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단 12:2)
사후의 부활에 대한 교훈은 신약의 여러 곳(고전 15:42-44; 요일 3:2; 살전 4:16, 계 20:5-6)에서 분명하게 언급되고 있지만 구약에도 적지 않다(욥 14:14; 시 17:15, 49:7-20; 73:23-26). 특별히 이사야 25:8과 26:19 그리고 다니엘 12:1-3은 구약의 부활에 대한 가장 분명한 구절들 중에 하나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부활 확실성이 아니라 일부의 부분적인 부활이냐? 그렇지 않으면 전체의 일반 부활이냐에 있다. 주석가들의 해석도 크게 보면 두 가지다. 먼저 부분적인 부활을 지지하는 해석이 있다. 이들의 주장은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그러니 무덤에서 잠자는 자들 중에서 많은 사람이 부활할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많은 사람이나 전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여기 죽은 자들이 바로 언급하고 있는 안디오커스의 환난 때 죽은 자들을 가리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 영(Edward Young)도 여기서 다니엘은 일반 부활을 제외시키지 않으나 강조하는 점은 대환난 때에 죽은 자의 부활이라고 보았다(2). 이렇게 보는 주석가들 중에서는 데살로니가전서 4:16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그의 재림 때 주님을 만나기 위해 공중에 들림 받게 된다는 말씀은 불신자의 부활과 같은 것이 아니라고 본다. 또 요한계시록 20:5-6에 죽은 성도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살아서 1,000년간 그와 다스린다는 말씀 그리고 그 죽은 자의 남은 자들은 천년이 끝나기까지 살지 않으리라는 말씀을 들어 이중 부활을 주장한다. 신자는 마지막 심판에 앞서서 부활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어느 학자들은 구원받은 자도 두 가지 부활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 하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그리스도인의 부활이요(살전 4:16) 그 다른 하나는 마지막 대환난 중에 죽은 자나 구약 신자들의 부활이라는 것이다(계 20:5-6)(3). 그러나 이런 주장은 지나치게 의도적으로 짜 맞추려는 해석이라고 보여진다. 사도행전 24:15에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란 말씀이나 요한복음 5:29에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두 번의 부활이기보다는 두 종류의 부활이 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다만 앞서 본대로 요한계시록 20:5-6 말씀은 이중의 부활을 언급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레니우스 (Ireneus, 175-195)는 요한의 첫 부활을 의로운 자의 부활과 연관지었고 저스틴 마터(Justin Martyr)는 천년왕국 전에 육체적인 부활이 일어날 것이며 일반 부활은 천년이 지난 후에 있을 것으로 보았다 (Dialogue with trypho 80). 어거스틴에게 와서 첫째부활은 영의 중생으로 이해되고 둘째 부활은 일반적 육체의 부활로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의 몸의 부활이라 보게 되었다(city of God 20.9-10)(4). 이중의 부활을 주장하는 주석가들은 일반적으로 첫째 부활을 부분적인 구원받은 자만의 부활이요 둘째 부활은 모든 나머지 사람들 중 구원받지 못한 자의 부활이라 한다(5). 따라서 카이저(Kaiser, Jr)는 단지 하나의 신자와 불신자를 위한 보편적이며 동시적인 부활이 있다는 가르침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6). 그러면 이제 다니엘 12:2을 전체 부활로 보는 해석을 살펴보자. 여기서 많다는 말 셈 어 루빕이 모두를 가리키느냐 그렇지 않으면 그저 많은 것을 가리키느냐? 이 말은 다소가 아니며 전부도 아니라 하나와는 현저히 달라서 모두란 뜻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2)는 말씀과 같다. 또 쿰란 문서들의 라빕 혹은 하라빕(정관사와 함께)에서처럼 이사야 52:14과 53:12을 들어 이 구절이 일반 부활을 가리켰을 것으로 본다. 여기서 많은 이란 말은 사실상 수많은 공동체, 전체라고 본다. 따라서 12:2에 라빕(rabbim)도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를 의미한다(7) . 칼빈도 많다는 말은 그 많은 혹은 전체를 의미하므로 여기서 일반 부활을 의도하였다고 하였다(8). 아쳐(Archer)도 부활의 승리에서 죽은 성도 모두를 포함한다고 보았다(9). 따라서 다니엘 12:2은 우리에게 어떤 이중의 부활이나 부분적인 부활을 가리키지 않는다. 다만 부활에 대한 진리 죽음 후에 다시 살게 된다는 진리를 보여 주고 있을 뿐이다.
주 1. Simclair B. Fesguson, Daniel(Waco: Word, 1988), p.244 2. Edward J. Young, Daniel(London: Banner, 1972), p.256 3. Larry Richards: Bible Difficulties Solved(Fleming H. Revell,1993), p.199 4. Alan F. Johnson, Revelation, E.B.C. Vol.12(Grand Rapids: Zondervan, 1981), p.584 5. Norman Geisler and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 1992), p.296 6. Walter C. Kaiser, Jr., More hard Sayings of the Old Testament(Downers Grove: IVP, 1992), p.248 7. Louis F. Hartman and Alexander A. Dilella, The Book of Daniel(Garden City: Doubleday, 1985), p.307 8. John Calvin, Daniel(Grand Rapids: Baker, 1989), p.374 9. Gleason L. Archer Jr., Daniel, E. B. C. Vol.7(Grand Rapids: Zondervan, 1985), p.15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