1).
  
이 본문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이들의 조롱 때문에 하나님의 선지자가 저주해서 42명의 아이들이 곰에게 찢겨 죽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구절의 문제는 어떻게 하나님의 선지자가 조롱을 받았다고 저주할 수 있는가?  그리고 한두 명도 아닌 42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다 죽일 수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엘리사의 도덕성은 물론 선지자의 진실성까지도 의심하는 이들이 있다.
  
이제 그 문제를 풀어 보기로 하자.
먼저 본문의 젊은 아이들은 오해하기 쉬운 말이다. 이 말은 영어 성경 흠정 역에서는 작은 소년들(small boys)로 번역했으나 히브리말의 원 뜻은 젊다(youth)는 뜻이다. 또 나이가 든 종들이란 뜻도 있다.  그리고 작다(little)는 말은 나이나 키에서가 아니라 특성이나 성격을 나타내는 말이다(2).  따라서 젊은 아이들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로스안젤스로 말하자면 싸우스 쌘추럴(south central)의 우범 지역에서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갱들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저들이 한 50명 이상 모였다고 본다면 그것은 그 당시 사회의 큰 암적 요소였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건달들이 떼를 지어 다니면서 그들이 존경해야 할 어른을 조소하며 심지어 잘 알려진 하나님의 사람에 대해서까지 비웃기를 마지않았다면 이들의 난폭한 진행을 방임했을 때 그들이 이스라엘 왕국의 종교 중심지(벧엘)에 사는 시민들에게 어떤 행패를 부렸을 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3).
  
다음으로 대머리여 올라가라는 조소가 왜 저주의 원인이 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자.
당시 엘리사는 50세쯤 되었고(13:14) 아마도 그는 머리에 두건을 썼을 것이다(태양 광선의 강열함 때문에 중동 지역에서는 필연적이었음) 그러므로 그가 대머리였을 가능성은 없으며 설사 그랬더라도 두건을 썼으니 대머리였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엘리사에게 대머리여 라고 한 말은 순전히 조롱이었다(4).  게다가 한번만 아니라 본문에 두 번씩이나 기록이 되었으니 저들이 경건치 못했음은 물론 하나님과 그의 선지자를 미워한 것이 분명하다.  왜 네 동료 엘리야와 함께 하늘로 올라가지 않았느냐?  함께 올라갔다면 우리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지 않았을 게 아닌가?(5)  말하자면 저들은 엘리사에게 조소와 항변과 탄핵을 한 셈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대머리여 올라가라는 말은 적은 죄가 아니었다.  실제로 그 당시에 대머리여! 라는 말은 치욕으로 간주되었으며 여기서는 경멸이나 조롱에 대한 형용 어구였다(사 3:17, 24)(6).
  
마지막으로 암콤 둘이 나와서 42명의 청년 불량배를 죽인 사실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여기 본문에 보면 엘리사가 저주한 것은 사실이나 그가 하나님께 그들을 죽여 주십사고 기도한 사실은 전혀 없다. 따라서 엘리사의 행동이 지나쳤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저들을 죽인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는데 그 심판은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 정당하였다.

1. 엘리야는 승천했고 엘리사는 실제로 그의 선지 사역이 위험에 처해 있었다.  그러므로 그에 대한 조롱은 단호하게 대처되어야 했다(R.D. Patterson)
2. 동방에서는 실제로 머리털이 없는 대머리에게 대머리란 말을 써도 경멸과 모욕의 말이었으니 심판이 당연했다(Jamieson)
3. 이들에 대한 심판은 엘리사의 거룩한 위엄에 대한 특유의 두려움으로 온성을 영감시키기 위해서였다(C.F. Keil)(7).
4. 하나님 자신과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어떤 선지자도 위협을 받거나 조소 거리가 될 수 없음을 그들에게 깨우쳐 주기 위한 목적에서였을 것이다(G.L. Archer).

위와 같은 이유에서 하나님의 선지자를 조롱한 벧엘의 불량배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적절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엘리사는 진정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아합 왕의 아들 여호람 왕 까지도 그를 대할 때는 큰 존경과 경외의 마음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왕하 3:11-13).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배우는가?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권위를 상실해서는 안 된다. 주의 종들의 영적 권위는 그 사역의 중요성이나 필연성 때문에 반드시 지켜져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역자에 대한 도전은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
   1. Jameison, Fausset & Brown, Commentary on the Whole Bible(Grand Rapids: Zondervan, 1961),  p.271
   2. New Bible Commentary, Revised(London: IVP, 1970), p.350
   3. 글리슨 아쳐; 성경난제백과사전(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0), p.276
   4. New Bible Commentary, Ibid.,
   5. Matthew Poole, A Commentary on the Holy Bible, Vol, I(London: Baaner, 1968), p.719
   6. R.D. Patterson and Hermon J. Austel, 1 & 2 KIngs, E. B. C. Vol.4(Grand Rapids: Zondervan, 1988), 178
   7. C.F. Keil, I & II Kings(Grand Rapids: Eerdmans, 1980), p.300
선지자 엘리사는 아람 군대에게 거짓말을 했는가?
RevSuh  2008-07-31 13:58:39 hit: 1,070

     "엘리사가 저희에게 이르되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도 아니니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의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저희를 인도하여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왕하 6:19)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치려는 계획들은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고민에 빠진 왕이 그 원인을 조사케 하였더니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가 있어서 그의 모든 계획을 이스라엘 왕에게 다 알려준다는 것이었다.  아람 왕 벤하닷은 선지자 엘리사를 체포하기 위해 유격대원을 파견하였다. 그런데 저들이 공교롭게도 엘리사를 만났으나 엘리사는 기도로 저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도단에서 10마일이나 떨어진 사마리아로 인도하였다. 따라서 저들은 엘리사를 체포하는 대신에 오히려 그들이 이스라엘 왕 여호람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이 사건에서 엘리사의 이 말(본문)은 애매한 점이 있고 또 그들을 속이려는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하나님의 선지자가 아람의 유격대원에게 거짓말을 한 셈이 아닌가?
  
이 문제에 대해 엘리사가 거짓말을 했다고 보아도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이들이 있다.  왜냐하면 전쟁터에서는 전략 자체가 적을 속이는 것이듯이 위기를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은 합법적이라는 것이다(1).
  
그러나 이 사건 전말을 살펴보면 사실상 선지자 엘리사는 거짓말한 것이 아니었다.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도 아니요 라고 한 것은 정말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지금 그 성에서 빠져 나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그 유격대원들이 그 길로 그 성에 들어갔다면 그들은 엘리사가 그 성에서 떠나버린 것을 알게 될 것이었다(2).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 후에 나를 따라오면 너희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고 한 말도 사실은 옳았다.  왜냐하면 저들이 엘리사를 따라서 사마리아로 내려가면 거기서 그들이 찾는 엘리사를 만나게 될 것이다. 거기서 엘리사는 그들의 눈을 밝게 해 줄 것이요 그때 그 선지자를 밝히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엘리사가 나는 당신들이 찾는 사람이 아니라 라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그를 만날 수 있는 성으로 인도하겠다고 했을 뿐이다(3). 또 엘리사는 이스라엘의 군인들이 진을 치고 있는 성이 아니라든지 당신들이 여호람 왕의 포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엘리사는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다.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이 이들 아람의 유격대원들을 포로 하지도 말고 죽이지도 말며 차라리 대접을 잘해서 편히 저들의 왕에게 돌려보내라고 조언했고 왕은 그대로 하였다.  왜냐하면 저들은 전쟁의 포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앞에 인간의 지혜나 힘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력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이 사건으로 (1) 저들은 엘리사가 참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알게 되었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2) 저들을 평화롭게 돌려보냄으로서 이스라엘이 전쟁보다 정치적으로 평화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3) 평화를 원하는 이스라엘과 싸운다거나 그들을 침입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 결과 저들은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를 침범하지 않게 되었다(4). 결국 엘리사의 중재나 지시는 순간적으로 범할 수 있었던 이스라엘의 악(유격대원의 처형)을 방지한 하나님의 치료제가 되었다(5).  성경은 남에게 대접을 받으려면 먼저 남을 대접하라고 가르친다(마 7:12).

   주
   1. Matthew Poole, A Commentary on the Holy Bible, Vol.1(London: Banner, 1968), p.728
   2. Ibid.,
   3. 글리슨아쳐:성경 난제 백과사전(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0), p.277
   4. C.K. Keil, I & II Kings(Grand Rapids: Eerdmans, 1980), pp.326-327
   5. R.D. Patterson and Hermann J. Austel, I & II Kings(Grand Rapids: Zondervan, 1988),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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