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난제
성경에 오류가 있는가? 이 질문은 성경이 누구의 말인가라는 해답 속에 그 답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성경이 인간의 말이라면 오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성경에 오류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은 진실하셔서 거짓말을 하실 수 없으시며(히 6:18; 단 1:2), 진리이시므로(요 14:6) 그의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은, 주의 말씀은 진리라고 규정하고 있다(요 17:7; 시 119:16).
그러나 이 말은 성경에는 전혀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말씀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오늘 우리에게 성경은 시간과 공간, 언어와 문화 등에서 많은 갭이 있다. 따라서 어떤 말씀은 이해가 쉽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우리의 이해가 쉽지 않다고 그 말씀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거스틴(Augustine)은 “우리가 만일 성경에서 어떤 분명한 모순으로 인해 혼란스러워진다면 그 책의 저자가 실수했다고 말하지 말고 필사자의 실수이거나 번역의 잘못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라. 그 잘못은 하나님의 계시에 있지 않고 인간의 해석에 있다”고 하였다.¹ 따라서 가이슬러는「비판자들이 질문할 때」라는 그의 책에서 성경 비판자들의 질문에 대한 문제점 17가지를 아래와 같이 지적하였다.
1. 비판자들은 설명되지 않는 구절을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가정한다. 과거에 과학자들은 유성, 일식, 돌개바람, 허리케인 그리고 지진 등 자연현상을 설명할 자료를 갖고 있지 못했다. 과학자들이 아직까지 설명할 수 없는 것도 많다. 그러나 그것도 언젠가는 설명이 가능할 날이 올 것이다. 오늘날 성경난제도 언젠가 앞으로 풀리게 될 것이다.
2. 비판자들은 성경에 대해서 그것이 옳다고 증명되기까지는 잘못되었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비판자가 그것이 옳다는 증명을 획득하기까지는 무조건 틀린 것으로 가정하는 것이다.
3. 비판자들은 하나님의 무오한 계시를 인간의 오류있는 해석과 혼동한다. 성경은 폐할 수 없으며 변할 수 없다. 성경의 모든 약속은 다 성취된다. 종종 성경의 교훈은 작은 역사적인 세부 사항이나(히 7:4-11) 단어나 구절(행 15:13-17) 혹은 단수, 복수 사이의 차이에 근거하였다. 성경은 이렇게 무오하며 정확하다. 그러나 인간의 해석은 틀릴 수 있다. 성경은 불변하나 성경의 의미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변한다. 그러므로 무오한 계시와 유오한 인간의 해석을 분별하는 상식이 필요하다.
4. 비판자들은 그 구절의 문맥을 이해하는데 실패한다. 그들은 한 본문을 그 본문이 속해 있는 문맥에서 이해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시편 14:1의 전반절만 취하여 하나님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 구절은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한다는 뜻이다.
5. 비판자들은 어려운 구절을 분명한 구절의 빛에서 해석하는 데 등한히 한다. 예를 들면 야고보는 구원은 행위로 얻는다고 말씀하는 것 같다(약 2:14-16). 그런데 바울은 분명하게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다고 하였다(롬 4:5; 딛 3:5-7; 엡 2:8-9). 이것은 바로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칭의에 대해 말씀했고 야고보는 사람 앞에서 의로워지는 것을 언급한 것이다.
6. 비판자들은 불명확한 구절의 교훈을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는 불명확한 구절에 교리를 세우지 말아야 한다. 역시 우리는 불명확한 구절이 주어졌을 때 그것이 성경의 다른 평범한 교훈에 모순이 된다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에 잘못이 없다면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7. 비판자들은 성경의 인간 저자들에 의한 인간적인 책임을 잊고 있다. 다만 그 책들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졌으므로 오류가 없는 것뿐이다. 따라서 인간적인 원천들을 사용하며(수 10:13; 행 17:28; 고전 15:33; 딛 1:12) 인간의 문자적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8. 비판자들은 부분적인 보고가 거짓 된 보고라고 가정한다. 성경은 같은 사건도 다른 견해를 가지고 다시 말해서 다른 방법으로 표현한다. 사복음서가 그 예가 될 수 있다. 그것들은 같은 이야기를 취급하고 있지만 독자들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말씀을 인용할 때까지도 다른 말로 하고 있다. 예컨대 마태는 그리스도에 대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16:16), 마가는 그리스도로(8:29), 누가는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표현하고 있다(1:20).
9. 비판자들은 구약에 대한 신약의 인용이 항상 정확한 인용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것이 문자대로 정확한 것이 아닐 때 잘못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글을 쓰면서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할 때 정확하게 문자적으로 할 수도 있고 요약해서 그 의미만 취할 수도 있고 부분적으로는 문자적으로 취하고 부분적으로는 뜻만을 취할 수도 있다. 저자가 다른 사람의 글을 꼭 문자적으로 인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문자적으로 인용하지 않았다고 그의 글이 틀린 것도 아니다.
10. 비평자들은 서로 다른 설명을 하는 것은 틀린 것으로 간주한다. 마태는 부활 후 무덤에는 한 천사가 있었다고 하는데(마 28:5) 요한은 우리에게 두 천사가 있었다고 소개해 준다(20:12). 그러나 이것은 모순된 보고가 아니다. 마태는 거기에 한 천사만 있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마태의 설명도 틀린 것이 아니다.
11. 비판자들은 성경이 그 모든 기록들을 승인한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성경에 모든 내용이 성경이 명령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성경은 진리이다(요 17:17). 그러나 성경은 사단의 거짓말과 라합의 거짓말도 기록하였다(창 3:4; 참고 요 8:44; 수 2:4). 성경의 진리는 성경이 드러내는 것에서 발견되는 것이지 성경이 기록한 모든 것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12. 비평가들은 성경이 전문어가 아닌 일상 용어들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성경은 모든 시대의 보통 사람을 위하여 일상의 말로 쓰여졌다. 따라서 과학적인 말로 쓰지 않았다. 그러나 이 말은 비과학적이란 의미가 아니라 단지 과학 이전의 말이라고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해가 뜨고 진다는 말은 과학적이 아니지만 현대의 기상 학자들도 그렇게 쓰고 있지 않는가?
13. 비판자들은 개략적인 숫자를 틀렸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저자가 어떤 모임에 모인 사람들의 수를 기록할 때 1,050명이 모였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저 1,000명이 모였다고 쓸 수도 있는 것이다.
14. 비판자들은 성경이 다른 문학적인 문장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성경에는 시적인 책도 있고(욥, 시편, 잠언) 사복음서에는 비유들이 있으며 풍유도 있다(갈 4장). 또 은유(고후 2:2-3; 약 3:6)와, 직유(마 20:1; 약 1:6), 과장법도 발견된다(골 1:23; 요 21:25; 고후 3:2). 따라서 우리는 그 문학 형식에 맞는 주의 깊은 해석을 해야 한다.
15. 비평가들은 성경의 모든 복사판이 아니라 원문만이 오류가 없음을 잊고 있다. 성경의 원문은 사라졌고 많은 사본들이 있다. 물론 그 사본들은 엄격한 서사 규칙에 따라 필사된 것이기 때문에 큰 오류가 있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필사의 전수 과정에서 서사자들의 실수를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열왕기하 8:26에 아하시아 왕의 나이가 22세로 기록되었는데 역대하 22:2에서는 42세로 기록되었다. 후자의 수는 정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에 그는 그의 아버지보다 나이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원문의 잘못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16. 비판자들은 일반적인 언급을 보편적인 것과 혼동한다. 성격상 다만 일반적인 안내만 하고 있는 잠언의 말씀은 보편적인 보증이 아니다. 예를 들어 잠언 16:7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바울의 경우는 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으나 그의 원수들이 그를 돌로 쳤으며(행 14:19)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니었는가? 잠언은 일반적인 안내의 지혜이나 율법은 보편적으로 구속하는 명령이다. 그러므로 그 두 사이의 차이점을 볼 수 있어야 한다.
17. 비판자들은 후대 계시가 앞선 계시를 대신한 것을 잊고 있다. 그들은 계시의 점진성의 원리를 잊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단번에 드러내지 않으시며 항상 모든 시대를 위해 같은 조건을 두지도 않으신다. 따라서 후대 계시 중 얼마는 이전 언급들을 대치한다.
주
1. Norman Geisler and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 1992), pp.15-26. 여기서
필자는 위의 책을 요약하기 위해 자유롭게 인용하기도 하고 필자의 견해를 더하기도 하였다.