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는 투기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리는 자에게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나훔 1:2)
하나님께서 정말 보복하시는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바울 사도는 신자들에게 성내지 말라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다 하였다. 또 원수 맺는 것과 시기와 분 냄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죄라고 지적하고 있지 않는가?(갈 5:20) 이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이 분 내시고 보복하시면서 어찌 그의 백성 된 우리에게는 금하실 수가 있으신가?
먼저 하나님의 보복에 대해 생각해 보자.
여기 한 절 말씀에 여호와는 보복하신다는 말씀이 세 번이나 나온다. 흔히 우리가 내게 잘못하는 사람에게 보복하게 되는 것은 성급하고 충동적이고 참지 못하며 원수를 갚으려는 심리에서 나오기 쉽다. 그러면 하나님도 우리 인간 같으신가?
그러나 3절에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하므로 그런 가정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면 여기서 보복하신다는 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여기 보복이라는 말은 성격상 법정적이여서 심판이나 법과 도덕을 위반한 자에 대한 보수를 가리켰다. 그리고 법정적 기능으로서 보복(보수)은 크게 온 땅의 재판자이신 하나님과(신 32:35) 그의 권위의 대리자로 정해진 자에게 속하였다(출 21:20-21; 신 31:23; 수 10:13; 에 8:13).1) 그러므로 여기서 하나님이 보복하신다는 말은 사람이 원수를 갚는다는 말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원수 갚는 것이나 스스로 자신이 재판자가 되는 것을 금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의 권한이 아니며 누구나 사람은 편견 때문에 공정하게 잘잘못을 판단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 하였다(롬 12:19).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어떤 부정에 대해서도 보복하신다(신 32:35; 참고, 롬 12:19). 자기 백성이나 그렇지 않거나 간에 죄에 대한 하나님의 어떤 심판도 변덕스러움이나 제어할 수 없는 분노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불변하시는 성품에 근거한다.2) 구약에 이 말은 78회 나오는데 그 중에 51회는 하나님이 가해자로 있는 상황에 연관되어 쓰였다. 하나님은 만일 그가 죄를 허용하시고 반역을 벌하시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이 되실 수 없으시다. 하나님이 보수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1) 원수에 의해 압제받는 자의 소송의 변호자가 되시며(시 94장) (2) 그와의 언약을 깨뜨리는 자를 벌하신다(레 26:24-25).3)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복은 인간의 보복과 다르며 그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의 반영으로 공정한 심판이다.
이제 하나님도 분노를 품으시는지를 알아보자.
하나님의 분노도 위의 보복하신다는 말씀과 연관이 있다. 하나님의 투기는 구조상 그의 진노와... 이방인이건 이스라엘 백성이건 간에 죄에 대한 거룩하신 하나님의 분내심에 병행한다.4) 따라서 여기 분노하심도 투기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런 분냄은 사람의 죄 많은 자의와는 완전하게 다른 것이다(참고, 약 1:20). 하나님의 분노하심은 인간이 그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적법한 제한을 깨뜨릴 때마다 대면해야만 하는 신적, 특성을 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분노를 부인하는 것은 심판의 실재와 구속의 필연성을 부인하는 것이다.5) 성경은 분노에 대해 죄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데 죄의 분노만을 금하고 있으며 그것은 그 목적이나 성격 또는 분노의 대상에 따른다. 바울은 성을 내되 죄는 짓지 말라 하였고(엡 4:26) 예수님은 우리의 도덕적인 모범이시지만 죄에 대해서 분노하시었다(참고, 마 23:15-36). 하나님의 분노와 인간의 분노는 거룩하신 분과 죄인의 차이만큼이나 크다고 보아야 한다.
가이슬러(Norman Geisler)는 선한 분노와 악한 분노를 이렇게 구별하였다.
선 한 분 노 | 악 한 분 노 |
죄를 이김 | 사람을 대적함 |
죄를 대적함 | 죄인들을 대적함 |
의롭게 표현됨 | 불의하게 표현됨 |
노하기를 더디함 | 성내기를 급히 함 |
공의로 함 | 보복으로 함⁶ |
이상에서 본대로 분노에도 선한 분냄과 악한 분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죄와 그 죄를 지은 자를 엄격하게 분리시켜서 죄에 대해서만 분노할 수 있고 죄를 지은 사람은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그러하시듯이 성내기는 더디 하기를 배워야 한다(느 9:17).
주
1. Carl E. Armerding, Nahum, E.B.C. Vol.7(Grand Rapids: Zondervan, 1985), pp.461-462
2. David W. Baker, Nahum, Habakkuk, Zephaniah(Downers Grove: IVP, 1988), p.27
3. Walter C. Kaiser, Jr., Hard Sayings of the Old Testament(Downers Grove: IVP, 1988), p.231
4. Ibid.,
5. Carl E. Armending, Ibid.,
6. Norman Geisler and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 1992), p.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