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손을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재물에 대지 않을 것이며"  (옵 1:13)

위의 구절을 표준새번역에서는 “나의 백성이 패망하던 그날 너는 내 백성의 성문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어야 했다...”라고 부정 명령형 과거로 번역하였다.  흠정역(KJV)에서는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며... 그 재물에 손을 대지 않았을 것이며”라고 하여 가정법 과거로 번역하였다. 그런데 새 흠정역(NKJV)과 새국제역(NIV)에서는 부정 명령 구로 되어 있다.  우리말 새표준역은 과거로 번역한 것이 다르다.
  
그러면 어느 번역이 옳은가?
히브리 어원에는 동사가 정상적인 부정 명령형 구조로 되어 있다.  즉 부정의 말(al)과 함께 쓰인 명령법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들어가지 말며, 방관하지 말며, 손을 대지 말며 등으로 번역되어야 한다.1)
  
새 미국표준역(NASB)에서는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말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말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재물에 손을 대지 말며 라고 번역하였다.  만일 가정법 과거로 번역한다면 이미 예루살렘은 멸망했고 에돔이 그 약탈에 참여했음을 시사해 준다.
  
그러나 부정 명령형으로 본문을 번역하는 것이 옳다면 이 예언은 아마 예루살렘으로 쳐 올라와서 무력으로 그곳을 점령한 불레셋과 아랍인들에게 에돔 사람들이 가세한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주전 848-841년)의 때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대하 2:16-17).2)
  
문제는 예루살렘과 유다가 약탈과 곤경에 처한 환난의 때가 언제였는가에 달려 있다.  예루살렘이 약탈을 당한 시기는 적어도 여섯 번이나 된다.

   1. 르호보암 제5년에(931-913) 시삭에게 예루살렘이 항복했는데 요새들이 동맹했던 외국 군대와 함께 애굽의 지배자에 의해 함락되었다(왕상 14:25-
      28; 대하 12:2-10).  이때에 에돔은 유다의 적이었다.

   2. 예루살렘의 두 번째 침공은 여호람 통치 때(853-841년)였는데 아람과 불레셋의 연합군이 유대를 공격해서 예루살렘에 있던 왕의 재산과 가족을 빼앗
      아 갔다(대하 21:16-17; 22:1). 이때에도 에돔과는 날카로운 대립 상태였다(왕하 8:20-22; 대하 21:8-10).

   3. 유다의 제3차 침공은 요아스 통치 때였다(835-796년).  수리아의 침략으로 유대의 지도자들과 군사가 희생되고 약탈되었는데 이는 그 왕에 대한 하
      나님의 심판의 결과였다(대하 24:23-24).

   4. 예루살렘이 아마시야 때에 포획되었으며(796-767) 에돔과 공적으로 적대했던 기간에 유다의 보화와 인질들이 함께 강탈당했다(왕하 14:7-14).

   5. 제8세기에 와서 아하스 통치 기간에 유다가 외세에 의한 위협이 증가되었을 때에 에돔의 침범에 대한 그 이상의 증거가 있다(735-715년).  그러나 예
      루살렘이 실제로 포획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6. 예루살렘의 마지막 침략은 주전 597년 느브갓네살에게 여호야긴이 항복한 후 586년 바벨론에게 멸망했을 때였는데 그 때 에돔의 존재는 하나의 독립
      된 국가였다.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은 성전과 더불어 실제로 불에 타 버렸다(왕하 25:8-21; 대하 38:17).  이 때에 에돔의 행동에 대한 이야기들은
      특별히 중요한데 느브갓네살을 대적한 팔레스틴국가들의 동맹에 한 동맹자로 참여한 근거가 있다(렘 27:3; 40:11). 그러나 이 사건은 후에 유대에 대
      한 보복을 취한 것으로 고소되었다(겔 25:12).  그리고 그들의 심판이 그 정점에 달했던 때에 그들의 환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칼에 내어 준 죄
      로 고소되고 있다(겔 35:5-6; 참고, 애 1:17).  에돔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기뻐한 죄가 있었다(시 37:7; 애 2:15-17; 4:21; 겔 35:11-15; 36:2-6).  따
      라서 이 시기에 에돔의 멸절에 대한 선지자적 선포가 그 정점에 달했던 것이다(렘 9:26; 25:21; 애 4:21-22; 겔 25:13; 32:29; 35:3-4, 7-9, 14-15;
      36:7).  따라서 오바댜는 에돔이 분명히 연관된 주전 586년 예루살렘의 멸망을 뒤돌아보았을 것이다.  물론 이 결론은 증명된 확실성이 부족하다.  소
      선지자들 중에 오바댜와 요엘은 연대의 중요성이 없다. 예레미야 49장과 에스겔 35장 그리고 요엘서에 대한 오바댜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필연적
      이 아니다(렘 49:14-22의 연대가 대략 주전 600년이라는 것이 이 논의를 분명하게 확증한다고 할지라도). 그럼에도 유다의 정치와 종교적인 역사에
      있어서 이 시기만큼 오바댜의 예언에 맞는 시기는 없을 것이다.3)

에돔이 예루살렘에 들어간 것은 바벨론의 군대에 의해 그 시가 약탈되고 크게 포기된 후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에돔은 바벨론이 조직적으로 약탈을 하기에는 너무 작았던  많은 유대의 도시들을 약탈하였을 것이다.  예루살렘이 이년의 포위 속에 주전 586년 첫달에 멸망하였다(왕하 25:1-8).  따라서 바벨론의 군대가 예루살렘에 집중되어 있었던 주전 588-86기간에까지도 에돔은 보호되고 있지 않은 남쪽 지역을 약탈할 수 있었을 것이다.4)
  
오바댜 13절의 동사의 번역을 가정법 과거로 해야 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부정 명령형으로 하느냐에 따라 그 예언이 지시하고 있는 시기를 결정한다면 두 경우 모두 주전 588-586에 있었던 예루살렘 멸망 때 에돔의 약탈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만일 과거로 번역을 한다면 예루살렘 멸망이 이미 일어난 후를 가리키며 부정 명령형으로 취한다면 아직 예루살렘이 멸망하지 않은 어느 때를 의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본다고 해도 아쳐(Archer)의 주전 848-841년의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 때로 보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을 것이다. 알머딩(Carl E. Armerding)의 견해처럼 이 예언들이 어느 특정한 때의 사건과 꼭 연관을 짓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예언이 예루살렘의 멸망(주전 586)때를 염두에 두었을 것으로 생각하며 이 견해를 부인할 명확한 근거도 희박하다.  

   주
   1. 글리슨 아쳐, 성경 난제 백과사전, 황영철역(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0), p.408
   2. Ibid., pp.408-409
   3. Carl E. Armerding, Obadiah, E.B.C. Vol.7(Grand Rapids: Zondervan, 1985), pp.350-351
   4. Douglas Stuart, Hosea-Johna(Waco: Word, 1987), p.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