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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

회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진노를 돌이키시지 않는가?
RevSuh  2008-07-31 12:26:40 hit: 1,035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진노하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케 한 그 모든 격노를 인함이라"   (왕하 23:26)

하나님께서 의인의 후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시되 악인의 죄는 그 자손 3, 4대까지 갚으리라고 하셨다(출 20:6). 그런데 이 본문에 와서 이런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 것 같다.
  
유다 왕 므낫세는 적어도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 왕이 죽기 전 10년 동안은 함께 왕으로 통치한 것 같다.  그런데 그의 경건한 아버지도 이 배역하는 아들의 50년 통치에 아무런 영향을 못 준 것 같다. 이것은 히스기야 왕 아래서 대 부흥이 있은 후였으므로 더욱이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경건한 신앙의 가정에서 출생해서 성장하고 그 아버지와 함께 다스린 아들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지 않았다.  므낫세는 반세기 동안 가나안 백성들의 모든 부패를 그대로 반복하였다.  그는 많은 의인들을 살해했으므로 위기 때 예루살렘을 방어할 사람이 거의 없었으며(왕하 21:10-15) 모든 백성들은 거의 무관심하였다.
  
므낫세의 우상 숭배와 불의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배척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왕하 24:3, 렘 15:4). 그러나 므낫세는 수리아 왕 아슈바니팔을 대적함으로써 옥에 갇히게 되었고 그 시련 중에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고 그 앞에서 크게 겸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회개의 간구를 들으셨다.  므낫세는 마침내 그의 통치 말기에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알게 되었다. 이것이 사실이었다면 어떻게 자비와 은혜의 하나님께서 회개하기 전 므낫세의 죄를 기억하시고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시지 않으셨는가?  그는 회개하지 않았는가? 더 나아가 여기 하나님의 진노는 타오르는 진노요 그의 큰 노의 광포함에서(원문대로)라는 뜻이므로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런 말은 고대 근동에서 하나님이나 신들의 활동에 대한 일반적 표현이었다고 한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본문에서 두 가지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첫째는 의인의 후손이 타락하고 복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요 둘째로는 회개한 므낫세에 대해 하나님께서 심판하셨다는 사실이다.
  
먼저 의인의 후손이 축복을 받지 못한 사실부터 알아보자.
의인의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는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성취된다. 이 점에서 므낫세의 부친 히스기야는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므낫세가 아버지의 영향을 받지 못했다는데 있다. 이것은 히스기야가 므낫세를 늦게 낳았으므로 훈련보다는 무조건 사랑으로 대했을 가능성이 크고 또 국가적인 종교 부흥에 힘을 쓰느라 가정과 그의 아들에게는 주의 교양으로 양육할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 결과였을 것이다.  이것은 제사장 엘리가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바로 지도하지 못한 것과도 같았다고 하겠다. 오늘날도 유명한 신학자나 목회자의 자녀 중에서 신앙을 떠나 타락한 삶을 살므로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는가?
  
이런 맥락에서 목회자들은 언제나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하신 말씀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딤전 3:4).

다음으로 회개한 므낫세에 대해 하나님께서 그의 과거의 죄를 인해서 심판을 하신 것은 정당한 것이었는
지를 알아보자.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므낫세의 진정한 회개를 보시고 그를 용납하신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은 지체되었다. 그의 아들 아몬은 역시 악한 왕이었으며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지 않았다(대하 33:23). 또 백성들은 일반적으로 부패하여 요시아 왕(므낫세 왕의 손자)의 신앙의 개혁을 은밀하게 싫어하였다. 그들은 옛날의 정욕과 우상 숭배에 기울었으며 그들을 책망한 예례미야와 스바냐같은 선지자들에 대해 크게 불평하였다.
  
그 결과 요시아의 자녀 때에 가서 다시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은 당연하였다. 므낫세는 회개하였으므로 그의 때에 심판을 받지 않았으며 그의 아들 요시아도 신앙의 개혁자였으므로 심판이 그의 때까지는 지연되었으나 그의 자녀들과 백성들은 여전히 므낫세 시대의 죄를 반복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이미 예언하신 심판이 그들에게 임하게 되었다(21:12). 히스기야 왕이나 요시아 왕의 개혁이나 신앙 부흥 운동도 므낫세 아래서 집합되고 복합된 악의 세월을 상쇠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2).
  
우리는 이 본문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우리는 여기서 죄인들을 차별 없이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들의 죄를 후손들에게서 찾으신다는 사실을 본다.  물론 이 경우에 그들은 선하지 못했고 조상들의 죄나 그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지 않았다(3).  회개하지 않은 죄는 저절로 사해지는 법이 없고 사해지지 않은 죄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부르게 된다.

   주
   1. T.R. Hobbs, 2 KIngs(Waco: Word, 1985), p.388
   2. Walter C. Kaiser, Jr. Hard Sayings of the Old Testament(Downers Grove: IVP, 1988), pp.127-128
   3. Matthew Poole, Genesis-Job(London: Banner, 1968), p.770
여호야긴이 왕이 된 정확한 나이는 언제였는가? 18세였는가? 8세였는가?
RevSuh  2008-07-31 12:23:45 hit: 27,482

     "여호야긴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십 팔세라 예루살렘에서 석 달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느후스다라 예루살렘 엘라단의 딸이더라"  
                    (왕하 24:8)

여기 여호야긴이 왕위에 오를 때 나이 18세였다는 것은 이해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병행 구절인 역대하 36:9에는 그가 즉위한 나이를 8세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 18세와 8세 어느 쪽이 옳은가?
이 문제는 아무래도 8세보다는 18세쪽이 더 옳았으리라고 결론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바로 다음에 나오는 9절(왕하 24)말씀에 “여호야긴이 그 부친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고 되어 있는데 어떻게 8세 된 아이가 부친의 모든 악행을 본받아 행했겠는가? 더구나 그는 3개월만을 다스렸으며(1) 이미 결혼했었다.
  
그러면 왜 이런 나이 상의 차이가 생겼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아래 세 가지 해석이 제시되어 오고 있다.
  
먼저 두 기록이 다 옳았다는 해석이 있다.  그 주장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8세는 그가 그를 왕으로 세운 부친과 함께 다스린 때로 생각한다.  이스라엘과 유다로 왕국이 나뉘어 있으면서 특별히 어려운 때는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러니까 18세는 그가 홀로 통치한 때였을 것이다.
  2. 그는 그가 다스리기 시작했을 때 8세의 아들로 불렸다(대하 36:9).  그 이유는 그의 나이가 8세여서가 아니라 바벨론 포로나 예속의 해를 가리켰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호야긴의 첫 해는 엄밀하게 말해서 그 포로 됨의 8년째를 가리켰다.  이런 예는 다른 곳에서도 자주 나타난다(삼상 12:1; 대하 21:20; 22:2; 겔 1:2; 33:21; 40:1).
  3. 어쩌면 서사자의 실수였을 것이다.  아마도 처음 사본은 역대하 36:9이 8세가 아니라 18세였을 것이다. 예를 들어 수리아나 아라비아 역본에서는 18세로 되어 있는데 만일 히브리어 사본에 18세로 되어 있지 않았다면 그렇게 번역했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2). 그리고 실제로 소수의 히브리어 사본들까지도 역대기서의 구절들에서 18로 읽었다. 여호야긴의 이름이 족보에서 여고니아로 들어가 있는데(대상 3:16-17) 그것이 아마도 그의 원래의 이름이었을 것이다(3).

그러면 서사자가 어떻게 실수를 했는가?
주전 5세기에 일반적으로 사용된 숫자 체계에서는 오른쪽으로 길게 누워 있는 갈고리 모양의 표시가 "10"을 나타내는 표시였다.  이 갈고리가 둘이면 ‘20’이 수직선으로 표시되었으며 보통 세 개씩 묶어서 표시되었다. 그러므로 한 개 혹은 그 이상의 수직선들 위에 원래 표시된 갈고리가 어떤 때는 보이지 않아서 ‘18’이 ‘8’처럼 보일 때가 있다(4).
  
일반적으로 같은 사건에 대한 병행 구절의 숫자상 차이는 일단 상식적인 판단에 따르는 것이 원본의 기록이었을 것이다. 원본의 말씀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사본이나 번역본에서는 적은 실수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적은 차이가 결코 성경의 무오에 손상을 주는 것은 아니다.

   주
   1. T.R. Hobbs, 2 Kings(Waco: Word, 1985), p.351
   2. Matthew Poole, A Commentary on the Holy Bible, Vol, I(London: Banner, 1968), pp. 771-772
   3. R.D. Patterson and Herman J. Austel, 1, 2 Kings(Grand Rapids: Zondervan, 1988), p.294
   4. 글리슨 아처, 성경 난제 백과사전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0),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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